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자옥 Jul 28. 2021

과거로 돌아간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

어제였다. 무슨 대화 끝에 난 아이에게 물었다. 

“과거 어느 한때로 돌아간다면 Y는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

아이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태어나기 전으로”

“…”

생각지도 못한 답이었다. 좀 어질어질했다. 아니 꽤 그랬다. 현기증마저 나는 듯했다. 나도 모르게 눈을 한번 길게 감았다 뜨고 머리도 한번 절레절레했다. 잠시 마음을 진정시키고 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아니, 그런 거 말고 지금까지 살면서 이때가 그래도 가장 행복했다 하는 순간 없었어?”

“뭐 별로 특별히 행복했던 적은 없었는데”

가슴이 한번 더 쿵하고 내려앉는 듯했다.

“그래? 그래도 그나마 이때가 좋았다 하는 것도 없어?”

이 정도면 거의 애걸 아닌가. 제발 있다고 말해줘. 아주 잠깐 아주 조금이라도 좋으니 제발… 아이가 이 간절함을 눈치챘는지 “지금 이 생각 그대로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조건이면 있지”라고 한다. “당연하지!” 반가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지금 생각 그대로 돌아가면 사는 게 얼마나 시시하겠어. 다 아는 건데” 아이는 “그니까”라며 맞장구를 치더니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돌아간다면 그나마 초등학생 때”라고 한다. 그·나·마. ‘그나마’란 말이 거슬려서인지 난 “초등학생 때가 젤 행복했어?”라며 마치 확인이라도 하듯 내심 구체적인 어떤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희망을 품은 채 다시 물었지만 아이는 짧고도 시크하게 ‘응’이라고만 답했다. 아이의 ‘응’이란 말을 움켜쥐고 놓고 싶지 않았지만 아이는 내 아쉬움 따윈 모른 채 바로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는 나름 뭔가 진지한 얘기를 꺼냈고 내게도 엄마는 어떻게 생각하냐며 의견을 물었다. 입으로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었지만 머릿속에서는 아이가 좀 전에 한 ‘태어나지 전’이란 말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지금 고등학생이라는 현실이 버거워서 그런 걸 거야. 어차피 과거로 돌아가도 언젠가는 또 고등학생이 될 테니. 아닌가. 정말로 지금까지 행복했던 적이 없었던 건 아닐까. 그럴 수도 있지. 어릴 때 내내 맞벌이하느라 아이에게 신경도 못 써줬고 아이 혼자 보내야 했던 시간도 많았는데 뭐가 그리 행복했겠어. 

    

갑자기 내 어릴 적 생각이 났다. 나 역시 어릴 때 부모님은 항상 바빴고 내 일은 내가 알아서 챙겨야 했다. 부모님은 물리적 시간도 많이 부족했지만 마음의 여유도 넉넉지 못해 아이들 얘기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하루하루 살아내기도 벅차 보였다. 그럴수록 난 외로웠고 나중엔 외로움에 원망까지 더해졌다. 만약 지금의 아이 나이쯤에 누군가가 내게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냐며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냐고 물었다면 나도 틀림없이 태어나기 전이라 답했을 거다.   

   

혼자서 이런저런 상상을 하다 보니 가슴이 저릿해져 왔다. 나는 분명 내 아이는 나처럼 외롭지 않게 하겠다 다짐했었다. 비록 어릴 적 부모님처럼 물리적 시간은 많이 부족하더라도 마음마저 부족하게 느끼게 하고 싶진 않았다. 짧은 시간이라도 같이 있는 시간만큼은 아이에게 충실하자 했는데 돌이켜보니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아이의 외로움도 나만큼이나 컸으려나. 아이도 나를 원망했으려나.     

 

아이는 그나마 초등학생 때가 제일 행복했다지만 어쩌면 그때가 제일 외로운 때가 아니었을까 싶다. 제일 엄마가 필요했겠지만 내가 제일 마음의 여유가 없던 때가 바로 그때였다. 아무래도 괜한 걸 물어본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젠트리피케이션과 일식 요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