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석사 마지막 학기 나는 룸메이트를 구하게 되었다. 내 룸메이트인 알리스는 나와 같은 대학원을 나보다 1년 일찍 졸업하여 인턴 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매일 수업에, 넘치는 과제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힘없이 살고 있었는데 반면 알리스는 퇴근을 하자마자 집에 오면 무조건 30분 안에 나갈 차비를 하는 것이었다. 약속에 파티에 전시회에 축제에 정말 저러다가 입술이 터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매일매일 나갔다.
문득 집에서 ‘나와 있는 것이 불편한가?’라는 생각이 들어 알리스한테 ‘혹시 나와 함께 집에 있는 게 불편해서 매일 나가는 거야?’라고 물어봤다. 알리스는 손사래를 치며 그게 아니라 하루 종일 회사에서 다른 사람의 일을 하였는데 퇴근 이후의 시간이라도 나를 위해 유용하게 보내지 않으면 억울한 생각이 든다는 것이었다.
당시 공부를 하고 있었고, 그때까지 조직에서 일을 하는 것은 조직에서 나를 써주는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하던 나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피곤할 텐데 왜 저렇게 필사적으로 자기의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프랑스 NGO에서 인턴 생활을 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나는 인사팀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동료가 일이 몰리는 기간이 있어 삼일 정도 7시가 조금 넘게 퇴근하였다. 그 동료를 걱정하는 다른 동료는 ‘일 쉬엄쉬엄해, 그러다가 번아웃 와.’라며 그 동료를 걱정하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정령 3일 동안 1시간 더 일했다고 번아웃을 걱정하는 건가.’ 하며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들은 7시 정도의 야근은 ‘야근’이라고 인정받지도 못했고, 컨설팅 업계에서 일하는 친구들은 12시는 예사고 심지어 새벽 3시에 택시를 타고 집에 들어가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런 현실의 한국에서 온 나로서는 이러한 동료의 걱정이 우습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고작 1시간 더 일한다고 워라밸을 걱정하다니, 물론 직종이나 업계마다 분위기가 다르겠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정말 태평한 사람들이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로 5년이 지난 지금 한국 또한 많이 일과 삶을 대하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인생을 일과 동일시하던 분위기는 옅어지고 점점 개인의 시간을 중요시하게 되었다.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나 또한 알리스가 그렇게 필사적으로 퇴근 후에 최대한 자신을 위해 즐거운 일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이유, 자신에게 할당된 시간을 일하는 데 사용하는 동료를 걱정하는 분위기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알게 되었다. 7시에 퇴근하는 동료의 번아웃을 걱정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 아닌 개인에게 주어진 각자의 시간을 최대한으로 존중하는 마음이 듬뿍 담겨있는 애정 어린 걱정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