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함'은 세상이 약속한 게 아니라 나의 기대가 만든 해석이다.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적합한 형질들이 선택되어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우열의 법칙은 어떤 형질은 더 쉽게 드러나고, 어떤 형질은 가려진 채 전해진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강한 유전자라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환경 안에서 살아남기에 유리하다고 여겨지는 유전형질이 선택되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것이다. 열성 유전자는 나쁘거나 약한 유전자가 아니라, 지금 살아남기에 덜 적합하여 발현되지 않는 것일 뿐, 환경이 바뀌면 가려졌던 형질이 살아남기 위한 조건이 되기도 하면서 다시 선택되기도 한다. 모든 선택은 본능적으로 내가 살아남기 위한 최적의 선택인 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내가 살아가는데 유리한 선택을 한다. 우리가 흔히 '이타적'이라 부르는 것들도 어쩌면 결국 나를 위한 선택일지 모른다.
“당연히 날 위해 이렇게 할 줄 알았지.”
“사랑한다면 이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사랑을 하게 되면,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향한 기준을 세운다. 그리고 그 기준안에서 상대가 움직여 주길 바라게 된다. 이런 마음은 사실 내가 덜 아프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상대의 행동보다 먼저 자란 나의 기대가 어느새 믿음이 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를 사랑한다면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요구가 된다. 그럴수록 이것은 '일방적 사랑'이 되기 쉽다. 그래서 결국 현실이 관계를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나의 믿음'이 우리를 무너뜨리게 된다. 우리가 믿어온 사랑은 어쩌면 너를 위해 나를 무한히 내어주는 완전한 이타적 감정이라기보다, 사랑받고 싶고 혼자 남겨지지 않고 싶은 '나'를 지키기 위해 항상 나를 먼저 생각해줘야 한다는 믿음을 요구하는 이기적 감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틀린 마음이 아니라 그저, 너무나도 인간적인 마음이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기꺼이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마음이 사랑이며, 일종의 '사랑'이란 이름의 구속 안에서 아이러니한 안정감을 느끼는 것 또한 인간적인 마음이니까.
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당연함’은 세상이 약속한 것이 아니다. 어쩌면 나의 입장에서만 '당연'한 아주 사적인 믿음일지도 모른다. 고통의 많은 부분은 현실 그 자체보다, 현실이 내 기대를 배반했다는 해석에서 생기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의라고 부르고, 가치라고 믿고, 옳음이라 여겨왔던 것들 역시 많은 경우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된 기대에 가깝다. 옳은 것들이 살아남은 게 아니라 살아남기 쉬운 것들이 선택되어 지속된 것처럼, 옳은 세상의 법칙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내가 덜 다치기 위해 선택해 온 나의 해석들이 있었을 뿐이다. 세상에 정말로 ‘당연한 것’이 있다면, 우리는 이렇게 자주 상처받지 않았을 것이다. 모두가 다 당연하지 않은 일은 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어쩌면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모두 다 나의 해석이다. 슬픔도 기쁨도 나의 해석의 결과라서, 나와 다른 해석을 하는 타인과는 언제나 그 결과가 같을 수 없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나의 세상이 좀 더 행복해지려면, 나의 해석의 결과가 나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계속해서 이해하고 수용하는 노력을 기울여야겠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그래야만 한다는 단정 대신,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해주는 마음이 필요하다.
인생은 당연한 가치들을 증명하는 시험이 아니라, 매 순간의 조건 속에서 내가 다시 살아갈 방법을 찾는 과정에 가깝다. 그래서 우리는 늘 선택하지만, 항상 옳은 선택을 해 온 존재는 아니다. 그저 그 순간의 나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해왔을 뿐이다. 그러니 누군가의 선택이 나의 기대를 어긋났다고 해서 그와 나의 관계가 실패한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당연하다고 믿었던 세계가 조금 더 넓어졌을 뿐이다. 그럴 수도 있는 세상에서, ‘왜 이래야만 했을까’를 다그치기보다 ‘그럴 수도 있었구나’를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하다. 당연함을 내려놓는다는 건, 기대가 무너질 때마다 분노와 억울함으로 나를 소모하는 대신 당연하지 않을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 다른 대안을 선택할 수 있는 마음의 여백을 둔다는 것이다. 그 여백이 주는 틈을 통해, 우리는 조금 덜 상처받으며 조금 더 오래 나답게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