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lti-Universe, 어딘가에 존재하는 나의 미래에 닿기 위하여
여러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중첩과 한쪽의 변화가 다른 쪽에 영향을 미치는 얽힘의 상태
양자역학에서 중첩(superposition)이란 하나의 입자가 어떤 상태로 결정되기 전까지는 동시에 여러 상태로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한다. 중첩의 세계에선 결정되는 그 순간까지 세계는 하나로 굳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얽힘(entanglement)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우주의 다른 세계라 할지라도 한쪽의 변화가 다른 쪽에 즉시 영향을 미치는 상태를 말한다. 보이지 않는 실로 서로 연결된 것처럼 말이다.
이 두 개념 위에 과학자들은 Multi-universe, 수없이 갈라진 세계들의 공존을 상상한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일어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결과대로 무수히 많은 평행우주가 생성된다는 이론은, 과학적 사실로 규명할 수 없다고 해도 우리 삶을 돌아보는 흥미로운 통찰을 건네준다. 그래서인지 멀티 유니버스는 지금껏 수많은 영화와 소설 속에 등장하며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선 개념이 아니게 되었다.
간절한 마음이란, 내가 원하는 미래의 어느 우주에 도달하기 위해 중첩된 시간들 사이를 건너가는 나침반 같은 건 아닐까.
우리는 매 순간 선택 앞에 선다.
고백을 할까, 말까...
도망칠까, 버틸까....
포기할까, 한 번 더 해볼까...
삶은 늘 그 사소한 갈림길에서 조용히 방향을 틀어왔다. 그 선택들이 만들어내는 미래는 사실 이미 수없이 중첩되어 존재하고 있다. 다만 아직 결정되지 않은 채로, 가능성의 상태일 뿐이다. 어쩌면 우리가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순간은, 이미 존재하던 수많은 미래 중 하나의 미래와 현재의 내가 마침내 완전히 얽힌 순간일지도 모른다. 간절한 마음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는, 나의 모든 선택의 순간에 작용하여 수많은 중첩된 세계 속에서 다른 가능성들을 조금씩 지워내고 '내가 바라는 미래'와 주파수를 맞춰갈 수 있게 해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간절히 바라도 오지 않은 미래가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시간들 속에 나의 현재와 얽혀있는 '분명히 존재하는 미래'라고 말이다.
'얽힘'은 단방향이 아니다. 이미 어딘가에 존재하는 '미래의 나'와 '현재의 나'가 서로를 향해 영향을 주면서 조금씩 다가가는 것이다.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는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하나의 순간 위에서 서로를 동시에 정의해 나가는 관계다. 그래서 간절함은 미래를 억지로 당겨오는 힘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수많은 가능성 중
내가 닿고 싶은 세계와 지금의 나의 파장을 맞추는 일이다.
우리는 갑자기 다른 삶으로 도약하지 않는다. 다만 오늘의 선택이 어제보다 아주 미세하게 미래의 어느 한 방향으로 기울어질 뿐이다. 그리고 그 미세한 기울어짐이 시간을 통과하며 겹쳐질 때, 어느 순간 우리는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내가 마침내 같은 파장으로 완전히 얽힌 순간임을 깨닫게 될 거다.
미래는 단 한 번의 결심이 아니다. 지금은 우리가 간절히 원했던 미래의 한복판을 통과하고 있을 뿐이다.
말하지 못한 말들,
돌아서지 않은 밤들,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방향들.
그 모든 선택이 겹치고, 흔들려 나는 나아가는 중이다.
그래서 삶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끝내 우리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지금, 우리가 간절히 원했던 미래의 한복판을 통과하고 있을 뿐이다.
간절한 마음만 잃지 않는다면,
그 마음의 방향을 따라가다 보면,
시간의 문제일 뿐 언젠가 원하던 미래에 닿는다는 걸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