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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지현 Dec 10. 2021

내 뜻대로는 1도 되지 않았던 자연주의 분만기

그렇게 엄마가 되다

서든이(태명)는 자신이 나오겠다는 신호(이슬)를 보낸 후 6시간도 되지 않아 태어났다.


누워서 출산 책도 읽고, 강의도 들었기 때문에 첫 신호가 익숙하게 느껴졌다. 조산기로 6주간 집에서 답답하게 누워만 있던 나로선 반가웠다. 37주 이후엔 언제든 나와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신호가 온 건 그보다도 1주일이 지난 38주였다. 그리고 그동안 누워서 상상했던 출산과정을 떠올리며, 카페에 글을 올렸다. '이슬이 보인 후 보통 얼마 만에 출산하셨나요?' 댓글에는 '저는 이틀 후에 낳았어요' 등등의 댓글이 많이 달렸는데, 그 댓글을 확인했을 때는 이미 출산을 한 뒤였다.


이슬을   진통 앱을 켰다. 당분간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샤워를 하면서 진통이  때마다 체크를 했는데 어찌  일인지 5 간격이었다. 5 간격이면 출산에 임박했다는 신호고 병원에 가야 하는데, 처음부터 5분이라니. ‘내가 약한 진통에도 너무 엄살을 부리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출산 가방을 다시 한번 점검했다. 출산하면서 먹을 딸기 초콜릿도  들어가 있는지도 체크했다. 그러다가 진통이  때면 모든 동작을 멈추고 허리를 숙이며 심호흡을 했다. 통증 완화엔 사실 전혀 도움이 되는  같진 않았는데 그냥 몸이 멈춰졌고 그러면 습관처럼 심호흡을 했다. 오히려 감통에 도움이 되는  '이런 통증도 1분이   사라진다' 사실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익숙하다는  고기를 구워서 먹었다(지금은 채식주의자지만). 물론 씹다가도 통증이 오면 모든 행동이 멈춰졌다. 마치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병원에 가기 전 마지막 식사. 진통이 와서 고기 씹기를 멈춘 모습.

소파에 누워서 있다 보니 여러 생각이 났다. '병원에 가서 미리 무통주사를 맞을까'. 그러자니 미리 써놓은 출산 계획서가 맘에 걸렸다. ‘무통은 (제가  견디고) 요구할 경우에만 맞겠다'라고 시작하는 출산 계획서는 밝지 않은 조명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최대한 편안한 환경에서 의료적 개입 없이 아이를 낳겠다는  핵심이었다. 하지만 진통이 두려움으로 바뀌어 무통주사가  유혹할 때면 '그래, 계획서는  내면 그만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뭐가 됐든 병원에서 결정하자는 마음으로 병원으로 갔다. 병원으로 가면서도 1 강한 진통, 그리고 사라지다가 다시 참을  없는 진통. 이렇게 '지옥' ' 지옥'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내가 상상해온 자연주의 분만은 편안한 병원 침대에서 내가 듣고 싶은 음악과 딸기 초콜릿을 먹으며 남편과 함께 출산을 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출산을 위한 병원도 넓은 침대와 짐볼 등의 기구가 마련돼 있는 곳으로 선택했다. 의료진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에 남편과 미리 의무 교육도 받았다. 교육의 여러 내용 중에 이런 내용도 있었다. 진통이 오기 시작하면 너무 빨리 병원에 오지 말라는 . 교육을 그렇게 받았건만, 진통이 오니 무서워서 병원에 가고 싶었다. 간호사님의 말이 맘에 걸렸지만 이미 응급실에 도착했다.


불행히도 그런 교육을 해줬던 간호사가 나를 맞이했다. 그래서 나는 (매우 아팠지만,) 수줍게, “ 일찍 왔어요.”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보는 간호사의 눈빛이 '그렇게 교육을 시켰겠만, 아마 집으로 돌아가야  것이다'라고 말하는  같았다. 그런데 응급실 침대에 누워서 내진을 하던 간호사는 너무 놀라면서 “7cm 열렸고, 아기 머리가 보인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오전 10 반인데, 얼른 낳고 맛있는 병원밥을 먹자라고 했다. 믿기지 않았다. 기본이 12시간이라고 배웠는데 나는 이슬을 본지 이제 겨우 4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힘내라고 하는 것이겠지. 그러면서 진통이  때마다 배에 힘을 주라고 했다. 배가 너무 아픈데 배에 힘을 주라는  너무 잔인하게 느껴졌고, 운동할 때도 너무 힘들면 살짝 편한 자세로 하는 나로선 '차라리 기절을 했으면 좋겠다' 생각을 했다. 나처럼 교육을 받았던 남편을 옆에서 열심히 뭐라 뭐라 했는데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같다.


자연주의 분만을 선택한 결정적 계기는 남편이었다. 자신의 주위에 자연주의 분만을 해본 친구들이 출산 과정에 참여하다 보니 느끼는 책임감이 더 크더라라는 주위의 얘기였다. 자칫 나 혼자만의 일이 될 수 있는 출산 과정이 함께라는 것이 좋았고, 산모의 회복도 빠르고, 아이에게도 좋다 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결심한 이후 여러 출산기를 으면서 알게 된 다른 엄마들의 거부감 중에 하나가 출산이라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질병처럼 수술대 위에서 행하는 것이었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내가 선택한 이유는 아니었지만, 자연주의 산모들 글을 많이 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수술대는 거부해야지라는 마음이 생겼다.


한창 힘을 주고 있는 나에게 의료진이 물었다. “자연주의 분만을 위한 방은  가야 하고 수술대는 바로 옆인데 수술대로 가는  어떻겠느냐라고. 앗 그건 자연주의 분만의 핵심인데?라는 생각이 살짝 스쳤지만, 미칠  아팠던 나는 그냥 수술실을 수락했다. 그런데 웬걸, 개구리 다리를 만들게 해주는  수치심 가득한 의자가 아주 힘주기 좋은 자세로 세팅돼 있어서 한결   같았다. 그리고  후로  힘을 주니 애기가 나왔다. 내가 예상했던 출산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고통이 컸던 탓인지 아기가 딱 나오는 순간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아기가 가슴 위에 올려지니 이제 끝났다는 안도감과 함께 그야말로 '출산 하이' 상태가 됐다. 그리고 배 위 있는 아기가 너무 신기했다. 엄마한테 전화해서 ‘엄마 나 금메달 먹었어’라는 말투로, “엄마 나 방금 아기 낳았어”라며 세상 당당하게 말했다. 친구들에게도 알렸다. 나 출산했어, 30분 전에-다들 시간이 너무 얼마 안 돼 공포스러운 반응이었다. 뭐라고? 30분 전?


나는 기세 등등했다. 천하의 엄살쟁이였던 내가 무통주사도 없이 애를 낳다니. 그렇게 자신했던 그날 .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갑자기 세상이 가로로 변하더니 TV 화면이 꺼지듯 사라졌다. 잠시 기절했던 거다. 그리고   이후로 2 동안은 제대로 걷지도, 앉지도 못하는 상태가 됐다. 자연주의 분만의 핵심은 수술  빠른 회복력이라 들었는데, 어찌  일인지 나는 곧장 할머니가  것처럼 회복이 더뎠다.


출산 과정에서 내 예상대로 됐던 건 정말 하나도 없었다. 인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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