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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Mar 26. 2021

아내의 이름을 부르면 일어나는 일

아내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면, 나는 아내에게로 가 멋진 남편이 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님의 『꽃』 중에서



내 나이 오십을 바라보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아내의 이름을 부르고는 합니다. 내가 아내의 이름을 불렀던 세월만 따져도 사반세기가 다되어가니 이 세상에서 아내의 이름을 불러본 사람 중에 횟수로는 내가 가장 많이 부르고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렇게 내가 오랜 부부 사이임에도 아내의 이름을 부르는 이유를 아내는 알까 모르겠지만 아내도 내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싫어하는 내색은 아닌 듯합니다.


사람에게는 모두 이름이 있습니다. 이름은 누군가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머릿속에 맴도는 텍스트 중에 첫 번째이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 불려지고, 써지는 이름만으로도 저마다의 가치가 다르게 평가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손수 써지는 이름 몇 자만으로도 브랜드가 될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이름에 대한 가치를 모르고 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있는 그 이름의 가치는 어떠한 식으로든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할지 또는 낮게 평가할지는 자신이 부여하는 의미와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불러주는 이름에 대한 가치도 중요하겠지만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불러주는 자신의 이름에 대한 가치 본연의 핵심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에게서 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신의 이름에 대한 가치뿐만 아니라 자신과 함께 하는 사람들 이름에 대한 가치 또한 중요합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부터 친구 그리고 직장 동료 등 우리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당신과 함께합니다. 이렇게 함께 하는 사람들 중에 당신의 가치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있을까요?  당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관계의 사람들에게 당신의 가치를 존중받고, 이해받기 위해서는 당신도 그들을 존중하고, 이해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요?


가끔 길에서, 카페에서, 공공장소에서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이런 눈살 찌푸리는 일들 중에 상대방을 존중하지도, 이해하지도 않는 말들이 오갈 때 그들이 아무리 가족이든, 친구이든 간에 서로의 가치를 떨어트리고 있는 행위임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야,  집에서 애들을 어떻게 가르쳤어? 어떻게 애들이 하는 행동들이 다  같이 말을 안 듣냐?"

 "아이씨, 그런  애들한테 얼마나 좋은 아빤데. 밖에 나와서까지 애들을 때리고 그래"


서로 간에 밖이든, 집에서든 서슴없이 '야~', '너'를 부르고 있는 아이들의 엄마, 아빠를 보면 참 안타까운 생각이 많이 듭니다. 아이들에게 최고의 스승은 부모입니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거울이라는 말도 있듯이 부부간에 서로를 존중할 때 그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자존감도 높아지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 연애할 때 저는 아내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영희야, 영화 보러 가자', '영희야, 저녁 뭐 먹을까?' 이렇게 오랫동안 부르고 났더니 결혼하고, 나이가 들어서도 습관처럼 '영희야'가 입에 배어서 아이들 앞에서도 '영희야'가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과거 어른들이 하셨던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부모님들이나 아이들이 있을 때는 호칭을 조금 바꾸면 어떻겠냐고 하시던 그 말씀이요.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잘 이해가 안 됐습니다. 하지만 이젠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부터 어떻게 불러주느냐가 또 다른 나의 가치를 높이고, 존중받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물론 오래된 부부처럼 가끔 '여보', '당신'과 같은 호칭을 쓸 때도 있지만 가급적이면 '영희 씨'라고 부르려고 노력합니다.


이런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나의 가치를 높이는 이유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이름을 불러야 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우리는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으로 언제까지 불리면서 살 수 있을까요? 생각해보면 학창 시절만큼 나를 대표하는 시그니처인 내 이름을 많이 불려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결혼 후에도 친구들을 만날 때, 평상시 가족들과는 그 이름이 흔하게 불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혼한 기혼 여성의 경우 아이들을 키우며 만난 지인들과의 관계에서는 자신의 이름 대신 다른 호칭으로 많이 불립니다. 아니 오히려 자신의 이름을 불릴 기회가 사라지게 됩니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 같은 경우에도 직함을 받고 나면 그 직함으로 퇴사 전까지 불리게 되고, 여성들 같은 경우에는 아이를 키우며 알게 된 사람들끼리는 'OO 엄마' 등으로 불리는 게 자연스러워집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이름이 낯설게 들리는 일도 생긴다고 하니 점점 자신만의 시그니처인 이름을 잊고 살아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 지금까지도 제 아내를 존중한다는 의미를 담아, 아내의 가치를 높여주기 위해 아내의 이름을 부릅니다. 물론 그냥 이름이 아닌 이름 뒤에 최소한의 존칭을 사용해서 그녀를 부릅니다.  


 "영희 씨, 오늘 하루 어땠어요?"


꼭 이름을 불러준다고 상대방의, 그리고 나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아주 쉬운 실천만으로도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시작이 되는 것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사람들마다 이름이 있는 것은 그 누군가를 불러주라고 있는 것이지 잊어버리라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 이름 또한 누군가에게 불려야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나 또한 주변의 소중한 그 누군가의 이름을 지금 불러보면 어떨까요? 미루지 말고 오늘 한 번 불러보세요? 시작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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