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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대훈 Apr 0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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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봄이 왔다



적중했다. 곳곳이 시끄럽고 피곤하다. 별안간 거리는 형형색색이다. 다들 참 행복해 보이네. 나는 중얼거렸다. 근래 독백이라는 병세가 깊어졌다. 어디서 귀신이라도 들려온 건지. 얼굴이 자꾸 간지럽고 뒤통수가 서늘하다. 와중에 기어이, 초록이 엎질러졌다. 내장이 훤히 비치는 목련이 귀부터 빠져나왔고. 혓바닥처럼 고옥한 벚꽃은 짧게 살다 간 한 인간의 주검 같았다. 하늘에서는 이상하게 비린내가 풍겨왔고. 빛은 힘을 잃고 늙었다. 다 어디서 출몰한 것들인지. 눈이 시큰거리고 시끄럽다. 전부 어디 치워버리고 싶은 것들. 세상을 향해 안녕이라고 말했더니, 나는 정말 어설픈 인간이 되었다. 다시는 무엇에도 인사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저것들이 나를 미아로 만들지 않냐, 나는 자문했고. 왜 동화되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에 도달하고 말았는데, 처음부터 그런 게 가능하기나 했었나?라는 생각이 골을 뒤흔들었고. 동화되어 무얼 하려느냐? 슬프지 않아 무얼 하려느냐? 어디선가 나는 들었고. 느꼈고. 오른손을 불끈 말아 쥐고 가슴을 몇 번 쳐야 했다. 충격에는 더 큰 충격으로 응수해야 하는 법. 일상적 자학. 그래, 이건 나의 몫일뿐이다. 변화를 눈치챈 영혼이 즉각 살갗을 올올이 풀어 가벼워지라고 명령하였다. 나는 귀 한쪽을 잘라 바치기로 했다. 점잖음은 이제 지겨울 뿐이었다. 곳곳에서 비명이 웅성거렸다. 사람들 소리가 겹쳐 들린다. 내가 죽는다.  


가끔은 바깥의 상황이 꼭 누군가의 몸속처럼 보이는 거지 

격렬한 소화활동의 현장처럼 보이는 거지 

세상은 격변하고 정경은 펼쳐지고 사람들은 천진해지는데 

그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을 참아야 하는 거지 

생애를 소생시키기 위해 감내해야 할 자극들이 

구경거리의 세계에 전시되어 있다는 게 참을 수 없어서 

아직도 외부로 나가지 못하고 안으로 파고들기만을 잘하는 

내 하찮은 청춘의 썩은 내가 진동을 하는 거지 

그 와중에 희망이라는 위험한 전염병이 속절없이 퍼져나가고

미세한 입자들이 저마다의 기관으로 틀어박히고 

멸절된 시간 속에서 내 유년의 부산물이 들썽거리는 거지 


문을 열고 막을 찢고 안개를 휘저었다. 살아있는 시간이 공포인데 봄이 왔다. 늘 다른 사계를 돌아야 하는 폐륜적 운명에 놓인 마당에 봄이 왔다. 어쩌자고 빛이 따듯하다. 어쩌자고 마음이 가볍다. 어쩌자고 세상이 오색찬란하다. 그만 죽어야 하나. 되려 살아야 하나. 삶이 박동한다. 이 박동은 삶의 도약인가 죽음으로의 추락인가. 아니, 아니라네. 다 거짓말이라네. 머릿속을 떠도는 생각들은 다만 내 불운일 뿐. 그러니 저 꽃들처럼 이제는 입을 다물 것. 

관찰과 학습. 비밀과 기록. 불타 죽는 한이 있어도 웅크려 있는. 오, 내 아름다운 흉물. 


푸르른 침묵 속에서 첫 문장을 기다린다. 못내 흰 여백을. 그래서. 그럼에도. 아, 내 마지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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