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바게트 빵, 에펠 타워, 마카롱 등 여러 가지 떠오르는 이미지 그중 하나는 ‘평등’ 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프랑스의 국가 표어가 바로 자유, 평등, 우애 (Liberté, Égalité, Fraternité)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프랑스를 생각하면 ‘평등’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고, 프랑스 대학을 생각하면 코피 터지게 치열한 입시전쟁이 있는 한국과 대비되어 모든 대학이 평등하게 우열을 가리지 않게 하기 위해 도시에 숫자를 붙인 것이 생각난다.
파리 1 대학, 파리 2 대학… 같이 말이다. 나는 파리 4 대학 (파리-소르본느 대학)에 한 학기 교환학생을 가게 되어서 뜻밖의 장면을 목격했다.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대학(université 혹은 faculté 를 줄여서 fac이라고 흔히 얘기한다)을 다니면서 그랑제꼴(grandes écoles)을 준비한다는 사실이었다.
프랑스에는 국립학교인 우리가 흔히 아는 번호가 붙여진 대학교가 있고, 사립학교인 그랑제꼴이 있다. (그랑제꼴에도 국립은 존재한다. 행정, 정치 관련 그랑제꼴은 국립이지만 대부분의 경영 그랑제꼴은 사립인 경우가 많다.)
대학과 그랑제꼴 둘의 가장 큰 차이는 입학절차 일 테다. 국립학교는 프랑스의 수능이라고 말할 수 있는 바칼로레아를 통과하면 누구나 입학할 수 있는 반면 그랑제꼴은 학교마다 입학시험이 따로 존재하여 보통 이를 위해 2년 동안의 입시시험 준비(classe preparatoire)를 한다.
프랑스에 어떤 그랑제꼴이 있는지 알기 위해 프랑스 전현직 대통령의 출신 대학교를 한번 봐보자.
에마뉘엘 마크롱
- 파리정치대학(L'Institut d'études politiques de Paris, Sciences Po)
프랑스와 올랑드
- 파리경영대학(HEC Paris), 파리정치대학, 국립행정학교(L'École Nationale d'Administration, ENA)
니콜라 사르코지
- 파리 10 대학
자크 시라크
- 파리정치대학, 국립행정학교
프랑스와 미테랑
- 파리정치대학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
- 국립행정학교, 에콜 폴리테크니크(École Polytechnique, EP)
조르주 퐁피두
- 파리정치대학, 파리고등사범학교(École Normale Supérieure, ENS)
전현직 대통령 7명 중 파리 10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니콜라 사르코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그랑제꼴 출신이다. 사실 니콜라 사르코지도 파리정치대학에 입학하였지만 저조한 영어성적으로 학위는 받지 못했다고 한다.
대학(université)과 그랑제꼴(grandes écoles)의 차이는 두 번째로 등록금에 있다. 대학은 한국 사람들이 잘 아는 바와 같이 등록금이 저렴하고, 그랑제꼴은 대체적으로 비싸다.
2020-2021년 파리 4 대학 학부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을 살펴보자.
학비 134유로, 도서관비 34유로로 총 170유로이다. 한화로 약 23만 원인 것이다 (그렇다, 1년 등록금이 맞다).
이번에는 그랑제꼴인 파리정치대학의 2020-2021년 학부 등록금을 살펴보자.
파리정치대학의 학부 등록금은 부모의 수입에 따라 다르다. 부모의 수입이 많을 수록 학생 또한 등록금이 비싸고, 수입이 적을수록 등록금도 적어진다. 부모의 수입이 가장 많은 학생의 등록금을 기준으로 10,700 유로, 즉 한화로 약 1천445만 원 정도이다. 하지만 부모의 연간 수입이 1700만 원 이하라면 등록금은 무료이다.
그랑제꼴은 차등 등록금 제도가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가장 비싼 등록금을 기준으로 하면 공립과 사립의 등록금이 무려 60배나 차이 나는 것이다.
이렇게 등록금도 차이나고 입학 과정도 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사립학교인 그랑제꼴을 가려는 학생들이 이유는 사회적으로 그랑제꼴을 졸업했을 때의 인정하는 바가 크고, 학부에서부터 네트워킹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대학에서는 입학 절차가 까다롭지 않은 만큼 각계각층의 다양한 학생들을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막연히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프랑스는 실제로 맞닥뜨리니 엄연히 엘리트 코스가 존재하는 사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립학교의 저렴한 등록금, 그랑제꼴에도 부모의 수입에 따른 차등 등록금 제도는 ‘평등’이라는 표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프랑스만의 흔적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