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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싫은 일하며 성과 내는 방법

긍정은 현실을 미화하는 수단이 아닌 현실 직시의 본질적 태도입니다.

by 추억바라기

“김 부장님, 이번 프로젝트는 차장님 파트에서 맡아주세요.”

5년 넘게 팀을 운영하다가 부서가 해체되고, 나는 새로운 팀의 파트장을 맡게 되었다. 오랫동안 해오던 업무가 아닌 낯선 분야였고, 이전 부서의 일까지 병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연한 과정이라 스스로를 다독여 보았지만, 적응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내려진 새로운 업무 분장은 불만의 씨앗이 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불만은 전배해 온 팀의 팀장과의 관계에서 더 커졌다. 그 팀장은 내가 입사할 때부터 날 경계하던 사람이었고, 내가 팀장을 맡고 있을 때도 늘 내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던 이였다. 이제는 그의 팀원으로 들어왔으니, 나를 예쁘게 볼 리 없다는 생각에 불편한 마음이 늘 들었다. 그런 사람이 굳이 나에게 다른 팀원이 꺼려하는 프로젝트를 맡긴다고 하니 심증만 있던 그의 감정이 확증으로 바뀌었다. 억울함과 불만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회의가 끝난 후에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회의실에서 내게 표정 없이 지시하던 팀장의 얼굴을 떠올리니 분노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자리로 돌아오자 내 안색을 살피는 파트원들의 눈길이 느껴졌다. 그중 한 동료가 조용히 날 불러내 걱정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파트장님, 무슨 일 있으세요?”

오랫동안 함께 해 온 동료라 마음을 터놓고 회의실에서 있었던 부당한 업무지시와 쌓인 내 감정을 말했다.
“아니, A 팀장 정말 너무한 것 같아요. 지금 맡고 있는 일도 벅찬데, 우리 파트에서 B 고객사를 맡으라잖아요. 그 악성 고객사를요. 내가 싫어도 너무 싫은가 봐요.”

동료는 안쓰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양반 너무했네요. 에고, 파트장님 많이 속상하시겠어요.”

그 대화 덕분에 마음을 조금 가라앉힐 수 있었다. '분노'로 뛰던 마음이 차분해지고 나니 일이 보이기 시작했다.


B 고객사는 회사 내에서 악명 높은 곳이었다. 신규 소프트웨어 버전이 나오면 무조건 현장 적용을 요구하고, 자체적으로 납품 제품을 테스트한 뒤 오류가 발견되면 집요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까다로운 곳이었다. 1년 6개월째 프로젝트가 마무리되지 못한 채 회사와 영업팀 모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게다가 담당 엔지니어의 갑작스러운 퇴사로 기술 지원 공백까지 생겼다. 그 자리를 메워야 했지만, 아무도 자원하지 않았고, 억지로 지정하기도 난감했다. 결국 파트장인 나 역시 누구에게 떠넘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단순했다. 싫어도 직접 맡아서 수행하기와 남들 싫어하는 일을 잘 마무리해서 회사에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로.


그렇게 시작한 B 고객사 담당 업무는 예상대로 힘들었다. 수많은 테스트와 버그 리포트, 품질·개발팀과의 협의, 심야 작업과 새벽 출동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 기술력은 크게 성장했다. 고객사에도 인정받았고, 결국 9개월 만에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회사는 큰 규모의 매출을 정리할 수 있었고, 부서는 악성 고객사에서 벗어났다.

물론 그 성과에도 불구하고 팀장의 시선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결국 나는 전배를 신청했고, 그 팀장의 적극적인 찬성 속에 다른 부서로 옮길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오히려 나에게는 다행스러운 결말로 이어졌다. 다만 안타까운 건, 내가 떠난 뒤 그 고객사의 유지보수는 후배에게 넘어갔고, 결국 그 후배마저 버티지 못하고 퇴사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이 일을 겪으며 깨달았다. 세상 일이란 마음먹은 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난 할 수 있다”는 주문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결과를 바꾸기도 한다는 점이다. 좋아서 하는 일은 실패하더라도 금세 회복할 수 있고, 능률도 높다. 싫어하는 일이라도 받아들이고 직면했을 때, 때로는 예상치 못한 성과와 성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긍정적인 마음가짐이란 '잘 될 거야'라는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어려움을 견디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내면의 자원과 같다. 그것은 실패와 좌절을 없앨 수는 없지만, 그런 문제로 회복하는 시간을 단축시키고, 더 단단한 자신으로 성장하게 만든다.


누군가는 주어진 환경을 바꿀 수 없어 무력감을 느끼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같은 환경 속에서도 배울 점을 찾고, 작은 성취를 쌓아가며 결국 새로운 길을 열어 나간다. 긍정적인 태도는 단순한 자기 위안이 아니라,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주고, 회복을 빠르게 한다. 작은 태도의 차이가 나를 지키고, 때로는 더 단단하게 성장시킨다.

물론, 아무리 긍정적으로 보려 해도 끝내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면 과감히 버릴 줄 아는 용기도 필요하다. 버림 또한 긍정의 또 다른 모습일 수 있다. 자신을 지키고, 더 나은 가능성을 위해 스스로 결단을 내리는 것, 그것은 회피가 아니라 성장의 한 과정이 된다. 긍정은 단지 현실을 미화하는 수단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꺾이지 않는 태도를 의미한다.


결국 나는 싫어하는 일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었고, 그 과정이 내 커리어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믿는다. 일을 대하는 태도가 결국 나를 성장시키는 힘이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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