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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지 Mar 27. 2021

포르투에 대한 짧은 회상 2 - 마토세지뉴에서의 서핑

포르투 외곽, 세상의 서쪽 끝에서 밀려오는 파도에 떠밀리기

2019년 2월 23일의 일기를 가져와 다시 썼다.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정이 많이 들어버린, 첫 숙소를 체크아웃하고 다음 숙소로 옮겨왔다. 참 사람이란 게 간사한 게, 충분히 나한테는 괜찮은 호텔인데도 2주 넘게 너무 예쁜 (출장이라는 이유로 공짜로 얻은) 숙소에 있다 왔더니 새삼 지금 숙소가 지나치게 심플하다는 느낌이 든다. 괜히 낡은 것 같고, 괜히 어두운 것 같고 그렇다. 앗, 컵라면 먹으려고 챙겨 왔는데 커피포트가 없다. 이건 낭패가 확실하다.

2시부터 체크인 가능하다고 해서, 산더미 같은 짐만 맡겨두고 마토세지뉴에 서핑을 하러 다녀왔다.

서핑을 끝내고 버스를 타러 다시 돌아가는 길에 돌아본 바닷가


500번 버스를 타고 마토세지뉴로 가는 길에 바라본 파도가.... 너무... 세서... 들어가기도 전에 겁을 집어먹고.. 그냥 나는 아이패드 들고 와서 그림이나 그리고 놀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고민했는데, 다행히도 바닷가에 앉아 강습시간을 기다리고 있으니 점점 햇빛도 따뜻해지고 바다도 조금 얌전해진 듯했다. 오전 11시 수업을 기다렸다.

뒤늦게 도착한 투마쉬 선생님(머리가 빠글빠글, 얼굴에 개구쟁이라고 써져 있는 것 같은 선생님이었다)과, 누가 봐도 소심한 교정기 소년 같은 아이랑 셋이서 바다로 나갔다. 서해의 만리포처럼 얕고 큰 바다였다.


우리는 우선 바닷물을 머금어 살짝은 단단한 바닷가 모래 위로 뛰며, 왔다 갔다 몸의 생기를 살려내려고 애썼다. 내가 제일 잘하는 버터플라이 자세로 스트레칭도 하고(내가 너무   덕분에 소년만 고생했다. 선생님  친구가  하는  아니라 제가 조금 비정상인 건데... 애를 그렇게 접으려고 하시면...) 바닥에서 패들링 연습도 했다. 중간에   서고, 자꾸 뒤로 서는 바람에 매일 그렇게나 중심을  잡았는지, 선생님이 말해준 대로 중간에  서서 무릎  구부렸더니...!! 그랬더니...!!!! 파도를 엄청  잡아서 진짜 오래!!   , 보드 밑을 파도가 잡고 끌어준 마냥  타게  것이 아닌가...!! 완전 충격이었다. 마지막으로 서핑하러   5개월은   같은데, 머리에 - 하고 서핑의 신이 가지고 다니는 삼지창이 있다면 그걸로 두드려 맞은 느낌이었다. ( 멍청아! 이걸 이제야 알았냐!)

선생님이 너무 착하고( 발길질에 얻어맞으셨는데도  얼웨이즈 굿이라고 했다.), 너무  가르쳐 줘서 오랜만에 진짜 짜릿한 기분으로 샤카~ 하고 손도 흔들었다. 여기저기서  유럽 친구들과 나른한 기분으로 햇살 아래 앉아 떠들다가, 똑같은 500 버스를 타고 구시가지로 돌아오는 길엔 따뜻한 날씨에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온 주말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풍경도 예뻤지만, 진하게 뽀뽀하는 노부부와, 건강하게 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햇빛이 쏟아져 내린 주말, 아침부터 마음껏 파도를 타고  나의 나른함, 그것보다  기분 좋은 상황이 뭐가 있을까.  쌩쌩한  같았는데  눈이 꿈뻑꿈뻑 졸려와서 눈을 감고  위로 쏟아지는 포르투갈의  햇빛도 즐겼다.


Tapabento의 그라탕

돌아와서는 체크인을 한 후, 후딱 씻고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Tapabento에 갔다. 출장 내내 세상 얌전한 멘탈을 유지하시던 동료분이 갑자기 흥분하시며 추천한 급 오리고기를 꼭 먹고 싶었지만, 키친이 마감한 데다, 아직 저녁시간이 안 되어서  주문할 수가 없었다. (일종의 브레이크 타임 같은 건가 보다. 직원들이 밥을 챙겨 먹더라.) 뭐 아쉬운 대로 그라탕을 시키고, 크림 야채 수프를 시켰다. 야채스프도 슴슴하니(포르투갈 음식 치고는 간이 세지 않아 좋았다) 맛있고, 치즈와 토마토가 잔뜩 들어간 치즈 그라탕을 바삭한 빵 위에 얹어 먹으니 은근히 맛있었다. (하지만 오리고기에 대한 미련만큼은... 버릴 수 없어.....)
혼자 먹는 밥이 조금 심심할까 했는데, 바 자리 바로 옆에 앉은 태국 친구가 계속 말도 거는 덕분에 심심하지 않게 밥도 먹고, 스탭 점심(음, 정체불명이긴 하지만 파스타... 샐러드.. 느낌?) 메뉴도 얻어먹었다. 역시 유명한 음식점도 매일 먹는 밥은 거창하지 않은 가 보다. 그래, 일상은 슴슴한게 더 소화가 잘 되는 법이지.

엄마가 유독 사랑하는 유럽의 독특한 치약이 포르투에도 있었다. (독일의 아요나, 이탈리아의 마비스를 한 박스씩 사다 드렸는데도 새로운 치약은 늘 좋아하신다. 그래서 선물 사는 게 더 쉽다. 귀여운 우리 어무이.) 치약을 사러 잠시 쿠토에 들렸다가, 역시 파두를 들어야겠다며 찍어뒀던 Fado de baixa에 갔다.(누군가가 지나가듯 비긴 어게인에 나온 곳이라고 했지만 속은 것 같다) 6시가 약간 넘은 시간이라 뒤늦게 티켓을 샀는데 16유로나 하는 줄은 몰랐다...(!) 그래도 지갑 잃어버리고 잉잉 울며 파두 보러 가고 싶은데 돈 하나도 없어서 쭈굴쭈굴 쭈구리 신세였던 그때를 기억하면서 즐겼다. ‘코임-브라-‘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하면서 그냥 따라 부르고, 흔들흔들 듣고, 손뼉 치면서.

직장인이라는 삶을 아무것도 모른 채 시작했고, 1년이 지나 뒤돌아 보니 어느새 훌쩍 커 버린 나에게 손뼉 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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