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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Nov 25. 2020

아내의 도시락

김밥 덕에 난 이제 집밥으로 삼시 세끼를 해결한다

철수 씨, 아침에 나 깨워요. 도시락 싸 줄게요.


먹는 것에 크게 불만 없이 살았던 내게 요즘 점심 메뉴는 정말 고민이고, 불만일 수밖에 없었다. 이게 다 징글징글한 코로나 사태 때문이다. 그나마 얼마 전까지는 가끔 부서원들끼리 점심을 밖에 나가서 먹기도 해서 이런 불평 지수가 최고조에 달하지는 않았는데 최근 한 달에 가까운 시간은 김밥으로만 점심을 해결하고 있다. 내가 영화 '올드 보이'의 오대수도 아니고, 요즘 같아서는 차라리 만두가 더 맛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야채 김밥, 치즈 김밥, 김치 김밥, 참치 김밥, 돈가스 김밥, 진미채 김밥, 계란 김밥...'


종류별 김밥을 모두 먹어봤지만 김밥은 그냥 김밥이었다. 한 가지 메뉴만 계속 먹는 게 너무 힘이 들었고, 다른 메뉴를 사 와서 먹는 것 또한 만만치가 않았다. 사무실 안에서 먹으려다 보니 조금만 냄새가 나면 쌀쌀해진 늦가을 날씨에 환기시키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주변에 그 흔한 도시락집 하나 없는 것도 내게는 불운이라고 하면 불운이었다. 선택지가 많지 않았고, 사무실 건물 맞은편에 있는 P 햄버거 영업점도 이달 말이면 더 이상 먹지 못하게 되었다. 코로나가 불러온 여파로 대형 프랜차이즈인 P 햄버거 영업점도 정리를 한다고 했다. 이제 영업일이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제 거리두기도 2단계로 격상되면서 당분간은 밖에 나가서 식사하는 건 엄두도 내지 못하게 되었다. 먹고살기 힘들다고 하지만 난 다른 의미의 먹는 게 힘들어져 버렸다. 예전엔 김밥에 라면이면 몇 날 며칠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사람 입이란 게 이리도 간사하다는 걸 요즘에 와서야 깨달았다. 불어 터진 라면이라도, 조미료 가득 들어간 김치찌개라도, 간이 덜된 콩나물국밥이라도 김밥만 아니면 괜찮을 거 같았다. 요즘 같아서는 정말 김밥만 아니면 뭐든 잘 먹을 것 같다. 회사 동료는 안됐다는 말로 위로는 하지만 얼굴에선 배가 불렀다는 불편한 표정이라 더 내색할 수가 없었다. 조용히 따로 햄버거나, 샌드위치 같은걸 사 먹는 수고로움을 감수할 수밖에.


이렇게 입맛에 맞지 않는 점심 식사를 늘 하다 보니  퇴근해서 집에 가면 늘 점심 메뉴에 대한 불평, 불만은 밥상 위에서도 습관적으로 내뱉는 일상이 되었다. 점심 김밥 식사로 인한 장점이 있다면 이런 단일 점심 메뉴 덕에 아내의 저녁 밥상에 감사한 마음이 더 커졌다는 것이다.


"영희 씨, 오늘 찌개 대박~!"

"도대체 제육 양념에 무슨 짓을 한 거예요."

"진수가 성찬이네요. 잘 먹을게요."


주말 저녁 식사 후 아내가 내게 무심하게 제안을 했다. 점심 도시락을 싸주면 어떻겠냐고. 난 마다할 이유가 없었고, 맛있는 집밥을 삼시세끼 먹는 호사를 누릴 수 있음에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다만 아내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는 수고스러움과 도시락 반찬을 따로 준비해야 하는 비용 발생에 대해 자신의 노동과 추가 비용에 대한 적절한 대가를 원했다.


 "철수 씨, 점심 사 먹으면 얼마 쓰죠?"

 "먹는 메뉴에 따라 가격에 차이가 있지만 대략 육칠천 원 정도 써요. 김밥만 아니면."

 "그럼 매일 점심 도시락 싸주는 대신 내게 얼마를 지불할 거예요?"

 "음, 하루에 이천 원. 계산 편하게 일주일이면 딱 만원이네요."

 "그럼 월말에 정산하는 걸로 하고 내일부터 도시락 싸줄게요. 6시 30분에 깨워요. 보너스로 아침도 차려줄게요."


대애~박! 난 어제 꿈자리가 좋았나 싶었다. 도시락에 아침 밥상까지 받게 되었으니 내게는 절대 밑지는 장사가 아니었다. 매일 아내의 사오 첩 반상을 아침에 받을 수 있다니 생각만 해도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그래도 평소보다 30분이나 일찍 일어나야 할 아내를 생각하니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한가득이다.


오늘 아내의 점심 도시락을 처음으로 먹었다. 뚜껑을 열고 밥 위에 '하트 콩'을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흑미 잡곡밥이라 콩이 들어 있어도 흑미밥이라 검은 콩이 포인트로는 무리일 듯싶었다. 내일은 초록색 콩이라도 올려 주려나. 너무 바라면 도시락 값이 오를 수도 있으니 무리는 말아야겠다. 아내 덕에 오늘도 안전하고, 맛있는 집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Thank you for my wife! Thank you for my h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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