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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다와콜라 Nov 22. 2019

걷는 자는 매 순간 새로워진다 (2)

산티아고 순례길, 그 후 10km 정도는 걸어 다니는 걷기 예찬론자

산티아고 순례길, 그 후 10km 정도는 걸어 다니는 걷기 예찬론자 

    - 2019. 11. 20. 베를린 필하모니 점심 공연에 다녀왔습니다. 오늘은 클라라 슈만이 작곡한 ‘three romances for violin and piano op.22’ 연주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남편과 일찍 사별한 후 아이들을 혼자 키우면서 작곡과 연주회를 병행한 강인한 여성이었으며, 암보暗譜 연주로 유명했던 천재 음악가였습니다. 오늘 연주를 들으며, 클라라 슈만의 열정과 섬세한 음악적 재능에 눈이 번쩍했습니다. 

    - 베를린 이야기도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잠시 미뤄두고, 오늘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나타난 몸의 변화"를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4. 하몽처럼 납작해진 발바닥     



  순례길을 걷는다는 건, 마을에서 마을로 이동한다는 뜻입니다. 한국처럼 동네가 다닥다닥 붙어있지 않고, 한 마을에서 다음 마을까지 사이에는 광활한 평야가 있거나, 높은 산이 있거나, 드넓은 목초지가 펼쳐져 있습니다. 마을 사이의 거리가 최악이었던 어느 날에는, 한 마을에서 다음 마을로 가기 위해서 17km에 달하는 평야를 쉬지 않고 걸어야 했습니다. 카페도 화장실도 없는 길을 4시간 걷다 보면 몸과 마음이 지칩니다. 게다가 아침 안개 때문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경치도 보이지 않고 앞사람의 발만 쳐다보고 걷습니다. 남편과도 이야기 나눌 기력이 없어집니다. 마을이 보이길 간절히 바랍니다. 대부분 마을에는 큰 성당이 있어서, 십자가가 보이면 도착을 예견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만 간절히 찾게 되는 것이지요.       


                                

자욱한 안개를 헤치고 걸어갑니다. 여기만 지나면 마을이 있겠지, 코너만 돌면 마을이 보이겠지, 기도하는 마음으로 걸어갑니다.


하지만 살은 쪘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 길은 약 780km, 32일 일정으로는 하루 평균 24.375km를 걸어야 합니다. 하루 평균 6시간은 길 위에서 몸을 움직이며 보낸 셈입니다. 하지만 살은 쪘습니다. 저는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에 살을 좀 뺄 요량으로 수영을 배웠는데요, 생각해보니 그때도 살이 쪘습니다. 수영장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있던 김밥집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수영을 마치고 상쾌한 마음으로 김밥집에 들어갑니다. 썰지 않고 통으로 달라고 특별 주문을 하고요, 따끈따끈하고 고소한 김밥을 뜯어먹으며 집으로 돌아갑니다.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꿀맛 같은 낮잠, 식사, 뒹굴기, 그리고 또 식사. 스페인에서도 김밥과 맞먹는 ‘또띠야 데 빠따따(감자 요리)’, ‘막달레나(머핀)’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고, 복병 바게트가 있었습니다! 스페인에서 바게트는 저온 발효해서 만드는지, 딱딱한 빵 속은 촉촉하고 구멍이 송송 나 있습니다. 길 가면서 그냥 뜯어먹으면 행복합니다. 김밥이든 바게트든 음식을 들고 뜯어먹는 재미가 맛을 배가하는 것 같습니다.      



    대신 다리에는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잘 넘어져서 무릎에 멍 가실 날이 없었는데요, 그건 여전히 변하지 않은 제 특징 중 하나입니다. 경치를 감상하다 발을 헛디뎌 두 어 번 넘어졌고, 덕분에 순례길 내내 무릎에 멍이 함께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발바닥은 스페인 식 햄, 하몽처럼 납작해졌습니다. 아주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신장계라면 제 키가 조금 줄어들었다고 말해줄지도 모르겠습니다.       

                                      

  매일 아침 출발 전, 다리 전체에 타이거 밤 또는 맨소래담을 발라주고, 발바닥에는 바셀린을 듬뿍 바릅니다. 그리고 종아리 또는 발바닥 등 특히 불편한 부분이 있다면 근육 테이핑으로 단단히 고정합니다. 테이핑 없이는 못 걸었을 거예요. 발가락에 물집에 생겨서 발가락도 양말에 미끌리지 않도록 테이핑으로 칭칭 감아줍니다. 걸어가는 동안에도 틈틈이 발을 말려주고 바셀린과 타이거 밤을 바릅니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제 발을 살펴본 적이 있나 싶었습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가려니 골반은 뒤로 빠지고 어깨 근육은 뭉쳤습니다. 발바닥은 납작해지고 발 뒤꿈치에 굳은살이 생겼습니다. 살을 빼거나 체형을 교정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순례길은 절대 금지입니다. 얼굴이 새까맣게 타서 왠지 이가 더 하얗게 보이고, 시계를 풀어도 시계 자국이 남아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 다음 이야기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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