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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mas Mar 10. 2022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_김초엽









이북리더기 사고 두 번째로 읽은 책,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yes24 북클럽을 통해 다운로드 받았다.




첫 번째로 읽은 책은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인데 조만간 짬을 내어 짧게라도 리뷰할 예정.








김초엽 소설은 sf 단편집 pandemic(팬데믹)에 실린 ‘최후의 라이오니’로 처음 읽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김초엽의 sf 소설을 모아놓은 단편집인데, 팬데믹에서 김초엽이 쓴 소설이 어느 챕터인지 확인하고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전반적으로 비슷한 느낌이었기 때문.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김초엽이 궁금해하고 좋아하는 이야기가 어떤 류인지 알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존재를 만나고, 그 존재를 이해하려고 애써보면서 세계를 조금씩 넓혀가는 이야기.




우주와 외계인에 대한 이야기인데 어쩐지 인간에 대한 이야기로 읽혔다. 인간을 하나의 개별적인 우주로 비유하기도 하듯이, 낯선 세상과 존재를 만나고 그것을 탐구하고 천착하는 과정의 끝없는 반복이 인간과 인간이 관계맺는 과정같기도 해서.




한 인간을 만나는 것, 또 그 인간을 이해하는 것은 ‘저편의 우주’를 만나고 그 행성 안의 낯선 생물체를 이해하는 것과 같다. 끝없이 연구해서 완전히 파헤치고 정복하고 싶지만 그럴수록 어려움에 부딪히며 결국엔 미완의 과제, 가닿을 수 없는 미지의 영역에 남게 되는 것.




요즘 부쩍 인간을 이해하는 게 너무 어렵다는, 아니 어쩌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한다.




거의 완벽하게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거나, 지지해줄 거라고 믿었던 사람이 등을 돌리거나, 미워했던 사람을 어느 순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우주 한복판에 던져진 우주인같은 처지가 된다.




내가 믿어왔던 세상은, 딱 내가 그러길 바랐던 이상과 신념의 발현일 뿐 진실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탐구하고 천착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우주 어딘가에 우리와 같은 모습을 한 지능적 존재가 있다는 믿음을 놓지 않는 것처럼, 거듭된 실패에도 과학자들에 우주에 대한 연구를 멈추지 않는 것처럼.















책과 관련없는 내 감상만 주절주절 적었다. 좀 생각이 많아져서..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책은 좋은 책이다. 생각을 하고 싶어 책을 집어드는 거니까.




7개의 에피소드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챕터는 ‘관내분실’이다.




사람이 죽은 후 뇌속 뉴런의 시냅스를 복사해 데이터로 만들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도서관’에서 만날 수 있는 시대.




지민의 엄마 은하도 죽음을 맞이한 후 도서관에 복사되지만 데이터를 찾을 수 있는 인덱스가 삭제되어 도서관 내에서 분실된다.




망자의 데이터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은 고인을 특정할 수 있는 물건을 가져와 특정한 시냅스 연결을 키워드로 검색하는 것.




그런데 지민은 은하를 특정할 수 있는 추억이나 물건이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당황한다. 은하는 그저 그림같이 ‘엄마’로 존재하며 누구에게나 비슷한 의미가 있는 물건만을 소유했을 뿐 인간 ‘김은하’를 특정하는 물건은 남기지 않았다.




은하는 지민을 낳고부터 산후 우울증에 시달리며 평생 지민을 온전히 사랑하는 ‘좋은 엄마’ 역할을 하지 못했고, 지민 역시 그런 엄마를 온전히 사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은하의 삶에서 은하가 은하일 수 있게 한 흔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지민으로 하여금 은하가 평생을 괴로워했던 이유에 대한 이해의 씨앗을 심어주었다.




결국 은하를 찾아낼 수 있었던 물건은 지민을 낳기 전 은하가 일했던 회사에서 만든 종이책의 표지. 김은하라는 이름을 달고 김은하가 만든 유일한 물건.




지민은 결국 방대한 데이터의 세계에서 실종되었던 은하를 찾고, 말한다. “이제 엄마를 이해한다”고.










나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아무도 모르는 존재를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


나라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와 다른 사람의 인식을 통해 나라는 특성을 형성한다면, 나를 나라고 불러주고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존재를 존재라고 할 수 있나?




그리고 우리 사회에 분명히 존재하나, 절대로 찾을 수 없는 존재들을 떠올려 본다. 이를테면 홀로 폐지를 주우며 더운 날엔 덥게, 추운 날엔 춥게 살아가다 골방에서 아무도 모르는 죽음을 맞이하는 어떤 노인. 그 노인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단서를 댈 수 있을까? 그 노인이 좋아하는 음식, 노인이 애착을 갖고 있는 물건, 노인의 꿈, 노인이 사랑했던 사람들을. 우리는 알아낼 수 있을까.




이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더욱더 애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애써야할 정도로 우리는 너무 보통의 삶을 살고 있으니까.




누군가 나를 간절히 찾아야 하는 순간이 올 때,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는 고유한 것들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관외분실보다 관내분실이 더욱 지독한 법이니까.






p.s 김초엽은 천재고, 나와 동갑이다.(어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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