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아기에 애착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애착은 어떻게 형성할 수 있는 것일까요? 애착과 관련된 오래된 실험이 하나 있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해리 할로우는 갓 태어난 원숭이를 어미로부터 격리시켜 우유병이 있는 철사 엄마와 보드라운 헝겊으로 감싼 헝겊 엄마가 나란히 있는 우리에 두었더니 부드럽고 온기를 느낄 수 있는 헝겊 엄마에게 가서 안정을 느꼈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헝겊 엄마에게 매달린 채로 철사 엄마에게 달린 우유를 먹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영유아기 스킨십의 중요성은 아주 오래전부터 강조되어 왔습니다. 그렇다면 하루종일 안고만 있으면 자연스럽게 애착이 형성될까요?
애착은 아이와 양육자 사이의 정서적인 유대관계를 말합니다. 포근한 품도 중요하지만 정서적인 따뜻함은 헝겊 엄마 그 이상이 필요합니다. 어떨 때 엄마 아빠가 나를 사랑하는구나, 느낄 수 있을까요? 사랑 가득한 눈빛, 눈이 마주칠 때 마다 웃어주기, 사랑한다고 말하기, 꼭 껴안아주기 모두 중요합니다. 하지만 한 번 생각해봅시다. 배고파서 앙앙 울고있는데 그저 아이를 바라보면서 ‘아이고 예뻐라 우리 아기.’ 라고 하면 막 엄마 아빠가 날 사랑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까요? 도형 끼우기 장난감이 생각만큼 끼워지지 않아서 화가나서 던졌는데 ‘우리 지윤이 왜 그래 기분 풀어 안아줄게’ 하면 막 기분이 풀어질까요?
아이가 사랑받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아주 중요한 방법은 아이의 말에 귀기울이는 것입니다. 아이의 눈빛 하나에도, 울음 하나에도, 표정 하나에도, 몸짓 하나에도 아, 우리 아이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구나, 라고 생각하고 최대한 아이의 말에 귀기울이는 것입니다. 배고파서 울고 있는 아기에게는 ‘배가 고파서 울고있었어? 이제 우유먹자’ 라고 말해주는 엄마 아빠가 최고입니다. 아기는 아 내가 배고파서 울면 엄마 아빠가 오는구나. 를 알게 됩니다. 다음에도 아기는 배가 고프면 울지만 곧 엄마가 다가오는걸 보면서 ‘아, 이제 먹겠구나’ 생각에 금방 뚝 그치고 기다립니다. 아기는 엄마 아빠의 이런 세심한 반응을 통해 ‘이 사람은 믿을만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요, 엄마 아빠가 오랜 기간동안 늘 세심하게 반응하다보면 아기는 ‘세상이 믿을만한 곳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뭘 해도 믿을만한 엄마 아빠를 베이스캠프 삼아 세상에 한 발 한 발 내딛어보는 것입니다.
놀이를 하기 전에 아이와 관계를 맺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 아이와 엄마 아빠는 서로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인가요? 아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것을 원하는지 잘 알 수 있나요? 아이가 어떤 행동을 하는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제 생각에 아이에게 엄마 아빠가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찰떡 같이 이야기하는 것을 참 어려워합니다. 뿐만 아니라 눈맞춤도 적고 관심도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별일 없이 화를 내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아이들의 모든 눈빛, 표정, 몸짓, 말에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우리 엄마 아빠는 내 마음을 나보다 더 잘 알아!’ 라고 느낄 수 있도록 아이의 숨은 의도까지 파악해주는 찰떡 엄마 아빠가 되는 것이 아이와의 관계에서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찰떡같이 아이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다음의 이야기를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도형 끼우기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던 지윤이가 몇 번 끼우는 시도를 하더니 갑자기 장난감을 휙 던졌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1) 지윤이는 이유없이 자주 화가난다. 오늘도 그랬을 것이다.
2) 도형 끼우기가 마음만큼 되지 않아서 화가났을 것이다. 몇 번 시도했는데도 안되니 화나서 던졌을 것이다.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요?
1) 안아주면 금방 그치니까 얼른 안아준다
2) 이거 던지면 위험해. 던지면 이놈한다, 하고 혼내준다.
3) ‘지윤이가 도형 끼우기가 마음만큼 되지 않아서 화가났구나.’라고 달래주고 다시 잘 끼울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실 이 상황에 대한 정답은 아주 쉽습니다. 아마도 지윤이는 도형 끼우기가 마음만큼 되지 않아서 화가났을 것이고, 엄마 아빠가 그 마음을 알아주고 다시 해보자, 하면 됩니다. 그런데 평소 이런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하나요? 정말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고 아이가 다시 할 수 있도록 도와주나요? 제가 지금까지 만난 부모님들은 대략 1번 40%, 2번 40%, 3번 20% 정도 였습니다. 이유는 다양합니다. 정말 아이의 마음을 알지 못해서 그런 분들도 있었고, 어떤 분은 아이가 매일 우는 소리를 하니 이제는 적절하게 대처해주기 지쳤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또, 던지는 건 나쁜 행동이니까 나쁜 행동을 교정해주려는 시도를 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던지는 건 나쁜 행동이 맞지만 다른 방법으로 지도할 수 있습니다. 이건 다음에 더 자세하게 다뤄볼게요.
찰떡같이 아이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우리 아이가 정말 말을 잘 하는 아이였다면 어떻게 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지윤이가 정말 말을 잘 하는 아이였다면, 위와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요? 아마도 ‘왜 안되지.’ 라며 여러 번 시도를 해봤을 것입니다. 그럼 엄마 아빠는 옆에서 지윤이가 잘 안돼서 고생하는구나, 먼저 알아차릴 수 있었겠죠. 그리고 거듭된 시도에도 실패가 계속된다면 장난감을 던져 버리는 대신에 이거 끼워줘.’ 혹은 ‘안 돼.’, ‘도와줘.’ 이런 말을 하면서 도움을 요청했겠죠. 그런데 우리 아이는 말을 잘 못합니다. 말을 할 수 있더라도 세련된 의사소통을 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다보니 어떻게 된다? 몸이 먼저 나가는거죠.
찰떡같이 아이의 마음을 알게 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점이 있습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제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점은 일단 화가 덜 난다는 것입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도대체 왜 이러나 싶은 답답한 상황 많잖아요. 그럴 때 아이가 이유없이 그런다, 생각하면 이유를 찾지 못하니 해결 방법도 알 수 없어서 괴롭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다 생각이 있구나.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이유를 알게 되면 아이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이유를 알게 되면 좀 더 정확한 해결 방법이 생깁니다. 도형 끼우기가 안돼서 화가 났다면, 도형을 잘 끼울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됩니다. 다음으로,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미리 예방할 수도 있습니다. 다음번에는 아이가 화를 내기 전에, 장난감을 던지기 전에 먼저 지켜봐줄 수 있습니다. ‘지난 번에 지윤이가 잘 안돼서 던졌으니까 오늘은 먼저 도형 끼우는 것을 도와줘야겠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좀 더 재밌어집니다. 새로운 아이를 발견하게 됩니다.
엄마 아빠가 나의 마음을 찰떡같이 알아차려준다면 아이에겐 어떤 이점이 있을까요? 첫번째 좋은점은 엄마 아빠와 같습니다. 엄마 아빠가 아이의 마음을 찰떡같이 알아차려주면 아이는 화가 덜납니다. 우리도 그렇잖아요. 어른들끼리 싸울 때 어떻게 하나요? ‘미안해. 잘못했어.’ 그러면 ‘뭐가 미안한데?’ 하고 내가 왜 화가 났는지 알고있나, 확인하잖아요.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엄마 아빠가 ‘도형 끼우기가 잘 안돼서 화가났구나.’ 라고 마음을 읽어주면 속이 시원합니다. 그렇게 어려운 말은 못 알아 듣는다고요? 여기에 두 번째 이점이 있습니다. 아이는 엄마 아빠의 찰떡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에게 벌어진 상황이 이거구나.’하고 알아차립니다. 갓난아기가 우는 것으로 소통하다가 점차 울음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소통하는 것을 배우듯이, 아이는 엄마 아빠의 찰떡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뭘 했는지, 이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배우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아이는 찰떡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떻게 의사소통 해야 하는지를 배웁니다. 엄마 아빠가 아이의 행동을 보고 찰떡 이야기를 하면 아이는 이 상황에서 내가 해야할 말이 무엇인지 배우고, 따라하게 됩니다. ‘잘 안돼.’ ‘도와줘.’ 이런 말들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는것입니다.
찰떡 엄마 아빠가 되기는 마음만 먹는다고 바로 되는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꾸준히 하다보면 어느 순간 번개가 찌릿 하면서 통했다!는 느낌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