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닥다닥 서울
주차장과 운전길, 발걸음이 닿는 모든 곳이
올해 한 달간 한국을 다녀왔다. 영어 울렁증 때문에 여전히 내 나라 같지 않은 미국에서 살고 있지만, 유학생으로 한국을 떠나온 지도 거의 20년을 채워간다. 알게 모르게 두터워진 시간의 두께 때문인지 오랜만에 가족들과 학창 시절 친구들을 만나는 건 여전히 똑같이 반가웠다만, 대한민국, 서울이라는 내 고향이 예전과 사뭇 달리 느껴져 조금 서글픈 시간이었다.
예전에는 시댁과 친정이 서울의 두 지역에 가깝게 붙어있었다. 당시에는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르고 지냈는데 ㅋㅋㅋ 이제는 서울의 서쪽 끝, 경기도의 남쪽 끝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한국에 머무르면 반드시 가야만 하는 두 곳인데 왔다 갔다 하는 것만으로 상당한 일이 되었다. 거기에 두 아이까지 있으니 이번에는 장기렌터카를 이용하기로 했다.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지만 한 달간 두 발이 되어준 승용차 덕분에 편안하게 여행을 할 수 있어서 렌터카에 대한 후회는 없다. 아니, 너무 좋아서 다음에도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자동차 덕분에 이번 여행에서는 한국에서 아이들을 기르는 가정의 일상에 훨씬 밀착된, 밀도 높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세계 지도 안에서 새끼손톱만큼 작은 땅. 그마저도 둘로 나누어 가진 대한민국 땅에서 승용차를 위한 주차장은 너무너무 좁았다.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가정이라면 흔히 끌고 다니는 미니밴이 돌아다니는 건 상상도 못 하고 문이라도 살며시 열면 옆의 차에 닿기 일쑤라 거의 모든 차의 문에는 문콕방지용 스티커가 붙어있다. 옆의 차량과 간격이 어찌나 가까운지, 상당히 빼빼 마른 나도 나오고 들어가는 게 버거운데 체격이 좀 크신 분들은 어떻게 지내는 건지 도저히 상상이 안된다.
주차 자체도 힘들었다. 널찍한 주차장에서 얼굴을 냅다 들이미는 전진/전방주차에 익숙해진 나로서는 카메라의 시선에 의지한 채 나에게 허락된 아주 좁은 공간으로 자동차의 궁둥이부터 들이대는 후방주차는 외출하기 전부터 스트레스였다. 내가 아무리 춤을 좋아한다지만, 삐삐삐삐 경고등을 배경음 삼아 앞으로 뒤로 스텝을 무한반복하는 자동차 댄스는 완전 노땡큐올시다! 공간뿐 아니라 만만치 않은 주차 비용 때문에 외출하기 전에 꼭 주차장을 확인해야만 하는 게 서울러들의 일상이었다.
그리고 고속도로 씽씽 운전하는 단순한 운전에 익숙해진 나는, 좁은 땅에서 이리저리 효율적으로 동선을 연결해야 하는 도시 계획 덕분에 느닷없이 차선이 변경되는 운전길도 난감했다. 그러다 보니 끼어들기 기술은 필수적인데(하지만 깜빡이를 켜도 잘 양보해주지 않는 운전자가 득실대는) 서울의 운전길은 전쟁터와도 같았다. (징징대고 있지만 그래도 아이들과 장거리 이동하기에 대중교통보다는 승용차가 간편해서 포기할 수가 없다 ㅜㅠ 개인적으로 혼자 다닐 땐 조금 멀더라도 대중교통, 특히 전철을 선호한다. 이동하는 중에 책을 읽을 수 있어서 ㅎ)
사람들의 마음이 각박해질 수밖에 없는 다닥다닥 운전길에서 잠시 신호등에 걸려 차를 멈춘다. 옆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작은 상가에는 내 시선이 닿았다. 눈길이 그곳에 붙은 간판을 훑는다. 병원에서 약국, 논술학원, 영어학원, 피아노 학원, 세탁소, 미용실, 분식집과 식당들. 소비자라면 한방에 많은 걸 해결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건물이 보인다. 하지만 저 안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자영업자의 입장이라면 조금 숨 막힐 거 같기도 하다는 생각도 스친다. 왜냐하면 저런 상가들이 하나도 아니고 다닥다닥 즐비해있기 때문이다.
유행에 민감한 나라답게 몇 발자국 떼지도 않았는데 조금 잘 나간다는 유행 타는, 동종업소가 눈에 뜨이는 세상. 옛날엔 치킨집이 판을 치더니 지금은 편의점, 무인 (아이스크림 혹은 인생 네 컷) 가게, 프랜차이즈 커피숍, 분식집, 고기 뷔페집..... 와..... 정말 다들 삶을 꾸려가기 위해 열심히 살아간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도시의 자영업자들을 떠올리며 동기부여를 한다. 이제 막 40세에 접어든 나도 평균수명 120세 시대 앞으로 남은 인생을 펼쳐가기 위해 건강을 잘 유지하고 그들의 도전과 열정을 내 삶에 꼭 끌어와야겠다는 아자아자! 마음이 차오른다.
동시에...... 가뜩이나 느릿한 성격인데 오랜 기간 미국 시골에 길들여진 나는 어안이 벙벙한 시골쥐가 되기도 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여긴 분명 나의 고향 대한민국이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뼈속부터 한국인이라기에 어딘가 붕~ 떠버린 느낌이 든다. 미국에서도 이방인이고, 내 고향에서도 이방인이 되어버렸다. 엊그제 미국으로 돌아왔고 시차적응을 하느라 지금 새벽 3시에 눈을 떴다. 꿈만 같이 후딱 지나가버린 한국에서의 지난 한 달을 떠올린다. 주차장부터 가게까지 모두 다닥다닥 붙어있건만 나는 그 어디에도 딱 붙어있지 않다. 이내 마음이 서글퍼져서 글로 기록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