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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롬 Jan 31. 2024

우리도 에어랩 살까?

짐 캐리 주연의 영화 <예스맨>. 매사에 NO를 외치던 남자가 어떤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모든 일에 일단 YES를 말하며 인생을 바꾸는 이야기. 20대 초반의 나는 자취방 구석에 누워 이 영화를 보다가 어쩐지 동기부여가 되어 당일에 제주여행을 떠났더랬다. 아무튼, 영화 내용과는 무관하지만 나에게도 YES만을 말하는 예스맨이 있다. 아내 한정 예스맨.


NO를 달고 사는 나완 달리 언제나 YES YES YES

그러니까 쇼핑을 예로 들자면 이런 식이다.


평소 물욕이 제로에 가까운 나도 무언가 사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남편에게 슬쩍 흘려보면 그는 눈을 반짝인다. 그건 아마 물건 소비에 전혀 뜻이 없어 옷이며 신발이며 휴대폰이며 가방이며 늘 비슷하고 오래된 것들을 쓰는 아내가 드디어 갖고 싶은 것이 생겼다는 것에 대한 반가움이겠다. 최근에는 다이슨 에어랩이었다. 손질이 귀찮아 일부러 머리를 기르는 나는 격일로 감은 뒤 겨우 말리고, 앞머리에 구르프를 마는 것 외에는 일절 손대지 않는 편.     




그렇게 머리를 무책임하게 방치하던 어느 날. 남편이 찍어준 내 사진, 얼굴도 작지 않은 편인데 거기에 곱슬기 하나 없는 생머리가 차악 달라붙어있어 큰바위얼굴 같던 그 사진을 보고 결심했다. 이젠 뭔가 조취를 취해야겠다고. 그리고 역시 인생은 장비빨이라 했던가. '쉬운 머리 손질'이라 검색하면 상위에 뜨는 그것. 그렇게 자연스레 알게된 다이슨 에어랩의 세계. 처음엔 기겁했다. 물건을 사지 않아 좋은 물건을 알아보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저 헤어드라이어에 70-80만원을 쓴다 느껴져서. 하지만 금손들의 현란한 사용기를 보며 이내 값어치를 충분히 하는 것임을 인지했고, 근처에 있던 남편에게 물었다.


"우리도 에어랩 살까? 이거 봐봐. 나도 쓰고, 너도 쓸 수 있어. 근데 좀 비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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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오피스 전자기기 빼곤 하등 관심없는 그는 에어랩이 뭔지 몰랐으나 내 입에서 무언가를 '사자'는 말이 나오자마자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다가 나의 입버릇 같은 ‘좀 비싸’가 나오자마자 치고들어왔다. 당장 내일 사러가자며. 그가 조급하게 구는 이유는 고민하다가 결국엔 안사고 마는 본인의 아내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의 적극성에 오히려 주춤하게 되어 한 발짝 뒤로 물러난 나는 '에어랩 단점'을 검색했다. 아, 역시 나 같이 손재주 없는 사람한텐 무용지물인가. 남편은 완강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주야장천 에어랩을 언급하며 지금 안사면 못 산다며 설득을 하더라. 그리고 결국 이번주 금요일에, 웨스트필드 쇼핑몰에 가서 직접 사는 것으로 확정지었다.


그러니까 10만원짜리 옷에도 벌벌 떨며 비싸다고 유난을 부리던 내가, 30만원의 가격이 붙은 택을 봐도 '그래, 우리 나이엔 이제 좋은 옷을 입어야지.' 라며 구매 후보에 슬쩍 올리는 어중간한 큰손이 된 것은, 그건 다 우리집 예스맨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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