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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다와콜라 Nov 22. 2019

순례길에서 가장 좋았던 도시 TOP3 (2)

카스트로헤리츠 Castrojeriz, 파란 자전거 집

  - 2019. 11. 22. 오늘은 독일식 뱅쇼, 글루바인gluwein을 마셔봤습니다. 시나몬 향 가득한 와인을 마시니 갑자기 기분 크리스마스! 연말이 다가오니 설레요. 저는 무슨 일이든 처음에는 주저하고 긴장하지만, 마지막에 저력을 발휘하는 스타일이거든요!(tmi) 마지막이 좋아요. 이렇게 여행을 마무리하며 조용히 글을 쓰고 생각하는 시간도 너무 좋고요. 소중한 시간을 내서 제 글을 읽고, 제 행복에 동참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오늘은, 파란 자전거 집에서 시대를 초월한 현자를 만났던, "카스트로헤리츠 Castrojeriz"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1. 라면 마을, 카스트로헤리츠    



  카스트로헤리츠는 800여 명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한국인들 사이에는, ‘라면 구할 수 있는 마을 리스트’가 암암리에 돌아다닙니다. 라면 마을 리스트에는, 외국인이 인터넷으로 배워서 직접 담갔다는 김치 + 직접 끓인 너구리를 파는 식당, 컵라면과 햇반을 먹으며 쉬다 갈 수 있는 작은 상점, 그리고 중국인 마트 등 라면으로 통칭되는 한식을 구할 수 있는 마을이 적혀있습니다. 이 작은 마을 역시 그 리스트에 들어가 있습니다.



  카스트로헤리츠를 지나던 때쯤, 저희는 라면이나 한식이 그립지는 않았습니다. 매일 저녁 '순례자 메뉴'와 막 사랑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순례자 메뉴는, 식전 바게트, 샐러드 또는 파스타, 스테이크 또는 생선, 그리고 요거트로 이어지는 간이 코스 요리입니다. 순례자임을 입증할 수 있는 순례자 여권을 보여주면 이 모든 요리를 10유로에 제공합니다. 그러나 순례자 메뉴를 거의 매일 먹다 보니 한국으로 가야 할 날이 하루씩 빨라지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통장 잔고가 바닥나면 돌아가기로 했거든요. 그래서, 카스트로헤리츠에서는 돈을 좀 아끼기 위해,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서 알베르게에서 해 먹기로 했습니다.     






2. 순례길에서 만난 도플갱어 – 독일 변호사    



  통장 잔고가 바닥나면 돌아간다는 말에서 생각났는데, 남편과 대판 싸운 날이 있습니다. 지갑이며 우의며 다 남편이 가지고 먼저 떠난 상황인데, 갑자기 비가 내리는 겁니다. 제 휴대폰 유심은 한 달 짜리였는데, 하필 전 날 자정을 기해 기간이 만료된 상태였습니다. 당황해서 비를 맞으며 일단 걷고는 있는데, 이전 마을로 되돌아가서 비가 멎을 때까지 기다려야 할지, 최대한 빨리 남편을 따라잡아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아 엉거주춤 있었습니다. 그때 제 옆을 지나가는 한 젊은 여자 순례자가, 저더러 자기 우의 입는 걸 도와줄 수 있겠냐고 하는 겁니다. 우의를 배낭 위로 입어야 해서, 뒤에서 누가 우의를 잡아 내려줘야 하거든요. 그래서 도와주고, 혹시 전화 한 통 빌릴 수 있겠냐고 해서 남편에게 전화했어요. 다음 마을에서 만나기로 하고, 약속 장소까지 그 순례자와 잠시 동행했습니다.                         


(오늘 어디서 출발했니, 생쟝에서부터 걷고 있니 등 스몰 토크 후)

그녀: What do you do in Korea? 넌 한국에서 무슨 일 해?

나: I’m a lawyer, but I quit the job to travel around the world with my husband. 어, 나는 변호산데, 지금은 그만두고 남편이랑 여행 중이야.

그녀: Wow! I’m also a lawyer in Germany. 헐, 나도 변호사야. 독일에서.

그녀는 로펌에서 일하면서 힘들었던 이야기, 자기가 로스쿨에서 꿈꾸던 업무랑 다른 일을 하면서 힘들어서 여행한 후에 개업을 하든 새로운 진로를 찾아보려 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녀가 하던 일은 내가 원하던 일이고, 내가 하던 일은 그녀가 원하던 일이었습니다. 엄청난 공감대를 형성한 후, 저는 그녀에게 언제까지 여행하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녀: Until money ends!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만 26세부터 변호사 일을 시작해서 2년 정도 일하고 퇴사한 후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여행하는 그녀, 저와 닮아도 너무 닮은 모습이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우리의 존재로서 서로의 삶을 긍정해주었습니다. 이렇게까지 온전히 서로를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즐거운 대화였습니다. 그녀는 지금쯤 순례길을 완주하고 또 다른 여행을 시작했겠죠. 가끔 생각납니다. 순례길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잘 지내는지. 무사히 완주했는지.






3. 알베르게 일상 – 샤워, 손빨래, 순례자 여권, 그리고 코골이                        


아차,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흘렀습니다. 다시 카스트로헤리츠로 돌아갑니다.


카스트로헤리츠로 들어가는 길. 마을 입구부터 설렜습니다.

약 500m 정도, 이렇게 나무 사이로 걸어갑니다.    



  카스트로헤리츠 알베르게(순례자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호탕한 알베르게 주인이 맞이해주었습니다. ‘오~ 너희 특별히 둘만 쓰는 개인실을 주겠다~ 돈은 똑같아~’ 하며 조용한 개인실을 내어주었습니다. 그동안 코 고는 소리에 고통받아온지라 너무 감사한 제안이었습니다. 주변에 코 고는 가족이 없어 몰랐는데, 순례길에서는 자다가 코 고는 소리에 깜짝 놀라서 깨곤 했습니다. 시끄럽다기보다는 무서웠습니다. 코를 드르렁드르렁 규칙적으로 고는 게 아니고, ‘크어업’하고 들이마신 후에 내뱉질 않습니다. 30초 정도 숨을 멈추고는 ‘푸하아’하고 뱉어내는 코골이를 처음 들어서, 그 사람에게 혹시나 건강상 문제가 생길까봐 귀를 기울여 듣곤 했습니다. 카스트로헤리츠에서는 그런 걱정 없이 정말 푹 잘 수 있었습니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배낭을 풀어두고 샤워+손빨래를 합니다. 알베르게 정원은 유독 햇빛이 좋습니다. 빨랫줄에 빨래를 탁탁 털어 널어두고, 젖은 머리도 햇빛에 말려줍니다. 잠시 휴식을 취합니다. 그러고 나서 ‘순례자 여권’을 들고 알베르게 주인을 찾아갑니다. 여권에 도장을 찍어, 내가 이곳에 들렀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나중에 완주 증명서를 받을 때, 여권을 보고 제가 성실히 걸어왔는지 확인합니다. 주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너네, 내가 딱 보니까~ 거기 가보면 좋아하겠네’라고 하는 겁니다. ‘거기’에 붙여진 이름은 없는데, 알베르게 문을 열고 나가서 우측으로 쭉 올라가면 오른편에 교회가 나오고 교회를 지나 조금만 더 가면 오른편에 파란 자전거가 서 있다고 했습니다. 듣는 저는 약간 혼란스러웠습니다. 위치 정보로 묘사되는 장소는 어떤 곳인가, 이름 붙여지지 않은 장소는 어떤 기대를 품고 가야 하나, 생각했습니다. 도착한 그곳은…….    






4. 파란 자전거 집    



파란 자전거가 세워진 집.

시대를 초월한 현자를 연상하게 하는 공간.    



  알베르게 주인이 말한 ‘거기’에 도착했습니다. 파란 자전거가 세워진 집입니다. 문을 들어가기 전, 작은 팻말에  ‘조용히 해주세요. 말은 하지 마세요’라고 적혀있습니다. 집안은 나무 냄새, 촛불 타는 냄새, 잔잔한 음악소리가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갤러리였습니다. 주인은 없지만, 주인의 취향과 생각과 사랑은 묻어있는, 아름다운 공간이었습니다. 나중에 알베르게에서 저녁을 먹으며 주인에게 너무 좋았다고 하자, ‘그럴 줄 알았다~ 너희 얼굴 딱 보면 안다~’ 하며 자신이 더 좋아했습니다. 그 공간은 인도 등지를 떠돌며 생활한 명상 수행자가 만든 공간인데, 길 위에서 보고 느낀 것을 사진과 글로 남겨놓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배우자와 함께 순례길 어디쯤에 있는 초막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개성 있게 꾸며진 공간. 주인의 취향을 닮은 공간은 규모가 크든 작든 형태가 어떻든 아름답습니다. 저도 ‘자기 취향을 잘 알고, 자기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파란 자전거를 발견하고 문을 통과해 들어가는 순간부터 주인이 염두에 둔 동선을 따라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조용한 마지막 발걸음까지 딛어야 이 공간을 제대로 보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사진 몇 개로는 이 공간만이 가진 느낌을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내부에 전시된 글귀 일부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I said to the almond tree. 내가 아몬드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Brother, speak to me of God” “형제여, 내게 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게”

And the almond tree blossomed. 그러자 아몬드 나무는 꽃을 피웠습니다.



Do not follow the steps of the wise men of the past. Search for what they search for. 과거에 있었던 현명한 사람이 취한 방식을 따르지 마라. 그들이 좇은 것을 좇으라.    



  그 외에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함으로써’ 이 공간을 사랑하기로 하겠습니다. 순례길을 걸으신다면, ‘카스트로헤리츠의 파란 자전거 집’에 꼭 들어갔다 나오시길 추천드립니다! 순례길을 걷는 어느 누가 고민 없이 길 위에 서 있을까요. 고민과 걱정을 안고 파란 자전거 집으로 들어가면, 어느 시대를 초월한 현자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5. 알베르게에서 따뜻한 저녁 식사    



  알베르게로 돌아가, 샐러드, 파스타, 돼지 등심 구이 스테이크를 했습니다. 저와 남편은 꼭 둘이 먹는 밥인데도 3~4인분은 짓게 되더라고요. 농담 삼아, ‘we should have a big family or just two big persons. 우리는 큰 가족을 이루거나, 아니면 우리가 엄청 큰 두 명이 되어야 해’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카스트로헤리츠에서도 역시나 많은 양을 요리하고 있었는데, 알베르게 주인이 다가와서 자연스럽게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를 하고 함께 식사하게 되었습니다.     



  영국에서 온 순례자 한 명과도 함께 와인을 마시며 밤이 늦도록 이야기했습니다. 브렉시트 연기안이 발표된 시점이었던 것 같은데, 속상하다고 말했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한 번 정해진 일에 대해 번복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하기도 했고, 솔직히 자기는 브렉시트에 찬성했는데, 반대했던 다른 친구가 ‘너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울기도 해서, 혼란스럽다고 했습니다.         



  인생에서 소중한 누군가를 잃어본 이야기, 그로 인해서 가해자에 대한 강한 분노에 휩싸였지만 용서하는 순간 등 뒤에서 날개가 돋친 듯 가벼워졌다는 이야기, 각 나라의 문화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빚 없이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지만 빚을 진다는 건, 보이지 않는 감옥에 스스로 들어가는 거나 마찬가지라며 절대 빚지지 말라고 강조하던 누군가의 이야기.     



  다양한 우리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의 공통점은 단 하나, ‘제각기 주어진 인생의 짐을 메고 이 길에 선 순례자’라는 것이지만, 어떤 사람이든 인생길이 고단하고 외로운 건 매한가지인가 봅니다. 우리는 이야기하며 위로하고 위로받았습니다. 저도 순례 내내 끙끙 앓던 고민 보따리를 조금 풀어두고, 후련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었습니다.    



  마음 따뜻했던 카스트로헤리츠에서의 이야기를 떠올리니, 다시 한번 미소가 지어집니다. 누구나 자기 인생은 특별하고, 그래서 외로운 것 같습니다. 그 누구도 백 퍼센트 이해해주지는 못하지만, 어느 순간 공명하듯 마음을 나누는 그 짧은 순간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으니 다행입니다.




... 다음 이야기에 계속: 순례길에서 가장 좋았던 도시 TOP3, 마지막 마을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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