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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Dec 04. 2020

용돈을 아껴 아내를 위해서 산...

아내는 늘 아이들을 챙기고, 난 그런 아내를 챙긴다

아내는 아이들에게 홍삼을 챙겨준다. 시험 때가 되면 체력이 떨어진다 걱정하며 아들을 챙기고, 한참 커야 할 나이에 키만 크고, 살이 찌지 않는 둘째가 걱정되어 딸아이를 챙기고, 매일 저녁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조는 남편이 늙는 거 같다고 안쓰러워하며 날 챙긴다. 정작 자신은 챙기지 않으면서.




중,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난 작은 키가 그렇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사춘기를 지나고 성인이 되면서 늘 콤플렉스 중 하나는 내 작은 키였다. 옷을 입어도 매무새가 키가 큰 친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멋져 보이지 않았고, 바지를 사더라도 항상 바짓단은 수선을 맡겨야 했다. 그나마 이십 대 때까지만 해도 얇은 허리 덕(실제 28인치)에 바짓단을 많이 줄이지는 않았는데 사십 대가 되면서 늘어난 허리 사이즈 때문에 수선을 맡기면 수선집 사장님은 바짓단을 우선 자르고 시작한다.


아내와 난 둘 다 아담한 사이즈다. 그렇게 불편한 정도는 아니고 그냥 평균 키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다. 최근 기준의 남녀 평균 키는 20대 남자는 174Cm, 여자는 160Cm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알고 있다. 하긴 내가 20대 초반이었던 90년도 초만 해도 내 키는 그 당시 평균 키에 근접한 수치 기는 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건강검진 때 유독 신경 쓰이는 부분 중에 하나가 신장이었다. 몇 년 전부터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더니 최근 건강검진 때 쟀던 키는 내가 가장 장신이었던 군 입대할 때와 비교하면 2Cm나 줄어든 성적표를 보였다. 아내와 딸아이는 내 키가 줄었다고 놀리지만 분명히 고개를 너무 들고 재서 키가 잘못 측정된 것이라고 우겼다. 그래 봤자 0.5Cm 내외일 듯하다고 생각해보면 분명히 내 신장은 줄었다.


지금도 내 신장이 신경 쓰이는 건 내 아이들의 키가 선천적, 유전적인 영향을 받을까 걱정이 되어서이다. 아무리 아이들에게 성장기 때에는 잘 먹어야 하고, 잘 자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아들은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삼시 세 끼를 제외하고는 군것질은 거의 입에 대지 않고, 식사 양도 그리 많지 않다. 요즘 애들이 마른 몸을 좋아해서 그런지 몰라도 항상 먹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쓰는 눈치다. 거기에다 늦은 취침 시간도 문제가 되지만 이건 고등학생이니 어쩔 수 없을 듯하다. 딸아이는 어릴 때부터 마르고 작은 체형이라 아내나 난 무척이나 신경이 쓰였었다. 먹는 양도 작은 데다가 어릴 적부터 잠도 늦은 시간에 자니 제대로 성장하는 게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다행인 건 딸아이는 편식을 하지 않고 골고루 먹는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난 아내나 내가 작아서 꼬리표처럼 달고 다니는 아이들 키 얘기가 싫고, 부담스러웠다. 한 동안 애들 외삼촌이 농담처럼 하던 말도 내게는 신경이 쓰였으니 다른 사람들 이야기는 더욱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키는 유전적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데...', '아빠, 엄마보다는 크겠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괜스레 아이들을 더 재촉하곤 했다.


 "민수야, 좀 더 먹어. 야 한참 잘 먹을 나이에 고작 그걸 먹고 숟가락을 놓냐."

 "지수야, 일찍 자야지. 성장 호르몬 한참 나올 시간에 이렇게 안 자면 어떡해."


아내는 두 아이에게 홍삼을 종종 먹인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목적과는 조금은 다르지만 난 어쨌든 성장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믿고 있다. 언제부턴가 아내는 아들이 시험 기간만 되면 홍삼을 먹이려고 한다. 시험기간에 힘들어하는 아들의 체력을 조금이나마 보충해 주려고 홍삼을 먹이고, 둘째는 틈만 나면 평균 이하의 키와 체중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홍삼을 먹인다.

 

그렇게 아들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부터 일 년에 중간, 기말고사 등 총 네 번의 시험 동안 홍삼을 세 번 내지는 네 번을 먹는다. 이렇게 큰 아이가 먹을 때면 아내는 가급적 딸아이도 함께 먹이려고 애쓰는 편이다. 이렇게 먹인 홍삼 덕인지 아니면 아이들이 클 때가 되어서 그런지 조금씩 효과는 있어 보인다. 눈에 띄게는 아니어도 큰아이는 체력이 조금 올라왔고, 키도 평균 키에 근접해졌다. 그렇게 클 것 같지 않던 딸아이도 어느새 아내어깨동무를 할 정도로 키가 부쩍 커졌다. 몸무게는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어쨌든 아내의 노력으로 아이들의 신체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며칠 전에도 아들의 기말고사 전이라 홍삼을 사러 아내와 '정O장'에 갔다. 아내는 요즘 코로나도 심각하니 두 아이들 홍삼을 사면서 내 것까지 구매하려고 했다. 난 아내에게 기왕 사는 거 아내 것도 사자고 제안했지만, 아내는 '자신은 괜찮다'라고 말하며 자신을 뺀 세 식구의 홍삼만 결재하려고 했다. 하지만 난 아내가 괜찮다고 얘기하는 건 우리 가계의 경제적 사정임을 뻔히 알고 있었기에 아내의 홍삼을 함께 계산대에 올렸다.

 

 "영희 씨, 당신 생일도 다음 주인데 내가 생일 선물로 영희 씨 홍삼 사줄게요."

 "철수 씨가 돈이 어디 있어서요. 그냥 다음에 애들 다 먹으면요."

 "요즘 도시락 싸가지고 다니면서 용돈을 조금 아껴놨어요. 생일 선물! 내 마음이 그러니 받아줘요."


이렇게 아내를 설득하고 거금을 들여 우리 집은 처음으로 가족 모두가 건강식품을 먹게 됐다. 아내가 아이들의 건강과 성장을 신경 쓰는 것만큼 난 아내의 건강이 신경이 쓰인다. 아내는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 내가 사 준 '화O락'을 잘 챙겨 먹는다. 내 기분 탓인지 최근에 아내의 기분이 많이 밝아 보인다. 내 지갑 허리띠를 졸라서 아내와 함께 먹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다.


"영희 씨, 아이들만 챙기지 말고 이젠 당신 몸도 챙겨요. 그래야 우리 가족 모두가 행복해지니까요. 내가 영희 씨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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