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의 얼굴이 갑자기 다가왔다. 나는 놀라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했다. P는 “얼굴에 뭐가 묻은 것 같아서”라더니 더 바짝 자기 얼굴을 내게 들이밀었다. 그러곤 “아니네” 하며 물러났다. 이직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라 P와 나는 그리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 난 꽤 어색했다. 이 외에도 P는 이따금 사람을 순간 멈칫하게 하는 데가 있었다. 내 책상 서랍을 허락도 없이 열어본다거나, 내 서류를 아무 말도 없이 들춰보기도 하고, 어느 땐 몸을 가까이 붙이며 책상 깊숙이에 있는 연필통에 손을 뻗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난 놀라기도 하고 어리둥절해져서 순간 생각이 멈췄다. 뒤늦게 “뭐 찾아?”하고 물으면 그제야 P는 “클립 있어?”라거나 “뭐 좀 확인할 게 있어서”라고 했다. 얼굴엔 옅은 미소를 띠었다. 마치 당황하는 내 모습이 재밌기라도 한 듯.
P가 이럴 때마다 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왜 허락도 없이 남의 서랍을 열지? 필요한 게 있으면 말을 하면 되지 굳이 몸을 붙이면서까지 직접 꺼내야 하나? 내가 바빠 보여서 그랬나? 그럴 수도 있나? 내가 예민한 건가? 근데 저 표정은 뭐지? 재밌나? 혹시 일부러 저러나?’
사람마다 침범되면 불편한 자기만의 경계선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서로의 경계를 넘지 않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시시때때로 남의 영역을 침범하며 심기를 건드리는 사람들. 그중 하나가 나르시시스트다.
나르시시스트라고 하면 잘난 척에 거만하고, 요란하고 언제 어디서든 큰소리치는 모습을 많이 떠올리지만 그렇지 않은 은밀한 유형도 있다. 바로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이다. 이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유형과 마찬가지로 자기중심적이고 질투가 심하고, 시시때때로 자기 우월감을 확인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 남을 깎아내리지만 그런 속성을 잘 감춘다. 겉보기엔 온순하고 남 앞에 잘 나서지 않는 수줍음 많은 사람처럼 보인다. 이들은 남들에게 자기가 어떻게 보이는지가 매우 중요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착하고 배려심 많고 공감 능력이 뛰어난 것처럼 행동하며 선한 이미지를 챙기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타깃과 단둘이 있는 상황 등에서는 그 실체가 드러난다.
타인의 경계선을 멋대로 넘는 게 그중 하나다. 평소에는 혹은 사람들 앞에서는 꽤 예의 있고 배려도 잘하고 남에게 불편을 끼지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불쑥 선을 넘으면 어리둥절해진다. 어떻게든 이해해보려 하고 이유를 찾아 대신 변명하기도 한다. ‘깜빡했나 보지. 바빠서 그랬을 거야’라며. 혹은 자신을 의심한다. ‘내가 예민한가?’ 내가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P가 경계선을 넘은 일은 자주 있었고 상식의 선을 넘는 일도 꽤 있었다.
입사 첫날이었다. 경력직으로 들어온 내게 먼저 다가온 건 P였다. P는 회사의 이모저모를 알려주었고 서로 동갑이니 말을 놓자고 제안도 했다. 긴장했던 나로선 반갑고 고마운 순간이었다. P는 이후 내게 많은 걸 물었다. 어디 사냐부터 학교, 형제, 집안 사정까지. ‘뭐 이런 것까지 묻나?’ 싶은 것도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먼저 보여준 호의도 있었고, 조용하고 순둥순둥해 보여 전혀 경계심이 들지 않았다. 난 묻는 대로 술술 대답했다.
그리고 다음 날. 내 얘기는 팀원 전체가 알고 있었다. 특별히 알면 안 되는 비밀은 아니었지만, 사적인 이야기가 허락도 없이 퍼진 건 꽤 당혹스러웠다. P가 내 얘기를 마치 자기 얘기라도 되는 듯 맘대로 하고 다닌 것 같아 불쾌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따지진 못했다. P가 여전히 순진한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에 따지고 들면 나만 까칠한 사람이 될 것 같았다.
여기까진 그래도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대단히 중요한 문제도 아니고 내가 손해를 입는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업무 면에서 경계선을 넘을 땐 꽤 신경이 쓰였고 오래도록 고민했다. P는 내 아이디어를 마치 자기 아이디어인 양 말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회의 전에 둘이 먼저 상의하며 내가 한 이야기를 회의에서 그대로 말하곤 했다. 처음엔 가볍게 여겼다. 내 아이디어라는 말을 깜빡하고 하지 않았나 싶기도 했고, 내가 한 말을 자기가 한 말이라고 순간 착각했나,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계속 찜찜함은 남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일이 또 생겼고 난 물었다.
“그거 아까 내가 한 말이잖아?”
“내가 전부터 생각한 거야.”
P는 뻔뻔하다 싶은 만큼 당당했고 난 크게 혼란스러웠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P의 이런 태도는 나 자신을 의심하게 만드는 일종의 가스라이팅이기도 했는데 당시엔 전혀 몰랐다.
나르시시스트는 다양한 방식으로 타인의 경계선을 넘는다. 남의 물건을 함부로 만지고, 빌려 간 물건을 돌려주지 않고, 타인의 공간에 제멋대로 드나든다. 자기 편한 대로 시간 약속을 이리저리 변경하고, 늦은 밤이나 주말에 사소한 일로 연락해 개인 시간을 방해한다. 상대방의 감정을 멋대로 단정 혹은 부인하거나 무시한다. 타인의 일기나 우편물 등을 아무렇지 않게 열어보거나 개인 정보를 캐묻고, 얻은 정보를 함부로 사용한다. 아무 거리낌 없이 신체를 접촉하고, 남의 생각을 자기 생각인 양 굴기도 한다.
나르시시스트가 이러는 첫 번째 이유는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 때문이다. 나르시시스트는 상대방을 자신의 연장선으로 보는 일이 많다. 상대방의 물건이나 공간, 생각 등도 자신과 다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며 제 것처럼 여긴다. 좋아 보이고 탐나면 쉽게 자기 것으로 삼는다. 마치 세 살 어린아이가 친구의 장난감이 맘에 들면 자기 거라고 우기는 것처럼. 두 번째는 특권의식에서다. 이들은 자신에겐 특별한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지키는 일도 자신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여긴다. 다른 사람의 영역을 침범하더라도 자신은 정당하다고 믿는다. 세 번째는 통제와 조종 욕구다. 경계를 무시하고 기습함으로써 상대방을 화들짝 놀라게 하거나 당황하게 하고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면서 이들은 만족감을 얻는다. 상대방의 감정을 자신이 통제하고 조종한다는 생각에 순간 우월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는 공감 능력 부재다. 이들은 자신의 행동으로 상대방이 불쾌하거나 불편할 거란 생각을 못 한다. 안다고 해도 중요하지 않다.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는 이러면서도 겉으로 얌전하거나 마냥 착해 보이니 당하는 입장은 혼란스럽다. 특히 감각이 예민하고 생각이 많은 사람은 계속 신경이 거슬리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상대방이 이상한가, 내가 이상한가. 이 사람은 왜 자꾸 이럴까. 이런 행동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심지어는 자란 환경까지 짚어본다.
프랑스 심리 치료사 크리스텔 프티콜랭은 깊이 생각하고 분석하며, 타인의 감정에 민감하고, 직관적이며, 끊임없이 내적 대화를 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정신적 과잉 활동인’이라고 한다. 이들은 남들이 놓치는 세부 사항까지 관찰하고, 모든 상황에서 더 깊은 의미를 찾으려 하며, 심지어 자신과 관련 없는 문제에도 책임감을 느끼는 특성이 있다. ‘왜 저런 행동을 했을까’, ‘내 반응이 적절했을까’와 같은 생각을 끊임없이 하는 것이다. 나르시시스트는 이런 사람들의 과도한 분석 성향과 자기 의심을 교묘히 이용한다. 일부러 놀래거나 신경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며 상대방의 주의를 흐트러뜨린다. 그럴수록 정신적 과잉 활동인은 그에게 생각이 집중되며 어느새 말려든다.
우리에겐 일반적인 상식이라는 게 있는데 그 선을 아무렇지 않게 훌쩍 넘을 땐 ‘뭐지? 좀 이상한데?’ 하는 직감이 발동한다. 그 직감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몸에서 조심하라는 보내는 신호다.
상대방이 나의 경계선을 넘을 땐 불편한 의사를 표시해야 한다. 말 대신 눈치를 주는 건 큰 효과가 없다. 특히 나르시시스트에겐 더 그렇다. 남의 입장이나 기분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 아니다. 말을 빙빙 돌리거나 너무 길고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 작게 중얼거리는 것,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말하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계를 넘은 순간 곧바로 짧고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그 얘기는 듣고(하고) 싶지 않은데 다른 얘기 해요.”
“허락을 먼저 구했으면 좋겠어.”
“방문 전엔 미리 얘기해.”
“이제 와서 시간 변경은 어렵겠는데.”
보통 나르시시스트는 말 한 번으로 행동이 바뀌지 않는다. 알겠다고 하고도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그때마다 얘기해야 하고 일관적으로 말해야 한다. 어느 땐 말하고 어느 땐 그냥 넘어가면 무시해도 된다고 여긴다. 이때도 다른 긴 설명 없이 요점만 말하는 게 좋다. “세 번째 말하는 거야. 그 얘긴 듣고 싶지 않아.”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생각이 많은 사람은 더욱이 어렵다. 괜히 죄책감이 들고, 미리 앞서 두려움을 느끼고, 어색해질 것을 걱정한다. 내 경계를 세우는 건 죄책감을 가질 일이 아니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두려워할 필요는 없으며 의외로 걱정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나의 불편함을 얘기했을 때 되레 날 비난한다면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더 확실히 경계해야 한다.
내가 P의 행동이 거슬리면서도 표현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돌이켜 보면 가장 후회되는 순간이다. 그때 단호하게 선을 그었어야 했다. 매번 넘어가니 P는 나를 점점 더 쉽게 생각했다.
이렇게 해도 변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땐 더 단호해질 수밖에 없다. 듣기 싫다는 말을 계속하면 자리를 뜨거나 전화를 끊기, 늦은 시간에 올 연락을 대비해 핸드폰을 무음으로 변경하거나 아예 꺼두기, 중요한 물건은 서랍에 넣어두고 열쇠를 걸기, 직장이라면 아이디어를 미리 공유하지 않기, 사적인 얘기는 절대 말하지 않기, HR 부서에 상담하기, 제삼자가 있는 상황에서만 미팅하기, 만일을 대비해 모든 건 기록으로 남기는 등.
한 지인은 밤늦게 혹은 잠든 새벽에 전화를 걸거나 카톡을 보내 잠을 방해했다. 몇 번이나 늦은 시간은 피할 것을 요구했으나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난 카톡 알림을 차단하고 10시 이후로 오는 전화는 받지 않았다. 그러자 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도 종종 늦은 시간 연락이 올 때가 있다. 여전히 난 응하지 않는다.
그는 또 약속을 제멋대로 이리저리 변경했는데 처음엔 내 일정까지 변경하며 맞춰주다 나중엔 “그럼 다음에 보자. 일정 변경은 어려울 것 같아”하고 단호해지자 차츰 멋대로 변경하자는 일이 줄어들었다.
자신의 직감을 믿고 자기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 것, 내가 예민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상식의 선을 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경계 설정의 첫 단계다.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경계를 명확히 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감정적 중심을 잡는 것도 중요하다.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의 행동이 우연이 아닌 의도적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순간은 놀라고 당혹스럽겠지만 빨리 빠져나와 원래 하던 일과 생활에 집중하고, 자신의 가치와 판단을 믿는 것이 이들의 영향력에 말려들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또한 이런 상황을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면, 믿을 수 있는 동료나 상사 혹은 주변인에게 상황을 객관적으로 설명하고 도움을 구하는 것도 방법이다. 심각한 정서적 어려움을 겪는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