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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Sep 01. 2020

예쁜 내 아내에게 용돈을 주고 싶다

아이들 독립심과 자신의 주머니를 함께 채우는 현명한 아내

 "운동화 세탁해야 되는 사람? 엄마가 한 켤레에 천오백 원에 빨아줄게. 아들 운동화 세탁 안 해?"

 "아니, 엄마 그냥 내가 빨게."

 "철수 씨는 운동화 세탁 안 해요?"




난 아내에게 용돈을 받고 있다. 한 달에 55만 원을 받지만 사실 아이들 용돈에 교통비, 보험료, 그리고 기부금이 빠지고 나면 이십칠, 팔 만원 정도가 내게 떨어지는  전부다. 하지만 술도 밖에서 잘 안 먹고, 담배도 피우지 않으니 내겐 이 정도의 용돈도 여유가 있는 편이다.  


 아내는 내게 비상금을 만들어 가끔 자신에게도 용돈을 달라고 한다. 난 어차피 내 급여 통장을 관리하는 게 아내인데 조금은 의아한 마음에 아내에게 되물었다.


  "영희 씨, 필요한 돈 있거나 살게 있으면 생활비나 급여 통장에서 빼서 사면 되죠."

  "생활비에 내 용돈은 포함되어 있지 않아요. 생활비는 우리 집 운영에 필요한 자금이에요. 그러고 보니 우리 집에서 나만 용돈이 없네요."


 아내의 말에 난 가슴 한 곳을 망치로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고, 아내의 이런 마음이 깊이 이해되면서도 이런 아내의 마음이 고맙고, 미안했다. 정말 19년을 전업 주부로서 가정의 운영을 책임지고, 이끌어 오면서 유독 자신의 주머니는 전혀 신경 쓰고 살지 않은 아내가 안쓰럽고 또 안쓰러웠다.


 이런 아내의 속마음을 알고 난 후로는 난 용돈 이외의 돈이 생기거나 개인적인 부탁으로 가끔씩 하는 아르바이트로 들어오는 수입에서 일부로라도 아내에게 현금으로 용돈을 찾아 주는 일이 생겼다. 5만 원 조금 더 써 10만 원을 받아 들 때면 아내는 마치 아이 같은 표정으로 좋아하곤 했었다. 자주 용돈을 건네지 못해 아쉽기는 하지만 이런 날은 주는 나도 함께 아이가 된다.


 난 용돈이 남아 여유가 생기면 아내에게 맛있는 초밥을 사주거나, 필요한 걸 사주려고 애쓴다. 아내가 바라는 게 큰돈이 드는 일이 아님을 알기에 선 듯 내 주머니의 지갑을 열 때면 아내는 기뻐하고, 내 지갑도 그리 많이 가벼워지지 않아 종종 이런 이벤트를 하는 편이다.


  "운동화 세탁해야 되는 사람? 엄마가 한 켤레에 천오백 원에 빨아줄게. 아들 운동화 세탁 안 해?"

  "아니, 엄마 그냥 내가 빨게."


 아내는 큰 아이의 하얀 운동화가 한 동안 계속 눈에 거슬린다고 하더니 결국은 아이에게 운동화를 세탁하는 조건으로 아이에게 자신의 작은 주머니를 채울 요량(?)으로 협상을 했으나 아들은 단박에 거절했다. 물론 아내의 의도를 알았는지 아들은 스스로 운동화를 세탁하겠다고 나섰다.


  "철수 씨는 운동화 세탁 안 해요?"

  "영희 씨, 난 운동화 빨아줘요. 특별히 좀 더 신경 써줘요. 이천 원 드릴게요."

  "오~케이!!! 내일 세탁에 건조까지 마무리할게요. 그런데 선불이에요."


 난 아내의 작은 주머니에 이천 원을 채워줬다. 큰돈은 아니지만 마음만은 백만 원 수표 두 장을 주는 마음으로 아내에게 흔쾌히 지갑을 열고는 천 원짜리 지폐 두장을 내밀었다.  


 아내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무엇이 생겼을 때 자신의 작은 주머니도 채우고, 아이들에게도 무언가 교훈을 주려고 이런 조건을 걸고는 한다. 처음엔 이런 아내의 이야기나 행동이 그냥 장난처럼 보였지만 아내의 이런 모습에 아이들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은 아이들 스스로 하는 일들이 늘었다.


  "지수야, 엄마가 마스크에 예쁜 자수 넣어줄게."

  "정말? 엄마 좋아. 빨리해 줘."

  "그래, 천원이야."

 오늘도 아내는 자신의 용돈 벌이를 현명하게 하고 있다. 참 예쁜 내 아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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