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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옥 Sep 22. 2020

힘내! 힘 빼!

뭔가 안 좋은 일을 당했다거나 풀이 죽어 있는 사람에게 사람들은 “힘내!”라는 말을 한다. 또 반대로 잔뜩 긴장하거나 한껏 잘하려고 폼 잡고 있는 사람에게는 “힘 빼!”라는 말을 한다. 어디 그뿐인가 어딘가 자신 없어 하는 사람을 보면 사람들은 “배에 힘 딱 주고 어깨 펴고” 라며 자신감을 가지라고 한다. 


힘이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인가? 애초에 힘이 내 맘대로 되는 것이었다면 내가 먼저 알아서 조절하지 않았을까? 혼자서도 힘 조절을 잘하는 사람이 가끔 어쩌다 한번은 있을 수 있겠다. 혼자서도 ‘자 힘내자’ 하면서 불행이나 시련 따위 거뜬히 이겨내고, 너무 힘 들어갔다 싶을 때는 풍선에서 바람 빼 듯 알아서 쉽게 힘 빼고, 배에 힘 딱 주라고 하면 바로 힘 딱 주고 당당한 자세를 취하는 사람들 말이다. 난 드라마나 영화 혹은 애니메이션에서는 봤지만 아직 실제로는 보지 못했다. 신이 나에게 능력을 하나 준다면 힘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그만큼 힘 조절은 어렵다.      




회사 동료가 하나 있었다. 어느 날 그 동료의 동생이 큰 사고를 당했다. 교통사고였는데 의식은 물론 생사조차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 동료는 며칠째 출근을 못했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동료였기에 특히 더 마음이 아팠다. 동생도 동생이지만 난 동료도 걱정이 많이 되었다. 지금 어쩌고 있는지 정신을 놓고 있는 건 아닌지. 옆에 있으면 어깨라도 한번 토닥여 주고 한번 안아라도 주겠지만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마음을 전하고 싶어 문자를 보냈다. “OO야 힘내” 보낼 때는 물론 진심을 담은 말이었지만 보내 놓고 보니 이 얼마나 힘 빠지게 하는 말이었을까 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없는 힘까지 쥐어짜고 있을 판에 힘내라니. 얼마나 더 힘을 내라는 말인가. 물론 고맙다는 답장이 돌아왔지만 왠지 짐 잔뜩 있는 사람에게 짐 하나를 더 얹어준 듯하여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아... 가만히나 있을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김창옥 강사는 성악 전공이다. 제주도에서 어렵게 서울에 올라왔고 레슨비도 신문 배달로 감당했다고 한다. 어떻게 해서 음대까지는 들어갔는데, 앞으로 유학도 가고 싶고 하고 싶은 건 많은 데 도와줄 사람은 없고 뭐든 혼자 해내야 했다고 한다. 이런 김창옥에게 대학 때 만난 은사님은 자주 “놓고 해, 놓고” 라고 하셨단다. 힘을 빼라는 말이다. 이때 김창옥은 생각했다고 한다. 내가 어떻게 놓나. 놓으면 죽는데. 그러곤 은사님께는 속으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선생님은 가진 게 많으니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에요. 저에게 빨리 기술을 가르쳐주세요. 놓으라고 하지만 마시고요. 저는 뭔가 보여줘야 해요. 근데 왜 자꾸 놓으라고 하세요’ 김창옥의 <지금까지 산 것처럼 앞으로도 살 건가요?>에 나온 말이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없이 결혼해서 아등바등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부부에게 자꾸만 뭘 그렇게 열심히 사냐고, 어깨에 힘 좀 풀고 살라는 사람이 있었다. 나 또한 같은 생각을 했다. ‘넌 가진 게 있으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지만 난 아니야. 지금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힘을 빼래’라며 더 힘을 줬다.     


요가를 배운 적이 있다. 코어에 힘 줘라, 어깨 힘 빼라 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난 분명 힘 준다고 주고 있는데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갔단다. 어깨 힘은 또 어떻게 빼라는 건지. 축 늘어뜨리라는 말인가? 도통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나중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코어에 힘을 줄 수 있으면 요가를 배우러 여기 왔겠니?’



“힘내”, “힘 빼”라는 말만큼 효율성이 떨어지는 말이 또 있을까 싶다. 힘내라는 말은 오히려 더 힘이 빠지게 만들고, 힘 빼라는 말은 힘을 더 주게 만든다. 힘내라는 말 대신 한번 안아주던가 어깨라도 토닥여 주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게 힘들면 실컷 울 수라도 있게 자리를 비켜주든가. 또 힘 빼라는 말 대신 긴장을 풀어주는 실없는 농담이 훨씬 더 효과적인지 않을까? 가장 힘들이지 않고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힘내', '힘 빼'라는 말인 듯하다. 힘들이지 않은 만큼 역시 효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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