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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대훈 Mar 12. 2024

140

3.12


요즘은 그렇다. 이따금 가만히 멎은 채 나의 독자들을 생각한다. 한 사람 한 사람 만나서 그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리고 거듭 감사하다고 말하는 상상을 한다. 궁금하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지. 왜 내 글을 읽는지. 글을 읽는다는 건 아무튼 참 피곤한 일이다.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지고 거듭 궁금해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에게는 그렇다. 무엇이든 가치가 없으면 배제되고 잊히는 것이다. 세상은 무정하다. 읽을 것들은 넘쳐나고, 읽는 사람은 눈에 띄게 줄어든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나란 인간을 구독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놀랍다. 나처럼 불성실하고 소통을 어려워하는 인간에게 말이다. 나에게 독자들은 외부의 나를 완성시키는 존재들이다. 외부에 있는 내가 온전하도록 자리를 만들어 주는 사람들. 그리고 나는 때때로 외부에 있는 나를 데려다 내부에 있는 나의 생기롭게 한다. 말하자면 독자들은 나의 정체성을 완성시켜 주는 매우 존엄하고 귀한 한 사람 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육성으로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를 하게 될 날을 나는 바라곤 한다. 고맙습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아마, 내 독자들은 마음이 그리 순수하고 연한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흉터가 많을 것 같고, 색채도 조금 흐릿할 듯하다. 어딘가 늘 텅 비어있는 사람들, 은은히 허무와 가까워 어떤 일에도 그리 크게 흥분하지 않는 사람들. 숨구멍이 모자라 온몸으로 숨 쉬는 사람들일 것이다. 마음이 산뜻하고 싱그러워 삶을 찬란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아마 내 글에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뭐 이런 다 죽어가는 글을 쓰냐고. 사실이다. 나는 불친절한 글을 쓴다. 어떤 경우에는 자학적이고 자폐적이고, 다분히 우울하고 냉소적이다. 불편하고 싫은 것들을 나는 그냥 쓴다. 나는 글을 통해 무언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는 태도보다는, 비감하고, 치가 떨리고, 절망스러운 것들의 중심으로 파고들어 가서 자유로워지자는 심산으로 쓴다. 불행을, 고통을 공개하는 행위가 나를 아주 잠깐 해방시킨다. 그러면 더 버틸 수 있었다. 어설픈 희망이 나를 좀먹게 할 바에 절망 속에서 무뎌지는 게 나는 더 좋다. 아마도 사람들은 내면에 어둡고 보기 싫고 껄끄러운 것들을 누군가 확 끄집어내 보였을 때 어떤 위로를 받기도 하는 듯하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러나 나는 내 독자들에게 일말의 미안함을 가지고 있다. 내 글을 읽으면 기운이 쭉 빠질 것도 같다. 이 사람 또 우울하네, 또 글이 비슷하네. 이런 생각을 이미 나부터도 한다. 신선하고 다채롭기보다는 내 글은 어딘가 정체되어 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전보다 문체가 강해지고 단단해졌다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쓸데없이 글을 어렵게 쓴다고 꾸짖기도 한다. 모든 독자들을 만족시킬 글을 쓸 수는 없지만 최소한 나 자신에게 부끄러운 글만은 쓰지 않는 게 나의 유일한 소망이다. 물론 단 하루만 지나도 과거가 되는 글들은 늘 부끄러움의 연속이지만, 어떤 순간만큼이라도 진실로 존재한다면 그것은 분명 무의미하지는 않으리라.

약속하건대, 나는 평생 쓸 것이다. 이곳에 쓰든, 아니든, 어디 숨어서 타자기를 두드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쓰지 않고는 정녕 살 수가 없는 인간이다. 고백하건대, 지금 나는 편집장님과 새 원고를 작업하고 있다. 막 시작해서 언제 출간될지는 모르겠다. 올해 안에 출간된다는 건 확실하다. SNS로든 책으로든, 더 자주 나를 비추어 나를 읽는 사람들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싶다. 결국 나는 독자들 덕분에 별일 없이 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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