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서련 Dec 15. 2023

찻길에 우뚝 서서 나를 마주 보던,

낙엽 하나

살다 보면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순간들이 생긴다. 얼마나 믿기 힘드냐면 오~ 이거는 소설 속에 집어넣어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믿기 힘든 것들. 나는 이런 일들은 주로 차 안에 있을 때 목격하게 된다. 대머리인데 빨간 실로 드레드했던 아저씨라던지, 혹은 차에서 면도기를 만지작거리던 풍채 좋은 아줌마라던지 (월마트에서 우리 머리 위로 물통을 떨어뜨리려고 하던 눈 풀린 아줌마는 차 안은 아니었다만...;;;)


이런 상황 사진으로 기록하기가 힘들다. 그럴 때면 나는 급하게 마이크를 켠다. 손가락 사이로 스르르 빠져나가는 모래알같이 기억이 완전히 사라져 버리기 전에 스피치 투 텍스트 기능을 써서 주저리주저리 기록을 남겨본다.


오늘은 아이들 학교에 데려다주려고 운전하는 길이었는데 안개가 심하게 껴있었다. 큰 길가로 나가려는 참인데, 찻길 한가운데 단풍 낙엽처럼 생긴 나뭇잎 하나가 덩그마니 서 있었다. 다른 낙엽들은 다 길가, 그것도 찻길 옆에 찌그러져 있고 눕혀져 있었는데 그 녀석은 길 한가운데 마치 사람이 우뚝 서 있는 것처럼 차를 타고 돌진하는 나를 마주 보고 있었다.


짙은 안갯속에 우뚝 서서 나를 바라보던 낙엽 하나,

기묘한 느낌이 들었지만 운전하는 중이라 안타깝게도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다.  


일교차가 커서 안개가 잔뜩 낀 신비한 아침, 이러다가도 해가 반짝 나오는 캘리포니아의 날씨

이야기를 까먹지 않으려고 기록을 했는데 뒤에서 이걸 듣고 있던 둘째 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엄마, 어떻게 낙엽이 서 있을 수 있어?" 그래서 빨간불에 정지하고 있을 때 내가 손으로 설명을 해 줬다. "여기가 땅이고 손가락 모양 단풍잎이 이렇게 서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어." 아이는 믿지 못했다. 사진이 없어서 증명하지 못하지만 나는 내 두 눈으로 똑똑해 봤는 걸~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바깥 풍경을 찍으려고 멈추었다. 역시나 모든 낙엽은 옆으로 치워져 있고 찻길은 깨끗했다 모든 낙엽들이 누워 있는 세상이다. 세상에 신비한 일들이 꽤나 많이 벌어지는데도 우리는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가는 거일지도 모르겠다. 작가들은 그걸 민감하게 포착해 내는 사람이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들썩들썩 우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