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월애 Jun 23. 2021

양석형교수님!무서워하지 마세요.원망하지 않을겁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오랫동안 손꼽아 기다린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시즌2로 돌아왔다.

그리고 오랜 기다림에 대한 보상을 받은 기분이다. 시즌1의 마지막 회에 마구 던져주신 떡밥들을 오늘에서야 겨우 거두는 느낌이랄까... 적당한 비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율제병원 식구들이 너무 반갑고 보고 싶었다.


물론 가슴 뭉클한 에피소드가 많았지만 먼저 양석형 교수님께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아마도 다음화에는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날 것이고, 그래서 급하게 전하고 싶은 말을 남긴다.


무서워하지 마시라고... 혹여 산모나 태아가 잘못되더라도 산모는 절대로 교수님을 원망하지 않을 거라고...

그리고 두 사람에게 희망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19주 산모이고 조기 양막 파수가 의심되는 환자이다. 19주면 산모는 이미 태아의 심장소리를 들었을 테고 태동을 느낄 수 있는 시기이다. 10센티 조금 넘겠지만 어느 정도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 시기이고, 발길질도 하고 팔도 꼼지락 거리는 시기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 세상에 나오기는 너무나도 이른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당직 교수는 태아도 산모도 모두 위험하니 마음의 준비를 하자고 이야기한다. 맞는 말이지만, 그러하다는 것을 엄마의 본능으로 굳이 담당의사의 말을 듣지 않고도 알 수 있지만 산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양석형 교수님께 부탁을 드렸을 거다. 태아도 아직 엄마 뱃속에서 잘 있고 엄마도 감염에 대한 증후도 없으니 지켜보자는 양석형 교수님의 말씀에 산모는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그 순간만큼은 산모와 태아에게 양석형 교수님은 생명의 은인이 되었을 것이다.




사랑스러운 질문봇 추민하 선생님은 양석형 교수님을 찾아가 묻는다. 어떻게 낮은 확률을 선택할 수가 있냐고, 나중에 혹시나 산모와 태아가 잘못되어 원망하면 어떻게 하냐고 걱정을 한다.

산모와 태아를 도와주고 싶었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태아도 태동으로 의지를 보여주고 산모의 의지도 강하다면 확률이 낮더라도 두 사람을 도와주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씀이 눈물겹도록 고맙다.


산모는... 한 여성이 소중한 한 생명의 엄마가 되는 순간 특별해지는 것 같다. 그 특별함은 내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를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키겠다는 책임감으로 나타나곤 한다. 그리고 그렇다는 것을 굳이 여성이 아니더라도 잘 알기에 여느 다른 환자와는 조금은 다르게 와닿는 것 같다.


임신 4주였다. 그런데 처음 진료를 받으러 간 병원에서는 자궁 내 물혹이 커서 태아가 자랄 수가 없다며 수술을 하자고 했다. 다음에 다시 잘 준비해서 임신하면 된다고... 그날을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10년이 훨씬 지난 그날을... 일단 생각해보겠다고 수술 스케줄을 잡자는 의사의 말을 뿌리치고 병원을 나왔다. 그때가 시험기간이라 꾸역꾸역 눈물을 참으며 수업을 하고는 쉬는 시간마다 나와서 목놓아 울었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 도저히 포기가 안되어 여기저기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대학병원에 부인과 교수님을 제일 빠른 날로 예약하게 되었다. 그 교수님이 유명하신 분이라 예약이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사정을 들은 접수 직원은 모든 역량을 발휘하여 없는 시간을 빼준 거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진료 전 차트에 기록을 하면서도 자연임신, 4주를 적어 넣으면서도 이 상황이 계속 유지될 수 있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내려 갔었다.  그리고 대기하는 한 시간이 한 달과도 같이 느껴지는 마음 졸임 끝에 만난 선생님은 낳아보자고 하셨다. 물혹이 크긴 하지만 주수에 맞게 자라고 있고, 물혹은 12주가 되었을 때 수술해서 제거하면 되니까 포기하지 말고 지켜보자 하셨다. 다음부터는 산과로 예약하라는 말씀도 해주셨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가는 기분이 바로 그런 것 일 것이다. 선생님은 나와 뱃속의 아이의 생명의 은인이었다. 그 아이는 12주가 되기 전에 더 이상 자라지 못하여 결국엔 포기해야 했고, 그때도 나는 처음 찾았던 선생님을 뵙고 싶다고 했다. 혹시나 선생님은 다른 말씀을 하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지만 선생님도 이번엔 다음을 기약하자 하셨다. 그러곤 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 주셨다. 하지만 난 그때도 선생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선생님 덕분에 몇 주 동안 난 행복할 수 있었으니까, 아이의 심장소리도 들을 수 있었고, 내가 먼저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으니  선생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리고 수술 경과를 보려고 5개월 후에 선생님을 찾아뵈었을 때  나는 곧바로 선생님께 임신인 것 같다는 말씀을 드렸고, 이미 초음파 예약이 끝난 상황에서 긴급으로 초음파 검사를 받게 해 주셨으며, 짱구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내 일처럼 축하해 주셨다. 전에 수술이 잘되었으니 이번엔 걱정 안 해도 될 것이라고 또 산과로 예약을 해 주셨다. 짱구가 건강하게 태어나고 찾아뵙고 싶었지만 워낙에 진료가 많으신 분이라 인터넷으로 가끔 선생님의 근황을 확인하곤 한다. 그리고 아직도 선생님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러니 혹시나 그 산모의 태아가 잘못되더라도 그로 인해 산모가 감염에 대한 증후가 생기더라도 선생님을 원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시라고...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또 그런 경우가 생기더라도 그때도 포기하지 마시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러한 결정을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꼭 이야기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양석형 교수님 같은 아싸가 좋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