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물러갔다. 이제 밤에 선풍기를 틀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새벽에는 한기를 느낀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리는 풀벌레 소리가 좋다. 신기하게도 입추가 지나면 밤에 매미 소리 대신 풀벌레 소리가 들린다. 한밤중에도 더위가 가시지 않아 울던 매미들이 입추가 된 건 어떻게 알까. 어떻게 매년 입추가 되면 더위가 가시는 걸까. 아니 옛사람들은 어떻게 폭염이 몰려갈 것을 알고 입추라는 절기를 만들었을까. 매년 입추 때면 폭염이 가시는 걸 알기에 그 더운 날들도 잘 견딜 수 있었다.
그런데 올해 더위는 유별나기는 했다. 140년 만에 찾아온 더위라더라. 선풍기를 켜고 에어컨을 켤 수도 있지만 하루 종일 그럴 수는 없었다. 자고 일어나면 목에 닿는 머리카락까지 더웠다. 그렇게 긴 머리도 아닌데 답답했다.
약 15년간 단발을 유지하고 있다. 목이 드러나게 자르고 어깨에 닿기 전에 자른다. 10대, 20대에는 가슴 언저리에 오는 길이를 유지했다. 처음 단발을 했을 때도(처음이라는 말은 맞지 않지만 오랜 단발 유지의 처음 시점에는) 그렇게 머리가 가벼울 수가 없었다. 왜 진작 머리를 자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후회할 만큼 시원했다.
뒷머리만 없으면 훨씬 시원할 텐데... 머리를 잘라볼까? 머리가 뻗치면 어쩌지? 묶을 수도 없는데. 에잇, 머리는 자라는 건데 한번 잘라보지 뭐. 내 머리는 빨리 자라잖아.
며칠 고민하다가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잘랐다. 길이가 짧으면 힘이 없어서 잘 삐칠 줄 알았는데 약간 곱실거리는 내 머리는 예상과 달리 머리 모양이 잘 잡혔다.
목덜미에서 잡히던 게 없어서 아직도 어색하지만 정말 잘 잘랐다. 머리숱이 많아서 머리를 감거나 말릴 때 남보다 곱절 걸리던 시간이 반으로 준 것이다. 샴푸도 아끼고 트리트먼트를 건너뛸 수도 있다. 시간도 아끼고 헤어드라이어를 돌리는 전기도 아낄 수 있다. 이 편한 걸 이제야 하다니!
머리카락을 줄이니 생활에서 빠지는 게 많아졌다. 머리카락 미니멀은 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