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앞두며.
차에서 글을 쓰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다. 스마트폰으로 글을 쓰면 손목이나 목이 심하게 아플 것 같아서 접이식 블루투스 키보드를 가져왔는데, 충전이 되어있지 않아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우리 가족은 4월 2일쯤 원래 살던 집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의 아파트로 이사 가기로 계획했는데, 오늘은 그 집을 보러 가기로 했다. 친했던 친구들과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지는 것은 슬프지만, 새로운 곳에서의 새로운 시작이니 슬퍼하기보다는 힘을 내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집을 보러 갈 때는 내가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엄마가 받아온 안내 책자에 제공된다고 쓰여 있는 여러 전자제품이 실제로 들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칫솔 살균기와 수세미 살균기 등 신기한 제품들이 많이 쓰여 있었는데, 이게 들어가 있으면 참 좋겠다. 이사 갈 집을 둘러본 후에는 주변의 수산시장에서 회를 사서 돌아갈 계획이다. 사는 김에 산낙지와 전복, 새우, 가리비 등도 엄마가 사 주면 좋겠다. 회는 그대로 먹는 것도 맛있지만 밥에다 회와 함께 초장과 상추와 김을 넣은 다음 비벼 먹는 회덮밥이 제일 맛있다.
차를 타고 가며 글을 쓸 때 가장 좋은 점은 걸어다니는 사람들과 길가에 펴있는 동백꽃 등을 곁눈질하며 글을 쓸 수 있다는 점이다. 길가의 사람들은 전부 마스크를 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인 것 같다. 우리 차가 있는 쪽은 빨간불이 되었고,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횡단보도 쪽 신호등은 초록불이다. 자전거를 탄 아저씨 두 명이 신호등을 건넜다. 저 아저씨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어떤 대머리 아저씨는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대머리 아저씨는 왼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땅바닥에 떨어뜨린 무언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렸다. 신호등의 초록 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이내 횡단보도 쪽 신호등이 빨간 불이 되었고 길의 신호등은 초록 불로 바뀌었다. 아빠가 차를 출발시켰다.
아파트에 도착했다. 차단기가 열리지 않았다. 경비실을 호출했더니 남자 목소리가 호출을 받았다. 목소리가 몇 동 몇 호를 방문했는지 물었다. 우리 집의 동호수를 말했더니 차단기가 슥 하고 올라왔다. 아파트 주차장은 지금 내가 사는 아파트와 달랐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주차장이 지하 1층밖에 없는데, 여기는 주차장이 지하 2층까지 있었다. 또한 차가 주차되어 있는 자리는 빨간색, 차가 없어 주차할 수 있는 자리는 초록색 등으로 주차 상황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차에서 내려 아파트를 구경하러 출발했다.
집을 구경하고 나온 우리는 회를 뜨러 수산시장으로 출발했다. 배가 고프지 않도록 엄마가 간식을 사 주었다. 김밥 2줄, 음료 하나를 샀다. 수산시장에 도착한 우리는 주차장에 차를 대고 꼬불꼬불한 계단을 돌아서 내려갔다. 아뿔싸, 주차장에서 나오자마자 차가운 바람이 나를 후벼팠다. 아, 추워, 추워! 엄마가 걱정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 딸 너무 추운 거 아냐?" 춥지 않도록 뛰어서 우리가 자주 가는 횟집에 도착했다.
가게가 굉장히 작은 편인데, 몇 년 전부터인가 우리는 그 집에서만 회를 먹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있다면 주인 할머니께서 별다른 호객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점? 그런 부분에서 오히려 더 믿음이 가는 분이었다. 엄마와 아빠가 고기를 골랐다. 주인 할머니께서 추워서 떨고 있는 우리를 보고 가게 안쪽의 작은 자리를 내주셨다.
"여기 앉아서 기다려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엄마와 나는 자리에 앉았는데 아빠는 들어오지 않았다. 아빠는 안 앉냐고 물었는데 괜찮다고 했다. 할머니도 괜찮다고 하셨다. 괜찮습니다. 아이고, 괜찮아요, 괜찮아요! 아빠도 자리에 앉았다. 셋이 앉으니 자리가 꽉 찼다. 열선이 깔려 있는지 등과 엉덩이가 따뜻했다. 할머니께서는 우리들이 보는 앞에서 회를 뜨시기 시작했다. 생선을 손질하는 과정은 꽤 신기했다. 칼이 스윽 하고 지나가니 생선의 배가 반으로 갈렸다. 먹지 못할 부분을 잘라내어 다듬으시는 손길에서 내공이 느껴졌다. 다 잘린 회를 스티로폼 박스에 넣고 스티로폼 박스를 노란색 비닐봉지에 넣어 주셨다. 한 마디 질문도 잊지 않으셨다. 뭐 찍어 먹을 것도 할 거야? 우리는 마트에서 사는 초장이 더 맛있기 때문에 따로 사지 않았다.
회를 산 후에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 불현듯 떠오르는 사실이 있었다. 산낙지를 사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수산 시장에 갈 때마다 산낙지를 사 먹는다. 내가 산낙지를 엄청나게 좋아하기 때문이다. 산낙지를 처음 먹은 것은 10살 때 일식집에서였는데, 산낙지가 꿈틀거리며 입에 빨판이 달라붙는 느낌이 좋아서 그때부터 좋아하게 되었다.
"엄마! 우리 산낙지 안 샀어!"
"에이, 그냥 가자."
"오빠! 여진이가 먹고 싶다는데 좀 사줘라."
산낙지를 안 산 것이 떠오르자마자 엄마를 불렀지만, 아빠는 그냥 가자고 했다. 여진아, 우리 오늘은 산낙지 먹지 말자. 이유가 궁금했는데, 손질하기 귀찮기 때문이란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말들도 납득하기 힘들었다. 너 원래 산낙지 사와도 잘 안 먹잖아. 맨날 남기던데? 내가 언제 산낙지를 남겼는데? 아니... 좀 억지로 꾸역꾸역 먹는 느낌이었잖아. 아니거든? 엄마와 나의 반발 탓에 아빠가 결국 한 마디를 꺼냈다. 그래, 산낙지 사러 가자! 그 말에 가자, 가자! 하고 엄마와 나는 즉시 발걸음을 돌렸으나, 아빠는 어이 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함께 가주지 않았다. 여진아, 근데 너무 추워서 집에 가야겠다. 다음에 먹자. 내 편을 들어주던 엄마까지 이렇게 말하자 나는 산낙지를 포기하고 엄마와 아빠를 따라 주차장까지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초장과 그 외에도 이것저것을 사기 위해 수산시장 주변 마트로 향했다. 여진이도 따라 갈래? 마트를 구경하고 싶던 나는 얼른 주섬주섬 마스크를 끼고 따라 내렸다. 마트에 들어가자마자 핫바를 파는 아저씨가 핫바 3개 5000원! 하고 외쳤다. 나는 화장실에 가기 위해 엄마에게서 떨어져 화장실로 걸어갔다. 화장실로 가는 길에 낙엽 몇 개가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여기는 건물 안인데 왜 낙엽이 있지? 하고 나름대로 추측해봤는데, 밖과 통하는 문이 길 구석에 하나 붙어 있는 걸 봐서 문을 열어 두었을 때 바람을 타고 흘러들어온 듯 했다.
화장실에 다녀와 마트 쪽으로 나오니 엄마의 남색 겉옷과 염색한 갈색 머리가 보였다. 엄마는 우리 집 강아지 두부를 위한 간식을 고르고 있었다. 개껌을 하나 사고, 비스킷처럼 생긴 간식을 하나 샀다. 비스킷 모양 간식은 내가 먹어보고 싶을 정도로 맛있게 생겼다. 두부가 좋아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두부는 크림색 털을 가진 포메라니안인데, 정말 사랑스럽다. 그러나 우리가 맛있는 것, 이를테면 치킨 등을 먹을 때마다 짖어 대서 그럴 때마다 줄 간식이 필요하다.
옆 코너에는 치약을 팔고 있었는데, 마침 엄마와 나도 치약을 찾고 있었다. 집에 있던 치약을 다 써서 아빠가 해외 출장 갔을 때 받아온 이상한 치약(마치 순간접착제처럼 생겼다)을 쓰고 있었는데, 맛이 너무 이상했다. 새 치약을 사서 다행이었다. 우리는 초장과 쌈 채소 몇 가지를 바구니에 담았다. 계산을 하고 상자에 담은 다음, 다시 집으로 출발했다.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글을 쓰다 보니 시간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휙휙 빠르게 지나갔나 보다. 창 밖을 보니, 우리 집이 보인다. 환하게 반짝이고 있다. 벌써 도착했나 보다. 이제 이 집에서의 생활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후회 없이 더욱 알차게 보내고 싶다. 맛있는 회를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양 손이 무겁다. 일상이란 이다지도 소중하고 아름다운 일이었던가. 이사로 인해 내 일상이 얼마나 달라질지 궁금해진다. 분명한 것은 어디에서 어떤 일상을 보내든 나는 매일매일 감사하는 삶을 산다는 사실이다.
돌이켜 보자면, 이 집에서 보내왔던 일상은 너무나도 감사한 것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내게 주어질 새로운 일상도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나는 앞으로 일상의 감사함을 잊지 않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꿈을 가지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꿈을 가지면서, 그 꿈과 멀리 있는 우리의 현재를 너무 미워하지 말자는 이야기다. 나는 소망한다. 내가 사랑이 넘치는 일상의 감사함을 잊지 않도록. 내 일상에 스쳐간 고마운 사람들을 까먹지 않도록. 그런 날을 위해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오늘도 일상에게 찬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