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영 May 22. 2023

선생님, 저 너무 잘 컸죠?

지난 몇 달 간 의정부보다 양주를 더 자주 왔는데, 이런 교통체증은 처음이었다. 어디서 사고라도 난 줄 알았다. 내려서 걸어가는 게 더 빠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만큼 버스는 느리게 이동했다. 이 상태로 라면 지각이 확실하다. 이 심각한 상황을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 얼굴 한 번 뵌 적 없는, 목소리 한 번 들어본 적 없는, 연락처만 아는 사업 담당 선생님께 지각에 대한 사과와 그래도 수업 시간 전에는 도착하겠다는 바람을 가득 담아 문자 한 통을 보냈다.


고등학교 1교시 수업 시작이 9시 10분, 진로 강의를 진행하는 청년 강사가 모이기로 한 시간은 8시 40분, 내가 학교에 도착한 시간은 9시였다. 지각이긴 지각이나마 위기는 간신히 면했다.


1층부터 대기실이 있는 4층까지 단숨에 올라갔다. 작년 비슷한 사업으로 안면이 있던 청년 강사분들이 앉아계셨다. 글이 아닌 말로, 비대면이 아닌 대면으로 사과를 전하고 싶던 사업 담당 선생님은 계시지 않았다. 수업 들어가기 직전에 서야 담당 선생님께서 대기실로 들어오셨다. 사과르 해야하는데, 선생님을 마주한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과는 커녕 인사도 드리지 못했다.


선생님을 향해야 나의 목소리는 옆에 있던...오늘 그림 수업을 진행하는 청년 강사님 귓가로 향했다.

“저 선생님, 저 아는 사람 같아요...”

“어떻게요?”

“고 2때 담임...”

바로 알아봤다. 


그리고 잘못 본 건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 관계, 상황에 대한 기억력은 좋은 편이라 자부하기에 그저 확인을 위한 짧은 절차가 필요하겠다 싶었다. 1교시 수업을 하러 들어간 2학년 교실 담임 선생님께 수업용 노트북을 연결하면서 슬쩍 여쭤봤다.


“저기요, 선생님... 혹시 이 사업 담당자 선생님 성함이... 혹시... ㄱㅁㄴ이신가요?”

“네!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아! 고등학교 때 담임쌤이셨어요!”

“고등학교 어디 나왔...”

처음 본 선생님께 나의 고등학교를 밝히고 얻어낸 확인을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친구들에게 전했다.


카톡방에 모여 있던 세 명은 연달아 내가 수업하러 거기까지 간 거, 거기까지 가서 쌤을 만난 이 상황이 다 웃기다고 했다. (얘덜은 항상 뭐가 이렇게 웃긴 건지 아직도 웃음 많은 여고생 같다. 신기하다.) 그리고 나는 알아볼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는데 그 시간이면 선생님이 담임으로써 만난 사람만 해도 400명이 넘기에 충분한 기간, 시간이다. 아, 요즘은 한 반에 30명도 안 되니까...400명이 안 될려나...,


하여튼 적어도 그간 300명이 넘는 수를 만났을텐데 나를 기억할까 싶었지만..., 친구들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4교시 내내 들뜬 마음으로 수업을 해내고, 청년 강사 대기실로 사용하던 공간으로 들어오신 쌤께 슬며시 다가갔다. 살며시 선생님 어깨를 똑똑했다.


“쌤... 안녕하세요! 저 혜영이에요.”


“야! 너! 글쓰기...지각...이 시키...“ 욕 같지만 반가운 인사처럼 들리던 답변을 끝으로 어떻게 된 거냐며 여기는 어떻게 온 거냐며 강의 주제인 글쓰기는 도대체 뭐냐며 질문을 쏟아 내신다. 적지 않은 질문에 제대로 답한 것은 없다. 


그저 “쌤, 저 너무 잘 컸죠?”라는 말로 퉁쳤다.


다른 선생님께 의여고에서 가르치던 학생이라 나를 소개하던 장면도 좋았다. 그냥 그날은 다 좋았다. 지각은 했지만 1교시 시작 전에 도착한 것까지..., 다.


-

pixabay


작가의 이전글 서른이 되니 자기소개가 더 어렵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