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와 기대 사이에서 방황하는 수험생들에게 필요한 마음가짐
올해 수능이 끝난 뒤, 집 안 분위기는 여전히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수험생이 있는 가정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겠지만, 대학 합격자 발표가 이어지는 요즘에는 하루의 감정선이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친다. 딸아이의 입에서는 “아?”, “헉—”, “와아!” 같은 감탄사가 끊임없이 쏟아진다. 감탄사는 독립적으로 쓰여 감정을 드러내는 말이지만, 정작 그 말만으로 아이의 마음을 정확히 알기란 쉽지 않다. 수시 발표 일정이 계속되는 탓에 아이의 감정 기복이 커지고, 부모인 우리 역시 순간마다 마음을 졸이며 지내는 날이 반복되고 있다.
발표가 있는 날이면 아이의 눈치를 보느라 결과를 묻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며칠 전 좋지 않은 소식이 전해졌던 날에는 가족 모두가 괜히 숨소리를 죽이며 저녁 시간을 보냈다. 어른인 우리도 버거운 순간인데, 갓 성인이 되기 직전의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큰 무게로 다가올지 짐작하기 어렵다. 수능 이후의 이 시기는 단순히 ‘대학 입시’라는 절차적 과정이 아니라, 아이들이 처음으로 인생의 큰 선택을 맞닥뜨리고 그 결과를 스스로 견뎌야 하는 성장의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럴 때마다 떠오르는 말이 있다. 학창 시절 교실 벽에 걸려 있던 급훈, “후회는 앞서지 않는다.”
학창 시절에는 그저 지나칠 법한 문장이었지만, 나이가 들며 여러 선택과 결과를 겪다 보니 이 문장의 의미가 무겁게 다가왔다. 실수나 결과를 되돌릴 수 없기에, 후회는 늘 사건 이후에야 찾아온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늘 “결정할 때 신중하라”라고 조언해 왔지만, 사실 지금의 십 대들에게는 그 말이 크게 와닿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경험을 통해 배워야만 이해되는 것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뇌는 축복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는 망각이라는 기능을 갖고 있다. 깊이 파인 상처라면 모를까 대부분의 후회는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고, 그로부터 얻은 깨달음도 흐릿해진다. 그래서 비슷한 실수가 반복되고, 같은 선택을 또 후회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후회를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성장의 필연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후회가 새로운 목표를 만드는 동력이 되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한 번 더 도전할 용기를 주기도 한다. 때로는 후회가 사람을 단단하게 만드는 가장 현실적이고 강력한 멘토 역할을 하기도 한다.
만약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그 결과를 미리 볼 수 있다면 어떨까. 많은 이들이 ‘후회 없는 삶’을 위해 그 능력을 쓰고 싶어 할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미래를 본다는 능력조차 또 다른 후회의 씨앗이 될 가능성이 있다. 단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는 기회라면 더욱 그렇지 않을까. 어떤 선택을 검증할지 고르는 과정에서조차 다시 후회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결국 후회는 피할 수 없는 스스로의 몫이며, 그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하느냐가 우리의 성장을 결정한다.
올해 수능 응시자는 약 55만 명으로,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많은 인원이 시험장에 들어섰다. 시험을 마친 수험생들은 각자 마음속에 다양한 후회를 품었을 것이다. ‘조금 더 공부할 걸 그랬다’, ‘내신을 미리 챙길 걸’, ‘과목 선택을 바꿨다면 어땠을까’, ‘조금만 더 일찍 준비했어야 했다.’
그러나 다른 선택을 했다고 해서 완전히 다른 삶이 펼쳐졌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후회는 선택의 오류가 아니라 선택의 일부다. 지금 겪는 감정이 크고 무겁게 느껴지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오늘의 후회가 훗날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든든한 기준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전하고 싶은 말은 단순하다. 딸아이를 포함한 모든 수험생들에게, 지금의 감정은 결코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일희일비! 작은 기쁨과 작은 좌절에 흔들리지 말라는 말을 종종 듣지만 오히려 나는 작은 감정의 축적이 중요한 사람도 있다고 생각한다. 작은 기쁨은 큰 기쁨의 씨앗이 되고, 작은 좌절은 더 단단해지는 과정의 단초가 된다. 크든 작든 감정의 파동을 경험하는 과정 자체가 이미 성장의 일부다.
스무 살 언저리에 서 있는 수험생들은 이제 막 첫걸음을 내디뎠을 뿐이다. 한 발 늦게 걷는다고 해서 도착점에 늦게 이르는 것은 아니다. 후회하는 순간이 찾아오더라도, 그 후회 속에서 얻은 배움만은 잊지 않기를 바란다. 결국 후회는 삶을 가르치는 가장 인간적인 방식이며 그 경험이 모여 우리의 인생을 더욱 빛나게 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