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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일아빠 Oct 19. 2024

말 귀를 못 알아 먹냐?

인종차별과 피해의식에 대하여


"Spreche ich Chinesisch?"



한국어로 직역하면, "내가 (지금) 중국어 하니?" 이다.

엥~ 독일에서 웬 중국어? 뭔가 뜬금없어 보이지만, 사실 일상생활에서는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표현이다. 그러나 이런 뜻만 가지고는 여전히 언제, 어떨 때에 이런 표현을 쓰는지 쉬이 감이 오질 않는다.


실제 용법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뉘앙스를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울대에 진득한 긴장을 준다. 그리고 미간은 잔뜩 지푸려야 한다. 반드시 큰소리를 낼 필요는 없지만, 목소리에 담긴 깊은 짜증은 필수다. 이 모든 것이 하모니를 이룰 때, 비로소 아래와 같이 의역할 수 있게된다.


"야! 내가 지금 중국어해? 왜 못알아들어?"



아하! 그러니까 이 말은 대화 상대가 내 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할 때 사용하는 관용어이다.

우리나라 속담 중 '소 귀에 경 읽기'와 얼핏 비슷한 뜻으로 사용되는 듯이 보이지만, 그보다는 조금 더 논쟁적인 상황에 어울린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사적으로 말 다툼할 때, 상대를 깎아 내리고 자신의 입지를 다질 때 적합하다.


'야, 아직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너무 이해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야?'


이런 정도의 상대를 무시하는 뉘앙스가 저변에 깔려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속담이 조금은 체념적이라면, 독일의 용법은 실로 호전적이다.




꽤나 재미있는 표현이다.


그냥 그렇게 넘어갔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그렇게 넘어갈 수는 없었다. 뭐랄까? 이런 표현 이면에 깔린 이방인에 대한 독일인들의 텃새가 느껴졌다고 해야할까? 여하간 뒷맛이 영 개운치 않았다.  


그래서 펜을 잡았다. 지금부터는 글이 자못 심각해질 예정이다. 이전 글이 괜찮았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이번 글은 보나마나 꽤 끔찍해질 예정이다. 길고 딱딱하고 재미없는... 그러니 이쯤에서 떠날 분들은 떠나시라.


이어질 글의 주제는 '인종차별'이다. 





그러니까 왜 허고 많은 언어 중에서 중국어였단 말인가?



이 표현의 핵심은 <상대는 못 알아듣는다>는데 있다. 그러니까 중국어는 못 알아먹는 언어라는 소리다. 왜 그럴까?


1차적으로 중국어는 독일인에게 낯선 언어이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해외여행도 빈번하고, 다양한 매체를 통한 외국어를 접할 기회가 많아졌지만, 과거에는 그러지 못했다. 독일인이 중국어를 접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사실 외국의 영화나 동영상을 독일어로 더빙된 것을 선호하는 독일인들이니 이는 비단 과거에 국한된 것이 아닌 현재적인 문제일 수도 있겠다.  


둘째, 중국어는 독일어와는 매우 다른 언어적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발성 방식도 생소할 뿐 아니라 4성이라 알려져 있는 음절의 구분 방법, 음의 높낮이 구분은 독일어에서는 찾기 어려운 특성이다. 사실,  의미가 전달되지 않은 낯선 언어는 사실 노래에 가깝게 들린다. 마치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엘프의 언어가 우리에게 신비한 노래로 들렸던 것처럼.


동영상 출처: https://youtu.be/DT-xR-R9VkU




위와 같은 이유에서 따지고 보면, 독일인의 이 표현은 충분히 이해될 법 하다. 그렇지만 여전히 여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존재한다.


일단 내(동양인)가 그 표현을 듣는 것이 거북했다.

물론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몇 번 이 주제에 대해 따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한 사람의 동양인으로써 처음 이 표현을 듣는 순간 '턱' 하고 걸리는 듯한 불편감이 분명히 있었다.


그럼 이 불편감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여기에는 중국어(혹은 이가 대변하고 있는 동양의 언어)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라는 인식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특정 민족 또는 어떤 언어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을 심어줄 수 있다. 이는 일상의 인종차별적 행위와 결합하여 세한 공격성(microaggression)의 한 부분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는 흔히 '칭챙총'이라고 대표되는 동양 언어에 대한 비하 및 희화된 표현이 있다. 그들은 자신이 들리는 소리대로 표현했으며, 절대 차별하거나 무시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많은 아시아인들은 이에 대한 차별감, 나아가 모멸감을 느낀다.




누군가는 그것을 그저 느낌일 뿐이며, 사실이 아니라고 말할 지 모른다. 아니면 너의 피해의식일 뿐이며 오히려 망상에 가까워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할 수도 있겠다.


옳다. 세상에 100% 확신할 수 있는 진실이란 없으니, 그 부분은 인정하마.

하지만 단순히 그렇게 넘기기에 독일인을 비롯한 유럽인들의 동양인에 대한 비하는 꽤 뿌리가 깊다.

  

대표적인 예로 에드워드 사이먼의 에드워드 사이먼의 《오리엔탈리즘》(1978)을 들수 있다. 이는 18세기 후반 유럽 지식인들 사이에서 확산된 의식으로 여기에는 우월한 서양인과 미개한 동양인을 대조시켜 묘사하였다. 결국 이는 동양을 개화의 대상으로 보는 서구의 제국주의를 정당화 했다.


이 뿐 아니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계 노동인구가 다량 유입되었다. 1920년 대에 들어서는 베를린에 중국인 커뮤니티가 형성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나치 정부가 들어선 뒤 독일에서는 이들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의도적으로 사회적으로 배제했으며, 심지어는 아시아 민족을 열등하다고 낙인 찍는 정치적 선동도 있었다.


물론, 2차 세계 대전 이후 이러한 아이사인의 차별에 대한 양상이 수면 위로 드러난 적은 비교적 적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이러한 편견과 배제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Chou & Feagin의 2015년 논문 <소수자 모델의 신화: 인종차별에 직면한 아시아계 미국인 (Myth of the Model Minority. Asian Americans facing racism)>에는 아시아 이주민들은 흔히 "모범적 소수자"라고 인식되고 있는데, 이런 표현은 그들에 대한 찬사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겪고 있는 차별을 감추고 '보이지 않게' 만들 뿐이다 라고 비판했다. 이는 독일의 아시아 이주민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결국 최근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 이러한 뿌리 깊은 차별은 몇 차례 수면 위로 등장하기도 했다. 2020년 2월 19일 하나우 총격 사건이 대표적인 예이다. 극우 단체의 멤버로 추정되는 인물이 인종차별적 동기를 바탕으로 총기를 난사한 사건이다. 이 사고로 터키와 중동 쿠르드 인을 포함한 9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여전히 보이지 않는 수면 아래, 뿌리 깊은 동양인에 대한 차별의 실재를 확인할 수 있었던 대목이다.


"내가 중국어 해?"


오랫동안 일상적으로 사용되어 온 관용어 한 문장에 체한 듯한 불편감을 느꼈던 이유?

어쩌면 이렇듯 오랜 시간 깊이 뿌리 내려 있던 그들의 태도가 무심결에 내 목덜미를 잡아챘기 때문은 아닐까?






논쟁을 더 이어 가진 않으려 한다. 이 부분을 확대해석하여 독일인들 다수의 문화감수성을 부재로 몰고 가고 싶지 않다. 더욱이 외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는 어떤 동양인들의 피해의식 정도로 치부하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다.


어쩌면 이는 사실 그들의 문화감수성, 우리의 피해의식이 모두 적당히 섞여 만들어 낸 현상일지도 모른다.  





마치 문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선 두 사람의 모습이 떠오른다. 문 안에 있는 터줏대감과 문 안으로 들어가려는 외부인.


이 둘이 만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군가는 문을 열어야겠지.

그리고 누군가는 다가가야겠지.

그러면 둘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두 사람이 함께 움직인다면?

아마도 둘은 더욱 빨리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이민자의 피해의식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민자들은 이민자로서 해야 할 몫이 있다. 마음의 문을 닫지 말아라. 조금 더 용기를 내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럼 이미 자리잡은 터줏대감, 독일인들은 해야할 것이 없나? 아니, 그들 역시 뼈 아픈 현실을 직시할 용기가 필요하다. 역사의 오랜 시간 자신도 모르는 새 자리잡은 깊은 차별적 의식이 존재함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단단한 마음을 내려 놓고 문을 열고, 손을  내밀어 줄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내가 중국어 하는 것 같아?"


이 말 때문에 문화감수성, 그리고 피해의식. 해결하기 어려운 두가지 주제에 낚여버렸다.

실로 안타깝다. 재미없는 사람이 또다시 재미없는 글을 쓰게 만들었다.

다음에는 조금 더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더 알아보기] 독일 문화 Tip


독일은 인종차별이 없는 청정한 국가일까?


일부 설문조사와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 내 외국인들 역시 인종차별을 (주관적으로) 자주 경험했다고 한다. 독일 대표적인 싱크탱크로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유럽 종합 미디어 그룹 베텔스만(*참고) 재단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독일 이주민의 35%가 인종차별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이는 주로 외모, 외국어 억양, 또는 종교적인 이유로 발생했다고 보고되었다. 특히 응답자 중 무슬림의 72%는 일상생활에서 빈번한 차별을 겪는다고 보고 했다 (Anadolu Agency, 2023).  


또 다른 설문으로 독일 통합 및 이주 연구소(DeZIM)에 따르면, 응답자 중 흑인 54%가 최소 한 번 이상 독일에서 인종차별을 경험했다고 한다 (DeZIM, 2021). 특히 이 보고서에서는 코로나 팬더믹 이후 반 아시아(Anti-Asian) 인종차별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설문에 참여한 아시아계 독일 이주민 700명 중 49%가 팬더믹 기간동안 인종차별을 경험했다고 한다 (Suda et al., 2020).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독일에도 보이는 곳에서 혹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자리잡은 문화 및 인종차별의 양상이 존재함을 확인시켜준다. 그러나 너무 우울해 할 필요는 없다. 이러한 사실을 오롯이 직시하고, 인정하고, 토론과 타협을 통해 조정하고 수정해 나갈 수 있다면 이는 충분히 긍정적이다.


실제로 '하나우 총격 사건' 이후에는 당시 메르켈 총리를 비롯한 많은 정치인들이 외국인 혐오에 대한 강한 반대와 해결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대다수 국민의 사회적 동의를 공고히 하기도 했다. 또한 최근 극우정당 AFD이 약진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내가 살고 있는 Marburg라는 도시에서는 주말마다 다수의 시민들이 모여 '차별 반대 행진'을 진행하기도 했다.   


사실, 인종차별의 청정국가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할까? 따지고보면, 우리나라야 말로 '단일민족, 단일국가'를 기치에 내건 외부 배타성의 양상을 보이는 국가 아닌가?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덮어두는 것이 무서운 법이다. 안으로 곪아들어가는 상처보다 외부로 노출된 상처가 치료되기 쉽다. 그러니 너무 두려워 말고, 담대히 앞으로 나아가자.





** 참조문서**

Anadolu Agency. (2023, April 25). 35% of migrants in Germany experienced racial discrimination: Survey. ANews. (https://www.anews.com.tr/europe/2023/04/25/35-of-migrants-in-germany-experienced-racial-discrimination-survey)


Deutsches Zentrum für Integrations- und Migrationsforschung (DeZIM). (2021). Rassistische Realitäten: Wie setzt sich Deutschland mit Rassismus auseinander? https://www.rassismusmonitor.de/fileadmin/user_upload/NaDiRa/CATI_Studie_Rassistische_Realit%C3%A4ten/DeZIM-Rassismusmonitor-Studie_Rassistische-Realit%C3%A4ten_Wie-setzt-sich-Deutschland-mit-Rassismus-auseinander.pdf


Suda, Kimiko; Mayer, Sabrina J.; Nguyen, Christoph G.; Köhler, Jonas. (2020). Antiasiatischer Rassismus in Zeiten der Corona-Pandemie: Innenperspektive quantitative Erhebung. Datensatz, Version 1.0.0. Berlin: Deutsches Zentrum für Integrations- und Migrationsforschung (DeZ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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