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고 있던 식물이 어느 날 식물이 아프고 시들어가기 시작한다면 그때는 사실 치료하기 힘들어.
사람들은 아픈 건 어떻게든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떻게 아프게 됐는지가 더 중요하지.
아픈 거랑 다친 건 다른 거야. 우리가 만약 사고로 다치게 된다 해도 곧바로 큰일이 나는 건 아니야. 피부에 난 상처는 소독만 잘하고 다친 부위를 수습하면 대부분 아물어.
대부분의 식물들은 사람처럼 몸에 중요한 장기기관들이 꼭 한 곳에 모여있는 건 아니라서 어느 곳이 어지간히 다쳐도 다른 부위에서 다시 줄기가 나오거나 아예 새로 시작해.
아픈 건 조금 다르단다.
만악 사람의 눈에 보일 정도로 이미 식물이 시들고 말랐다면, 혹은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면 그 식물은 벌써 살 수 없는 상태가 된 거야. 너무 늦은 거지.
최근까지 정원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한번 떠올려보고 생각나지 않는다면 문제가 될만한 부분이 있는지 한번 둘러봐. 주변 식물들은 어떤지 보는 것도 당연히 해야 돼.
만약 다른 식물들은 괜찮은데 그 식물만 그렇다면 이미 정원의 손을 떠난 거야. 속은 상해도 네가 심은 식물들이 모두 잘 자랄 순 없단다.
정원이 내어줄 수 있는 물도, 땅 속에 살고 있는 작은 생물들도,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양분들도 한 번에 무한정 나올 수 있는 건 아니야.
너에게 신발이 아무리 많아도 신을 수 있는 신발은 하루에 몇 켤레 안 되는 거랑 비슷해. 오랫동안 신지 않는 신발이 결국 어두운 구석으로 밀려나는 것처럼 뒤쳐지는 식물들은 서서히 밀려나 흙으로 돌아가는 거야.
괜찮아. 죽어가는 식물이래도 생장점이라는 부위를 따로 떼어내면 다시 뿌리와 줄기를 내릴 수 있고 대부분 그렇게 새로 시작하면 환경에 적응하며 서서히 커나갈 수 있어.
그래도 한번 생각은 해봐야겠지. 왜 신지 않는 신발이 생겼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