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한쪽에 영화와 관련된 책을 따로 모아 놓은 책장이 있다.
25년 전, 한 비영리 영화단체에서 활동하며 영화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그 시절에 사 모은 책들이다. 그 당시 국내에 출간된 영화 책들을 모조리 사들이려고 노력했었다. 행여나 책이 절판되었으면 대학 도서관에서 그 책을 찾아내어 제본해서 가지고 있었다. 간혹 중고 서점에서 희귀한 영화 책을 발견하면 기뻐서 냉큼 집어 들어, 책방 사장님께 웃으며 돈을 내밀었다. 그렇게 해서 모은 영화 책이 200권이 넘는다. 주변 도서관 여러 곳을 가봤는데, 내 책장보다 영화 책이 많은 곳을 못 봤다.
이 영화 책들을 나름대로 분류도 했다. 대학 영화과 커리큘럼처럼 영화이론, 영화사, 영화 평론, 감독론 등으로 나뉘어 책장에 꽂혀 있다. 마치 영화를 전공하는 대학원생 서재 같다. 물론 영화학자나 영화평론가처럼 전문가의 서재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당연히 이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을 모두 읽은 건 아니다. 사놓기만 하고 쌓아 둔 책들이 많다. 읽다 만 책도 있고, 아예 손도 못 댄 책도 있다. 어차피 다 읽지도 못할 거, 왜 그렇게 욕심을 부렸을까.
처음에는 영화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했으리라. 영화에 대한 거라면 하나도 놓치지 않고 알고 싶었겠지. 그렇게 한 권 두 권 쌓여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돌이켜보면, 나는 영화 책뿐 아니라 다른 분야 책도 유사한 패턴으로 사들이곤 했다. 남미의 소설가 보르헤스에 대한 찬사를 누군가에게 듣고 보르헤스 전집을 사들였고, 혁명가 마르크스에 대한 경외심을 담아 <자본론> 전집을 사들였고, 프루스트의 소설을 읽고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전집을 사들였으나, 모두 처음 몇 페이지만 읽다가 그만두기 일쑤였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 중 많은 책이, ‘읽은’ 책이 아니라, ‘읽고 싶은’ 책을 보관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언젠가 읽을 수 있을 거라며 미래를 기약하는 책들이 늘어만 갔다.
사놓고 한 번도 펼치지 않은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을 바라보며, 나의 지적 허영을 돌아보게 된다. 잘 알려진 책은 꼭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 책 그 자체를 갖고 싶었던 소유욕, 내 독서 능력에 대한 과대평가…. 이 모든 게 허영이 아니었을까.
마음만 앞서는 욕심을 이제 버릴 때가 됐다. 지금 가진 책을 모두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책에도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