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보람 Nov 20. 2023

눈을 보고 말해요

“사람의 눈은 혀만큼이나 많은 말을 한다. 게다가 눈으로 하는 말은 사전 없이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The eyes of men converse as much as their tongues, with the advantage that the ocular dialect needs no dictionary, but is understood all the world over.”

- Ralph Waldo Emerson


우리 아이가 남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때는 언제인가요? 자폐를 조기에 발견하는 여러 가지 징후 중 눈맞춤은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맘카페에 아이가 자폐인지 걱정된다는 글에는 대부분 ’눈맞춤이 거의 없어요.’, ‘보긴 보는데 다른 데를 보는 것 같아요.’ 등의 이야기가 꼭 나옵니다. 실제로 눈맞춤은 자페를 진단하는 주요한 기준이 됩니다. 미국 정신과 협회의 진단기준(DSM-5) 에 따르면 비언어적 의사표현의 어려움이 있는데, 비언어적 의사표현 기술에는 눈맞춤, 표정, 제스처 등이 포함됩니다. 

자폐를 가진 사람들은 눈맞춤에 다르게 반응합니다. 미국 예일대 연구팀{Hirsch, 2022 #1357}은 뇌 스캔을 사용해서 자폐 성인과 일반인의 눈맞춤에 대한 반응을 비교한 결과 눈맞춤은 집단 간 두뇌의 다른 영역을 활성화하였다고 합니다. 또 다른 연구는{Lauttia, 2019 #1358} 눈맞춤과 관련된 뇌 활동을 연구하기 위해 3-6세 아동의 뇌파검사를 실시했는데, 연구자들은 일반 아동이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선보다 똑바로 마주보는 시선에 더 강한 반응을 보이는데 비해 자폐 아동은 직접적인 눈맞춤보다 아래로 내려다 보는 시선에 더 강한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일반적인 또래의 경우 다른 사람이 아동의 눈을 쳐다보는 것이 자연스럽게 눈맞춤으로 이어지는 동기를 자극하게 되지만 자폐 아동은 자연스러운 동기 유발이 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폐 아동은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듣는 동시에 그 사람의 눈을 쳐다보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또한, 자폐 아동은 다른 사람의 눈을 보는 것이 입이나 손을 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나타낸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맞춤을 매우 강렬하고 압도적인 감각 경험으로 느끼기도 합니다. 자폐 청소년과 성인에게 눈맞춤 경험에 대한 인터뷰에 따르면{Trevisan, 2017 #1359} 그들은 사회가 눈맞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지만 눈맞춤이 잘 안될 뿐 아니라 억지로 눈맞춤을 하려 할 때 현기증, 두통, 심박수 증가, 메스꺼움, 통증, 떨림 등을 경험한다고 했습니다. 심지어는 눈맞춤을 하는 것이 다른 사람의 말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아이의 특성을 충분히 존중해서 눈맞춤을 하지 않는게 좋을까요? 그렇게 고통스럽다는데 굳이 눈맞춤 해야 할까요? 왜 눈맞춤이 중요할까요? 


 케임브리지대학 연구팀에서는 아기와 눈을 마주칠 때 성인과 아기의 뇌파가 서로 ‘동기화’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동기화는 엄마 아빠와 아기가 언제 말을 할지, 언제 들을지에 대해 서로 맞춰가는 것을 의미하며, 눈맞춤을 통해 의사소통할 준비를 한다는 것을 확인한 것입니다. 아기와 엄마 아빠는 서로를 바라보면서 자연스럽게 의사표현을 주고 받게 됩니다. 사람들은 눈을 통해 대화에서 많은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초코파이가 말합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눈빛만 보아도 알아.’ 사전을 찾아보니 눈빛은 ‘눈에 나타나는 기색’ 이라고 합니다. 차가운 눈빛, 날카로운 눈빛, 따뜻한 눈빛 등. 물론 이 눈빛은 얼굴의 모든 부위를 제외하고 ‘눈’만 보고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만큼  눈에서 나타나는 기운이 많은 것을 말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화를 할 때 다른 사람의 눈을 잘 쳐다보면 그만큼 상대방이 전하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눈맞춤은 어떤 사람이 상대방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대화에 참여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내가 말하고 있는데 상대방이 다른 곳을 쳐다보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내 말을 듣고 있는건가? 확신이 들지 않기도 하고 계속 그러면 지금 나 무시하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기도 하죠. 예전에는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라 어른이 말씀하실 때 눈을 똑바로 보지 않는 문화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우리나라도 눈을 마주보며 대화하는 비중이 많이 늘었습니다. 대화 내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지는 않더라도 간간이 눈맞춤을 해야 상대방이 내 말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고 대화가 이어집니다. 


우리 아이가 눈맞춤을 잘 못하는 것은 엄마 아빠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엄마 아빠를 싫어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집중력이 부족한 것도 아닙니다. 아이가 눈맞춤을 잘 하지 못하는 것은 아이의 잘못이 아니고 그저 아이의 특성이라고 이해해주세요. 그렇지만 눈맞춤을 하게 되면 조금 더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와 눈을 맞출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앞에서 소개했던 자폐 청소년과 성인의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가 나왔어요. 눈맞춤은 친밀하고 믿을만한 사람들과만 했으면 좋겠다고요. 친밀하고 믿을만한 사람? 바로 엄마 아빠지요. 엄마 아빠라면 눈빛이라는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엄마 봐!’ ‘눈 똑바로 봐!’이렇게요? 눈맞춤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아이가 엄마 아빠를 보도록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엄마 아빠가 아이의 눈에 찾아가는 것입니다. 


눈맞춤의 기회 늘리기 


아이와 눈맞춤의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눈이 마주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 주면 됩니다. 아이에게 강요하지 않고도 눈맞춤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마주보고 앉기


아이가 놀이하고 있을 때 아이의 맞은편에 앉아보세요. 아이의 옆이나 뒤에 있는 것보다는 정면에 있을 때 가장 눈을 마주치기 쉽습니다. 아이가 그저 고개만 들어도 엄마 아빠의 눈을 볼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으세요. 놀이를 하다가 아이가 움직이면, 엄마 아빠도 아이에 맞춰 따라갑니다. 고개만 움직이지 말고 몸 전체가 아이를 바라보도록 몸을 움직이세요. 


눈높이 맞추기 


아이와 마주보고 앉았을 때에는 아이의 시야를 확인하고 아이의 눈높이 혹은 눈높이 보다 조금 낮은 곳에 엄마 아빠의 눈이 있어야 합니다. 바닥에 앉아서 놀이를 할 때 엄마 아빠가 허리를 숙이지 않으면 엄마 아빠의 눈이 아이의 눈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습니다. 이렇게되면 아이가 의도적으로 열심히 위를 쳐다봐야 엄마 아빠의 눈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바닥에서 놀이할 때에는 허리를 숙여 눈높이를 맞춰주세요. 


엄마 아빠와 아이 사이에 장난감 두기 


아이와 놀이할 때 장난감은 엄마 아빠와 아이 사이에 둡니다. 장난감이 다 벽에 붙어있으면 아이가 벽을 쳐다보며 놀이할 수 밖에 없습니다. 너무 큰 부엌놀이장은 어쩔 수 없겠지만 되도록이면 놀잇감은 방 가운데로 옮겨서 서로 마주보며 놀이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꼭 엄마 아빠를 봐야겠다, 큰 맘 먹지 않고도 장난감을 들었을 뿐인데, 우연히 앞을 봤을 뿐인데 거기 엄마 아빠가 있으면 눈맞춤의 기회가 늘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물건을 엄마 아빠의 얼굴 가까이에 두기 


이 방법은 약간 어색하지만 엄청난 효과가 있는 방법입니다. 아이가 좋아하거나 관심을 보이는 물건을 엄마 아빠의 얼굴 가까이에 두면 아이는 물건을 쳐다보기 위해 자연스럽게 엄마 아빠의 얼굴을 쳐다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도형 끼우기를 할 때 다음 도형 조각을 집어서 곧바로 아이의 손에 쥐어주는 대신에 도형 조각을 엄마 아빠의 눈높이에 가져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는 도형 조각을 눈으로 따라가다가 자연스럽게 엄마 아빠의 눈을 쳐다보게 되는 것이지요. 관심이 없는 물건이면? 안따라갑니다. 무엇이든 아이가 관심을 보여야 효과가 좋습니다. 


거울 보고 앉기


가장 좋은 방법은 마주 보고 앉아 직접 눈을 맞추는 것이지만 얼굴을 보는 것이 아이를 긴장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거울을 앞에 두고 아이 옆에 나란히 앉아보세요. 아이는 거울을 보면서 엄마 아빠와 눈을 맞추는 동시에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눈맞춤의 목표는 아이가 내 눈을 보도록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아이와 눈을 많이 마주칠 수 있도록 내가 움직이는 것입니다. 눈을 마주치기 위해 열심히 애를 썼는데 안될 때 ‘아빠 눈도 한 번 봐줘.’ 이런 말 안하셔도 됩니다. 아이의 눈과 엄마 아빠의 눈이 마주쳤다면, 그 다음에는 뭘 하면 좋을까요? ‘옳지, 엄마 아빠 봤네. 잘했어.’ 안하셔도 됩니다. 그저 아이와 눈이 마주쳤을 때 한 번 싱긋, 웃으면 됩니다. 날 보려고 한 게 아닌 것 같아. 실수로 마주친 것 같아. 괜찮습니다. 눈이 마주친 모든 순간 ‘응 엄마 아빠 여기 너와 함께 있어.’ 의 메시지를 가득 담은 따뜻한 눈빛,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찰떡 엄마 아빠 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