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녀방에 살면서 정말 만족했다. 천장이 기울어져있어 하늘과도 더 가깝고, 무엇보다 학교와 5분 거리라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석사 학위 과정 2년 동안 한 학기는 인턴을 해야 했기에 내가 원하던 인턴 자리를 얻은 리옹으로 이사 가면서 아쉽지만 그 방을 다른 사람에게 건네주어야만 했다.
인턴이 끝난 후 되돌아온 파리에서 다시 나의 집 찾기가 시작되었다. 연애를 할 때 다음 사람은 그전에 만났던 사람의 반대를 찾는다고 했던가. 나는 자연스레 9m²(2.7평)보다 조금 더 큰 집을 찾아보게 되었는데 큰집이면서 월세를 크게 늘리지 않기 위해서는 룸메이트(colocataire)를 찾는 방법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학교 커뮤니티에 올라온 룸메이트를 찾는 글 덕분에 바로 집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한 학기 동안 내가 살 곳은 파리 10구의 북역 (Gare du Nord)에 위치한 35m²(약 10평) 짜리 투룸의 2층 침대에서 묵게 되었다.
북역은 서울로 치면 서울역과 견줄 수 있을 만큼, 각 지방과 수도권을 연결하는 교통망이 잘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서울역에도 노숙자가 많듯 북역 주위에도 부랑자와 노숙자가 정말 많았다. 북역에서 라샤펠(la chapelle) 역 사이에 있었던 우리 집은 역을 나가서 지나다니는 사람들만 보면 내가 파리에 있다고 믿기 어려웠다.
그 이유는 바로 이곳은 인도, 파키스탄 사람들이 주로 사는 동네였기 때문이다. 거리에는 인도 식당과 전통 인도 옷을 파는 옷가게, 액세서리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다.
내가 이사를 간 후 우리 동네로 놀러 온 친구가 하는 말이 ‘이 거리에는 여자가 없어..’라는 것이었다. 눈을 씻고 정말 주변을 둘러보니, 거리를 걷고 있는 여자들은 우리 둘 말고는 몇몇 되지 않았다. 파리 10구는 여성을 상대로 한 모욕적인 언행이 길가에서 흔하게 이뤄지는 구로 2017년에 크게 언론에서 다루어지기도 하였다.
[르 파리지앵, 파리: 10구의 길거리 추행에 멈춤을 외치다]
그래서 그런지 10구에는 거리에 여성이 많이 없고, 여성이 있더라고 걸어 다닐 거리를 생각하고 다녀야 할 정도로 치안이 좋지 않았다. 나 또한 이 집에서 한 학기 동안 살면서 조금 더 큰 집을 얻은 대신에 많은 불미스러운 일을 겪었다. 집에 오는 길에 누가 나를 따라오기도 하고, 모욕적인 언행을 듣기도, 하고 심지어 강도를 당해서 가방, 핸드폰, 노트북 등을 뺏기고 덕분에 경찰에도 가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인도식당은 질리도록 많이 가봐서 맛있는 인도 맛집은 눈감고도 꼽을 수 있게 되었다. 파리인 듯 파리 아닌, 인도인 듯 인도 아닌 파리 10구에서의 거주 기억은 강렬한 향신료 냄새와 긴장한 어깨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