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 가을의 정점이다. 올해는 여름이 길어서인지 시월이 가을의 정점이라는 생각보다는 이제야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더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월은 곧 다가올 겨울 전 가장 놀기 좋은 달이다.
청명한 가을 휴일을 기다렸다. 곧 바빠질 일상을 조금은 뒤로하고 징검다리 연휴에 내 휴식 같은 하루를 더 끼워 넣었다. 파란 하늘 때문에 설레는지, 당장 얼굴에, 옷 사이사이에 들어올 가을바람을 생각해서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내 휴일은 발 앞에 툭하고 떨어졌다.
오랜만이다. 매주 탈 것 같은 자전거를 장만한 건 작년 이맘때였다. 급여외적인 활동을 통해 생긴 부수익으로 큰 마음먹고 덜컥 저지르고 봤다. 자전거를 데려왔을 때만 해도 매주 녀석을 타고 돌아다닐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막상 녀석을 끌고 나간 건 불과 몇 번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자전거를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았고, 내가 스스로 만든 핑계가 한 보따리였을 뿐.
뜨거운 여름에도 아들 방 베란다 한구석에 반으로 접혀 소심하게 서있는 녀석을 볼 때마다 오매불망 가을을 기다렸다. 다시 함께 달릴 그날을 손꼽으며 말이다. 따뜻했던 봄에도 아내와 라이딩을 했지만 정작 가을만큼 자전거를 타기에 좋은 날씨는 없었다.
그렇게 뜨겁던 9월이 가고 드디어 맞이한 시월 난 일부러 아내가 아르바이트하는 날을 목표일로 잡았다. 징검다리 연휴라 연차 휴가를 냈더니 나흘이나 긴 휴일이 생겼다. 전날 아내와 자전거를 타면서 가볍게 워밍업도 했고, 고민해서 코스도 짜봤다. 긴 코스는 아니지만 왕복 30Km인 중장거리였다.
출발일 아침, 아내가 아르바이트를 늦게 나가는 바람에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집에서 나섰다. 호수공원까지는 익숙한 길이라 편하게 달렸다. 호수공원까지 가는 길도 공원길이라 자전거를 타기에는 너무도 좋았다. 호수공원에 들어서자 평일임에도 달리는 사람, 걷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까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그런 사람들 틈바구니를 지나 공원을 세로로 가로질러 행주산성에 이르는 자전거 길을 들어섰다.
처음은 도로 옆으로 나 있는 자전거 도로라 보이는 풍경이 생각보다 가을하늘과 맞닿는 느낌이 아니었다. 하지만 길게 내달린 도심을 지났더니 자유로 옆 자전거 길은 가끔 보이는 한강까지 방금 벗어난 도심의 자전거길을 잊어버리기에 충분했다. 길게 뻗은 자전거 도로 위에 가끔씩 라이더들이 보였다. 하나같이 안전헬맷에 선글라스, 마스크까지 얼굴을 꼭꼭 싸 맺지만 달리는 몸짓에서 얼마나 신이 났는지 느껴질 정도였다.
길게 뻗은 자전거 길 위에서 끝이 어딜지 모르고 달리다 보니 목표했던 도착지점이 나왔다. 햇살 때문에 달리는 내내 눈은 부셨지만, 12시가 넘은 한낮의 더위도 가을바람에 등 뒤 땀을 식힐 만큼 가을이라서, 오늘이라서 좋았다.
자전거를 주차하고 들어간 식당에는 여러 테이블 자리에 손님들이 있었다. 차량으로 이동해 식사하러 오신 분들도 있었지만 나처럼 자전거로 가을을 즐기며 지나가는 손님들도 여럿이었다. 어느새 내 테이블 위에도 커다란 그릇에 국수 한 그릇과 시원한 단지 안에 막걸리가 놓였다.
물은 마셨지만 가시지 않은 갈증을 시원한 막걸리 한잔으로 달랬다. 찬 막걸리 한 잔에, 뜨거운 잔치국수를 한 입 가득 넣었더니 이건 또 다른 행복이었다. 맛집은 아니었지만 가을바람 시원하게 머금고 찾아온 나 같은 라이더들에게는 이만한 멋집도 없는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조금 더 가을을 만끽하고자 찾은 곳은 고양시 한강공원. 드 넓은 공원에 사람은 적었지만 탁 트인 전망만은 일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를 타기에는 적합하지 않았지만 타다, 끌다 하며 걸어간 정자 위에서 가방에 있던 시원한 커피 한잔 마시며 시원한 강바람을 맞았다.
길 찾기 앱에서 알려준 귀가 코스는 왔던 길과는 달랐다. 호수공원을 가로지르는 코스가 아닌 행주산성을 벗어나 곡산역, 백마역, 풍산역을 지나는 자전거 길이다. 올봄에 곡산역까지 왕복했던 코스라 익숙한 길이지만 그래도 가을이니 무조건 좋았다. 자주 보는 풍경이라도 볼 때마다 좋은 풍경이 있듯이 가을이라 더 좋다.
돌아오는 길이 지루하지 않게 가을바람은 여전했다. 길 따라 길게 도열한 나무들이 곧 갈아입을 옷들이 기대되는 오늘이다.
5시간의 외출로 몸은 노곤했지만 행복감은 충만했다. 씻고 나왔더니 졸음이 쏟아졌지만 아내의 아르바이트 시간이 끝나가기 때문에 아내 마중을 나섰다. 시간도 딱 맞춰 적당한 라이딩이었다. 올 가을 자전거를 더 타고 싶다는 욕구가 생길 만큼.
내년 제주도 여행은 아내와 라이딩으로 준비를 해볼까 싶기도 하다.
'가을아 너무 빨리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 더 즐길 수 있게. 함께 가자꾸나'
10월 초에 써놓은 글이라 길 위에 쌓인 낙엽이 굴러다니는 11월의 짙은 가을 길과는 다르네요. 그래도 아직까지 라이딩하며 가을을 만끽할 수 있는 가을이라 너무 좋네요. 아래 사진은 오늘 라이딩하려고 나왔다가 찍은 가을 정경과 잠시 글 쓰려고 들렀던 카페 모습입니다.
※이번 주는 아내와 함께 제주도 여행을 가느라 주말에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매주 수요일 발행하는 브런치북을 대신해 오랜만에 일상의 글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