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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Jan 22. 2021

첫 치킨 배달에서 당황했던 아내

아내를 헤아리는 방법을 하나 더 배웠어요

 "김 부장님, 저 지난 주말에 쿠팡 이츠 배달 파트너 부업했어요"

 "그게 뭔데요?"


얼마 전 블로그를 운영하는 회사 동료가 다가와서 자리 옆에 앉았다. 오래전부터 글 쓰는 내게 자신이 블로그에 올린 글을 검토해 달라는 부탁을 가끔 하던 동료였다. 당연히 그날도 의례 그런 부탁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날따라 동료는 평소와 다른 조금 상기된 얼굴로 얘길 시작했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조금은 생소하고, 재미난 이야기라 내게도 어느 정도 호기심이 일었다. 난 동료의 얘기를 주의 깊게 듣고, 궁금한 점들을 구체적으로 물었다.  


그 동료의 이야기는 이랬다. 블로그에 쓸 글 소재를 찾다가 쿠팡 이츠를 한 번 체험하고 글을 써보려고 주말에 신청했는데 생각보다 수익도 괜찮았고, 어렵지도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쿠팡 이츠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앱을 통한 배달 부업일을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이 동료는 주말 점심, 저녁시간을 이용해 쿠팡 이츠를 통해 총 11건을 배달했고, 배달로 3만 7천 원 정도의 수익을 냈다고 했다. 그 동료는 내게도 재미로 한 번 해보라고 권하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사실 이런 체험을 하려면 일부러 주말에 시간을 따로 내야 해서 쉽게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다. 퇴근하고 아내에게 동료에게 들었던 얘기를 했더니 아내는 스마트폰으로 한참을 찾아보고서는 우리도 주말에 한번 해보자고 말했다. 난 설마 아내가 할까 하는 생각에 주말에 봐서 그러자고 답했다. 하지만 나의 이런 생각은 안일했고, 코로나로 집에만 갇혀있던 아내에게는 쏠쏠한 부업에 바깥 외출까지 명분은 충분했다.


며칠이 또 지나 주말이 왔다. 난 아내에게 산책을 나가자고 얘기했고, 아내는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함께 산책길에 나섰다. 아내의 평소와 다른 행동은 산책을 하면서부터였다. 아내는 걷는 중간중간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다. 이런 아내의 행동이 궁금해서 난 아내에게 뭘 그렇게 열심히 보냐고 말했다. 내 물음에 아내는 웃는 얼굴로 며칠 전 쿠팡 이츠 앱을 설치하고 파트너 등록까지 마친 상태라고 말했다. 지금 시험 삼아 앱을 실행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앱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내는 말 나온 김에 내게 도움을 청했다. 난 생각지도 않게 산책길에 쿠팡 이츠를 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하지만 다행히 아내의 폰은 배터리 부족으로 GPS를 켜고 나서는 오랜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전원이 꺼지고 말았다. 이렇게 한 주는 넘겼지만 아내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철수 씨, 오늘 산책 나갈 거죠? 우리 쿠팡 이츠 해봐요"

 "산책은 갈 건데 오늘 좀 추운데요. 그거 꼭 해야겠어요"

 "자기도 한 번 해보자고 해놓고는 이제 와서 왜 발뺌이에요"

 "(조금 억울한 표정으로) 그야 영희 씨가 하겠다고 하니 나야 기회가 되면 같이 한번 하자고 한 거죠"


결국 지난 주말 아내의 보챔에 마음 약해져 아내를 다독여 산책 나서는 길에 쿠팡 이츠 배달 부업을 하기로 타협했다. 집에서 주섬주섬 나갈 준비를 하고 아내는 자신의 스마트폰에 설치된 쿠팡 이츠 앱을 실행하고 , 배달 접수 준비를 마쳤다. 이렇게 쿠팡 이츠를 실행하자마자 생각지도 않게 폰에 배달 요청 알림이 울렸고, 제대로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아내는 겁 없이 덜컥 주문 접수를  눌렀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처음 해보는 음식 배달 길을 서둘러 나섰다.


처음에는 앱을 제대로 제어할 줄 몰라 조금 헤맸지만 이내 맵을 켜고 주문한 곳과 음식 픽업할 식당을 확인했다. 지도 앱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내가 사는 동네라 그런지 금세 지도가 눈에 들어왔다. 맵에서 주문한 곳은 바로 맞은편 같은 아파트 단지 B동이었고, 음식점은 도보로 대충 10분 거리에 있는 곳이었다. 먼 거리가 아니라는 생각에 처음에는 그리 서둘지 않았다. 하지만 식당으로 이동 중에 금세 또 다른 알림이 떴고, 알림 내용을 본 아내와 난 식당까지 뛸 수밖에 없었다. 알림은 식당에서 음식 준비가 끝났으니 픽업해 가라는 알림이었다. 


배달이 늦어지면 클레임이 있을 수 있다는 고객 마인드로 평소에 잘 뛰지도 않던 우린 음식을 픽업할 식당까지 한 달음에 달려갔다. 숨이 턱 밑까지 찼지만 식당 앞에서 숨을 조금 고르고 이내 쿠팡 이츠 배달 경험이 있는 사람인 양 매장에 들어가 여유롭게 말했다.


   "어서 오세요. 포장인가요?"

   "아뇨, 쿠팡 이츠 배달 파트너인데 배달 접수받고 왔어요"

   "아, 사장님 주문 번호가 뭔가요?"

   "(당황함) 주문번호가... 010-XXXX-YYYY(아내 전화번호)인데요"

   "(어이가 없다는 표정)... 아닌데요"

   "죄송합니다. 저희가 오늘 처음이라"


매장 사장님은 주문받은 모니터를 다시 봤다. 그러고선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했다. 그 사이 아내는 실행된 쿠팡 이츠 앱 화면을 다시 살펴봤다. 꼼꼼히 살펴보니 생소한 문자와 숫자 배열의 굵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난 그 글자가 주문번호임을 직감했고, 다시 매장 사장님에게 그 글자를 불러주고 확인을 요청했다. 모니터를 재차 확인한 사장님은 조금 안도한 표정으로 주방 안에 포장된 치킨과 콜라를 내주었다.

 

이렇게 집어 든 콜라와 치킨을 들고 다시 주문한 곳으로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배달장소에 도착한 우리는 주문자의 요청대로 고객 현관문 밖에 음식을 내려놓고 벨을 누르고 돌아섰다. 이렇게 우리의 첫 배달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아내가 앱에서 배달 완료했다는 버튼을 눌렀더니 잠시 뒤에 배달료(3,100원)가 바로 처리되었다는 알림이 왔다. 그 순간 아내는 무척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전업주부로 살아온 세월이 긴 만큼 자신의 노동력으로 돈을 벌어본 게 꽤 오랜만이어서 더 그런 듯 싶었다. 시작이 좋아서였는지 아내는 조금 더 욕심을 냈다. 하지만 점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산책하는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더 이상의 배달 요청은 없었다. 난 조금 더 욕심을 내려는 아내를 말려 산책을 끝냈다. 아내에게는 혹시나 있을 사고가 걱정되어 혼자 쿠팡 이츠를 하지 말라는 당부를 추가로 했다. 탐탁지 않아 했지만 접수 건수가 만족스럽지 않아서였는지 아내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우리의 첫 배달 체험은 끝이 났다.



아내를 마음으로 항상 헤아리고, 위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너무도 당당하게 아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이 나와 같을 것이라는 착각을 했었다. 하지만 오늘 아내를 보니 가끔은 아내가 하고 싶어 하는 걸 궁금해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이 아무리 작고, 사소할지라도 물어봐 주고, 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돈이지만 아내 스스로의 노동으로 얻은 삼천 원은 아내에게 그 이상의 가치로 느껴질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아내는 가끔 서울에서 지인들을 만나고 오면 지인들이 일을 시작한 것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내게 했었다. 아내도 자신이 원해서 전업주부의 삶을 사는 건 아니다. 아마 살다 보니 좋은 아내, 좋은 엄마로서의 삶을 살게 되었고, 이렇게 놓인 현실에 아쉬움이 있을 것이다. 


아내가 원하는 것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가끔은 두 아이의 엄마, 한 남자의 아내로서가 아닌 한 사람의 여자로서 아내를 바라봐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아내도 한 가정의 소중한 딸이었고, 한 남자가 가장 사랑하는 여자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해 보게 된다. 오늘도 아내 사랑하는 방법을 한 가지 더 배운 것 같다.


  "아빠, 엄마 오늘도 쿠팡 이츠 배달 나갔다 왔어요"

  "영희 씨, 혼자는 배달 나가지 말라니까요. 주말에 나랑 같이 나가자고 했잖아요"


퇴근하고 저녁 식사 자리에서 딸아이의 고자질로 아내가 원했던 완전범죄는 들통이 났다. 당황은 했지만 당당한 얼굴로 아내는 한 건도 못했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이런 아내 모습에 난 오늘도 웃을 수밖에 없다. 아내의 소심한 의욕을 너무 얕본 것 같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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