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트리더 박수은 Jan 29. 2021

아트리더 비긴즈 : 홍대 미대에 4수해서 들어간 이야기

살면서 지니게 된 귀한 것은 모두 치열하게 얻어 온 것들입니다.



 아트리더 박수은은 미술 이야기를 하는 사람입니다. 미술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재하기에 앞서 제가 미술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잠깐 말씀드리려 합니다.


 저는 4수를 해서 홍대 미대에 들어갔는데요. 여기에는 좌충우돌 우여곡절이 있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미술 선생님의 추천으로 미대 입시를 시작했습니다. 현역으로 서울 소재 미술대학 도예과에 입학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지요. 이후 유학 준비를 했으나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며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유학 포기. 그때가 22살 여름. 친구들은 대학교 3학년이었어요.


 수능 100일 전, 이번에 떨어지면 끝장이라는 생각으로 입시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오후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돌아와 밤새 공부했어요. 아침 6시부터 오전 11시까지 자는 생활을 몇달 동안 지속했습니다. 불안에 몸을 떨던 새벽을 잊지 못합니다. 어찌보면 제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게 살았던 시기였지요. 그리고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좌충우돌 끝에 입학한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는 전반적인 미술이론을 공부하는 학과입니다. 이 학과로 선택한 이유요? 당시 예술학과는 실기시험 반영률이 10% 이내였습니다. 입시 미술을 놓은지 2년이 넘어 이미 손이 굳은 상황, 실기 반영 비율이 높은 다른 미대 입시를 준비할 시간도 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무엇을 배울지 잘 모르는 상태로 환경에 의해 선택한 전공이 바로 예술학입니다. 허나 4년 내내 재미있게 배웠어요. 미술이론은 참 매력적인 학문이거든요.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예술학과는 영어로 Art Studies, 곧 미학, 미술사학, 예술학, 전시기획론 등 시각예술 분야를 아우르는 다양한 학문의 기본을 쌓습니다. 졸업 후에는 큐레이터, 미술평론가, 갤러리스트, 미술교육인 등으로 일할 수 있어요.


 4년 동안 열심히 공부했는데, 졸업이 다가왔죠. 이 쪽 길은 공부도 진짜 많이 그리고 오래해야 하는데 저는 당장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어서 일반 회사에 들어갔어요. 대학원은 꿈도 못꾸고요.

솔직히 말하면 미술이 지겹기도 했어요. 완전히 다른 분야에서 일해보고 싶었습니다. 빠른 취업을 원하기도 했고 통상적인 미술계 수준보다 돈도 많이 벌고 싶었고요. 미대 재학 중 사람들이 “넌 경영학도 같아”, “사업해봐” 라는 말을 많이 들어 제가 정말로 잘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대기업 홍보 업무에 지원하니 쓰는 족족 떨어졌습니다.


 이후 경력을 쌓아 기업에 이직한다는 전략으로 바꾸고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을 고객으로 하는 홍보 대행사에 입사했지만 전공이 달라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현장에서는 처음부터 홍보 마케팅만을 준비하고 달려온 이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쉽지 않았거든요.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는가... 스스로 수없이 반문하던 시기였습니다.




 이 와중에 엄마가 폐암 4기 판정을 받게 됩니다. 기침이 두달 간 지속되었는데 단순한 독감인줄 알았던 것이죠. 기침하며 피를 뱉고서야 병원을 찾았고 큰 수술 후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일을 그만두고 아산병원에서 4개월간 병간호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병실 생활을 했지만 결국 사랑하는 엄마는 돌아가셨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엄마가 아플 때 제 옆을 지켜준 따뜻한 사람과 결혼했고, 결혼 2달만에 임신, 출산으로 이어지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전업맘 원더랜드에 도착했습니다. 갓난쟁이가 우리 집에 등장했지만 시댁은 지방에, 친정 어머니는 안 계셨거든요. 직장 격무에 시달리는 남편이 역할을 분담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독박육아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아이를 키우는 동안 경력이 단절되었지만 혼자가 둘이 되면서 생활은 미혼 때보다 안정되었습니다. 불안하게 비틀거렸던 20대보다 여러모로 여유가 생긴 거예요. 그렇지만 돌쟁이 아기와 하루종일 둘이 집에서 아주 심심했습니다. 아이 밥먹이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도돌이표 생활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도서관에서 책을 몇 권 빌리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 전에도 책을 좋아했는데, 아르바이트를 하고 취업을 준비하면서, 나중에는 일에 파묻혀 책을 읽을 여유가 없었거든요. 전업주부가 되고 나서 문자 그대로 미친듯이 책에 빠져들었습니다. 한달에 20여권씩 침대 머리맡에 쌓아두고 읽었습니다. 자기 전에 읽고, 눈 뜨자마자 읽고, 아기 낮잠 잘 때 읽고... 폭발적인 독서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깊은 고민으로 이어졌습니다.



"난 왜 미술을,
정확히 말하자면
예술학 전공 공부를 계속 안했을까?"
"현실적인 상황이 되지 않아
억지로 이 길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걸까?"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여러모로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전환점이 등장합니다. 바로 아름다운 섬 제주도에서의 삶입니다.


궁금하시죠? 브런치 다음 편에서 이어 갈게요.





작가의 이전글 아트리더 Art Reader, 무슨 뜻이에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