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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민 Oct 06. 2023

별 [별, pyʌl]

태양을 제외하고는 지구와 가까운 별은 최소 수 광년 거리에 있다. 광년은 빛이 1년 동안 힘차게 달려온 거리다. 알파 센타우리라고 불리는 별 쌍은 4.37광년 거리에 있는데, 이를 이해하기 쉽게 km로 환산하면 41조 3,000억 km다. 이들은 그나마 태양계 입장에서는 이웃이라 할만하다. 수억, 수십억 광년 멀리 떨어져 있는 별도 허다하니까.


별이 크다는 것쯤은 현대인 모두가 안다. 태양은 지구보다 지름이 109배 길고, 무게는 33만 배 무겁다. 지구와 태양의 차이만큼 태양보다 더 큰 별들도 있다. 여하튼 그런 거대한 별들이 하늘에 무수히 많이 흩뿌려져 있다. 우주에 놓인 별의 개수는 지구에 깔린 모래 알갱이의 개수보다 훨씬 많다.


인간이라는 작은 존재가 헤아리기에는 너무 큰 숫자다. 그런데도 우린 그런 별을 보면서 감동한다. 거리상으로나, 형태상으로나, 우리와 가장 먼 존재에게 위로받곤 한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는 윤동주 시인의 <서시>라고 한다. 서시가 수록된 시집의 이름에도 ‘별’이 들어가고, 서시 안에서도 윤동주 시인은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기 위해 별을 노래한다.


어쩌면 윤동주 시인은 별의 본질을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별은 끊임없이 스스로 몸을 부순다. 핵융합을 통하여 거대한 에너지와 찬란한 빛을 만들어 내지만, 결국 모든 것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다. 몸집을 불린 별은 부서져 에너지를 방출하거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심연을 남긴다. 슬프게도 이 우주에는 ‘살아가는 것’보다 ‘시들어 가는 것’이 더 흔한 현상인 것 같다.


옛날 사람들은 별들이 수 놓인 모양을 보고 날짜와 위치를 예측해 농사를 짓거나 멀리서 사는 이들과 만날 수 있었다. 같은 하늘이라도 봄에 그려진 별과 가을에 그려진 별이 다르기 때문이다. 별의 지도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어제 하늘에 떠 있던 사슴 자리가 오늘 곰 자리에게 잡아먹혀 사라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지구가 태양을 크게 돌고 있어서, 태양을 등지고 우리가 볼 수 있는 밤하늘이 계절에 따라 조금씩 다른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별들도 움직이고 탄생하고 소멸한다. 다만, 인간의 눈에 유의미한 변화가 관측되려면 아주 긴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대체로 인간이 별의 변화를 느끼지 못할 뿐이다. 예컨대 개나 고양이의 수명은 대략 15년 정도다. 반려동물은 10년 남짓한 세월에 새끼에서 성체로 하루가 다르게 큰다. 그에 비해 반려인은 반려동물만큼 드라마틱한 변화를 거치지는 않는다. 모든 존재의 시간이 저마다 다르게 흐른다. 그래서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별의 아름다운 모습만 볼 수 있고, 반려동물도 반려인의 좋은 모습만 기억에 담아 별이 되곤 한다.


우리를 위로해 주던 별은 요즘 들어 얼굴을 잘 보이지 않는다. 지구의 생물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각종 공해가 별들을 멸종 위기로 내몰고 있다. 대기오염, 수질오염, 토양오염과 같이 빛에도 오염이 있다. 문명의 발달로 어둡던 지구의 밤이 밝아졌다. 음악 소리가 큰 곳에서는 타인과 대화하기 힘들다. 별도 마찬가지다. 빛이 가득한 곳에서 별들과 대화할 수 있을 턱이 없다.


별은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바다거북은 수만 마리가 모여 해안에 알을 낳는다. 그렇게 수백만 마리의 새끼 바다거북이 태어난다. 육지에는 새나 식육목 동물, 인간이 있다. 모두 바다거북의 목숨을 노리는 포식자들이다. 바다에도 포식자가 있긴 하지만, 바다거북 입장에서는 엉금엉금 기어야 하는 육지보다 헤엄을 칠 수 있는 바다가 좀 더 나을 것이다. 그래서 새끼 바다거북은 알을 깨고 세계로 나온 순간부터 목숨을 걸고 바다로 향한다. 어두운 밤에 바다가 어딘지 알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바로 별이다. 수면에 비친 별의 반짝거림을 등불 삼아 바다로 향한다. 그래서 빛 공해가 별을 지우면, 새끼 바다거북들은 방향 감각을 잃고 바다에 닿지 못해 죽임을 당한다.


오방색으로 번쩍거리는 도시 야경은 매력적이기도 하지만, 여러 의미로 하늘의 별빛을 도둑질한 결과다. 들꽃이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내 텃밭에 심으면 쉽게 시들어 버린다. 별에게 빼앗은 빛도 그리 오래가지 못할 듯 하다. 별에게 위로 받고, 별을 노래하고, 별을 이정표 삼고, 별을 돗자리 삼던 우리의 삶에 다시끔 별이 돌아오기를. 별을 보며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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