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자옥 Aug 12. 2021

도토리묵과 감자전

아이는 얼마 전부터 요리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호텔 셰프가 되고 싶다고 한다. 전공도 그쪽으로 생각하고 있다. 호텔 셰프를 꿈꾼다고는 하지만 아직 백 퍼센트 확신이 있는 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직접 호텔 셰프를 만나 본 적도 없고 그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본 적도 체험해 본 적도 없다. 그럼에도 아이가 호텔 셰프를 꿈꾸는 건 다른 무엇보다 요리에 관심이 많고 만드는 것도 좋아하고 요리하는 사람 중에서는 호텔 셰프가 가장 멋져 보여서다.


아이가 요리에 관심을 보인 이후로 난 몇 권의 요리 및 요리사에 관련된 책을 사주었다. 역시 다른 책에 비해 흥미를 많이 보였다. 특히 요리를 과학적으로 설명한 <맛있는 요리에는 과학이 있다> 같은 책은 읽을 때마다 내게 와서 "엄마, 이건 왜 이렇게 하는지 알아?" "이게 무슨 원리인지 알아?" "엄마 이건 이렇게 하면 안 된데."라고 해서 날 귀찮게 하긴 했지만 그래도 사주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도 나름 요리사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이나 요리사 관련 영상을 자주 찾아보는 것 같았다. 나는 잘 모르는 유명 요리사도 꽤 많이 알고 있고 동경하는 요리사도 따로 있는 듯했다.  


그렇긴 해도 난 좀 불안했다. 흥미만으로, 책 몇 권과 미디어에 보이는 것만으로 진로를 정해도 되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아는 호텔 셰프라도 있으면 조언을 구하든 부탁해서 하루 체험이라도 해주면 좋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 주변엔 그럴 만한 사람이 없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요리 학원이었다. 집에서 재미로 해보는 요리랑 학원에서 정식으로 배우는 요리는 많이 다르지 않을까 싶었다. 기초부터 배우고 차츰 난이도가 있는 요리를 하다 보면 뭔가 느끼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할수록 더 재밌다고 느끼든 나랑은 안 맞는 것 같다고 느끼든.

아이도 나랑 비슷한 생각을 했나 보다. 우선 경험을 해보고 싶다고 한다. 해보지도 않고 생각만으로 결정했다가 나중에 가서 적성에 안 맞으면 어떡하냐며 해봐야 맞는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나름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았다. 기특했다. 


학원은 좀 멀어도 큰 데로 갈까 하다가 하다 아니다 싶으면 그만둘 수도 있다는 생각과 오가는 시간이 고될 것 같아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정했다. 물어보니 마침 주변 고등학생도 몇 다니고 있다고 했다. 다 어른이면 그렇지 않아도 중간에 들어가서 적응하기도 쉽지 않을 텐데 또래 친구가 있다니 마음이 더 갔다.

  

첫날 괜히 내가 긴장이 되었다. 이런저런 준비물을 챙긴 가방을 둘러메고 현관에서 신발을 신는 아이에게 선생님 얘기 놓치지 말고 잘 들어라, 모르면 빨리 물어봐라, 잘 안 되는 거 있으면 머뭇거리지 말고 도움을 청해라 등등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나와 달리 아이는 여유가 있어 보였다. "아휴 당연하지. 걱정하지 마."라며 생긋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날 아이는 도토리 묵과 감자전을 만들어 왔다. 모양이 그럴싸했다. 묵 썰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두께도 일정하고 으스러진 것도 없었다. 감자전은 크기도 앙증맞고 가장자리는 바삭하고 중앙부는 촉촉해 보이는 게 일반 식당에서 나오는 거랑 거의 흡사했다. 보자마자 난 '우와~'하며 탄성을 질렀고 사진부터 찍었다. 아이는 모양보다 맛이 걱정이었나 보다. 학원에서는 코로나 때문인지 시식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맛까지는 기대하지 않았다. 이 정도 만들어 온 것만으로도 기특했으니까. 근데 웬걸! 맛있다. 난 흥분에 약간의 오버를 보탰다. 

"진~짜 맛있어. 빨리 와서 먹어봐. 가게에서 파는 거보다 훨씬 더 맛있어." 

"그래?"

아이는 다행이라는 듯 쑥스러운 듯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난 잽싸게 숟가락으로 도토리묵 하나와 양념이 고루 섞인 상추와 오이를 함께 떠서 아이 입에 가져갔다. 아이는 입을 크게 벌려 냉큼 받아먹고는 "음~"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도 만족스러운가 보다. 감자전도 맛있다는 내 말에 아이는 그제야 젓가락을 꺼내 들었다. 감자전은 감자전도 맛있었지만 찍어 먹는 간장 소스가 기가 막혔다. 아이에게 뭐뭐가 들어갔냐며 레시피를 물어볼 정도였다. 하지도 않을 거면서. 


마음 같아서는 싸온 음식을 그 자리에서 다 먹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아이도 나도 맛만 보고 다음 날 먹는 걸로 합의를 봤다. 음식은 자고로 만들자마자 바로 먹어야 하는데 많이 아쉬웠다. 


앞으로 만들어 올 메뉴가 기대되어 일정표를 보니 난이도가 오늘보다는 다 높은 것 같았다. 살짝 걱정이 되어 "다음 메뉴 봤어? 오늘보다는 더 어려울 거 같던데?"라고 물으니 아이는 대수롭지 않게 "그래? 아무래도 그러겠지 뭐."라고 한다. 아이의 이런 반응은 날 늘 헷갈리게 한다. 관심이 그렇게까지는 없는 건가? 걱정을 미리 안 하는 스타일이라서 그런가? 할만하다 싶은 건가? 아님 대답이 귀찮나? 흠... 거기까진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일단 더 지켜보는 걸로.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싱크홀, 현실이 재난인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