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독일 정신병동에서 일하게 되기까지
2023년 11월 넷플릭스에 공개되었던 한국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봄이와요>.
정신병이라는 자칫 우리와 동떨어진 남의 이야기로 치부되던 소재를 "누구나 마음이 아플 수 있다"는 사실을 환기하며, 관심과 공감, 위로를 주었던 웰메이드 드라마였다.
나는 이 드라마를 독일에서 보았고, 즉시 친밀감을 느꼈다. 그 이유는 첫째,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이고, 둘째 나도 현재 독일 정신병동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 몇몇 글을 통해 내가 여기에서 경험한 바를 나누고 싶다. 오늘은 그 첫번째로 내가 어떻게 여기에서 일하게 되었는지, 내 지난 삶의 과정을 추려 쓰려고 한다.
독일에서 거주한 지 5년에 되어 간다. 그리고 그 지난 5년간 경제적 문제는 우리가 늘 직면해야만 했던 골리앗이었다. 물론 요즘 시대에 물가가 비싸지 않은 곳이 어디 있으며,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지 않는 가구가 얼마나 있으랴? 누구냐, 어디에서나 겪는 일상으로 뭐 그리 호들갑일까 싶겠으나, 단기 해외유학이 기약없는 해외이민으로 바뀌어 왔던 지난 5년이었기에, 미리 예상하지 못했던 대처하기 어려운 현실의 순간마다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다.
처음 2년은 어학비자와 대학 비자로 있었다. 어학준비생들을 포함하여 대학 유학생들은 법적으로 '미니잡(Minijob)'이라고 하는 파트타임의 일만 할 수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알바'에 가깝다. 참고로 독일에서 '알바: 아르바이트'는 일반적인 모든 근로(Arbeit) 형태를 아우르는 표현이다. 미니잡은 2023년부터 520유로의 상한 기준을 가지고 있었지만, 내가 입국했던 당시반 하더라도 450유로 정도에 불과했다.
오히려 유학생들은 자신의 경제력을 스스로 증명해야만 했는데, 당시기준으로 매월 720유로(2018년 기준, 현재 934유로) 정도되는 6개월 혹은 1년 만기의 차단계좌(Sperrkont, blocked account)를 만들어야만 비자발급이 가능했다. 달리말하면 한 사람이 1년 동안 거주하기 위해서 8,640유로(약 1,200만원)의 금액을 늘 확보하고 있어야만 했다는 의미있다. 나는 아내와 세 명의 자녀를 포함한 다섯명의 재정을 보증해야만 했다. 아이들의 경우는 초등학생이 되기 전까지만 절반의 금액을 보증하면 되었고, 이후부터는 성인과 동일한 금액을 차단계좌로 묶어두어야 했다. 즉, 대략 매년 4,800만 원에서 5,000만 원은 금액은 사용할 수 없는 돈으로 묶어두어야 했다는 의미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기본적인 의식주만 생각해보더라도 생활이 수월할 리 없었다. 매월 1,000유로(약 145만원)가 넘는 월세를 지불해야 했다. 이것 역시 시골의 집이라 그나마 저렴한 편이었다. 그나마 어린 아이들이 있는 대가족에게는 집을 잘 주지 않는다는 소리까지 들은 터였다. 막 자라나는 아이들이 있는 대식구들의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저렴한 식재료만 찾아다니더라도 매월 700유로(약 100만원) 이하로 맞추기 어려웠다. 옷은 사지 않고, 집에서 밥만 먹고 숨만 쉬더라도 250에서 300만원이 필요했다. 내가 법적으로 벌 수 있는 금액이란 한 달에 약 65만원 정도의 미니잡이 전부였다. 마이너스도 이런 마이너스가 없었다.
그나마 합리적인 독일의 정책이 있었기 때문에 살 수 있었다. 나의 경우는 유학생 비자였지만, 아내와 아이들은 가족 동거인 비자(Familienzusammenführung, Aufenthaltserlaubnis für Familienmitglieder)를 받았다. 그리고 동반비자를 받은 아내에게는 독일고용청(Arbeitagentur)으로부터 아무런 제약이 없는 고용허가(Beschäftigungserlaubnis)가 주어졌다. 덕분에 아내가 일을 했따. 물론 우리가 도착한 뒤 코로나 팬데믹이 있었기에 어느 정도 휴식기가 있었지만, 코로나가 조금 잠잠해지자 부지런한 아내가 직접 프랑크푸르트까지 이동하여 일을 해 준 덕분에 살 수 있었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하면 모든 사람은 기적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보통의 경우 석사 이하의 유학생에게 가족동반비자를 발급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받는다고 하더라도 6개월의 초단기로 비자를 갱신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우리는 적어도 매년 갱신하는 1년 비자를 발급받았고, 유학준비생 비자에서부터 가족동반비자를 발급받아 모든 가족이 함께 거주할 수 있었으니 독일 비자발급 시스템의 내용을 아는 사람들이 우리 가족의 사례를 들을 때면 늘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독일의 비자의 승인은 해당 관청의 직원에게 많은 재량이 부여된다. 같은 지역이라도 관할 관청에 따라 분위기가 다르고, 같은 관할청이라도 어떤 직원을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는 모든 준비를 철저히 해야하는 한국인의 기준에 따르면 매우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상황이지만, 반대로 우리와 같이 매우 기적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되기도 한다.
그런 아내의 헌신이 있었지만, 역시 한 사람의 급여로 다섯가족이 생활하는 것에는 많은 한계가 있었다. 코로나 판데믹 2년 간 고군분투했지만, 가계의 손실의 격차를 막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다만 그 어려운 시간들 속에서도 아이들이 독일에 잘 적응해 주었기 때문에, 이젠 유학이 아닌 독일에서 장기로 거주할 계획을 세워야 했더랬다. 어쩔 수 없이 기존에 준비하던 공부는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나도 아내와 같이 풀타임(Vollzeit)로 일해야 했다.
그렇게 찾은 곳은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독일의 정신병동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정신과 요양원(Psychiatrisches Pflegeheim)이다. 정신병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적 재활, 사회적 통합의 과정을 위해 전문적으로 관리받는 생활형 그룹홈(Grup Home)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사실 독일에서는 이런 사회적 분야, 특히 보건과 요양 분야에서 많은 전문 인력들을 필요로 한다. 독일 교육과 보건 분야의 인력난은 이미 유명하다. 예를들어, 독일 보건 분야에서 앞으로 1.8백만 개의 일자리가 2035년까지 채워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전체 수용의 약 35%가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독일의 상황은 나에게 오히려 호재가 되었다. 나는 비교적 수월하게 취업할 수 있었다. 물론,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었다면 이것은 내가 완전히 원하던 일은 아니었다. 다만, 나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기 위해 버틸 수 있는 경제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었다.
[참고] 독일 전문 인력 구직난에 대한 정보 (아래)
https://www.pwc.de/de/gesundheitswesen-und-pharma/fachkraeftemangel-im-deutschen-gesundheitswesen-2022.html
Fachkräftemangel im deutschen Gesundheitswesen 2022 PwC-Studie zum Fachkräftemangel im deutschen Gesundheitswesen: Im Jahr 2035 kann ein Drittel der offenen Stellen nicht mehr besetzt werden. www.pwc.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