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3일차
아직 걸은 지 이틀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면 온몸이 쑤시는 근육통에도 불구하고 걸을 준비가 되어있음을 느낀다. 배낭 없이 절뚝절뚝 좀비처럼 걷다가도 17kg짜리 배낭을 메면 오히려 걸음걸이가 안정된다. 짐을 다시 싸다 알베르게의 낮은 이층 침대 천장에 머리를 박았다. 오늘 하루 액땜한 셈 쳤다.
아침을 먹고 창문을 열어보니 아직은 깜깜한 바깥에 바로 앞 개울도 안 보일 정도로 안개가 뿌옇다. 이곳 산악지방의 안개를 보고 있자면 왜 서양 공포영화에서 숲속의 밤은 안개가 자욱한지를 알 수 있다. 오늘은 이 안개 속을 뚫고 걸어야 한다.
안 그래도 어두컴컴한데 안개까지 자욱하니 헤드랜턴과 손전등을 동원해야지만 겨우 걸을 수 있었다. 첫날부터 함께했던 135번 국도와 나란히 난 숲길을 따라 걷다 아스팔트를 가로질러 숲길을 통해 걸었다. 그리고 숲길의 끝에는 다시 135번 국도가 있다. 아스팔트로도 편히 걸어올 수 있는 길을 굳이 숲을 가로질러 오게 만드는 것은 단지 안전 때문은 아닐 것이다. 숲을 걸으며 사색과 명상의 시간을 가지라는 배려거나, 그래도 순례길에 올랐으니 생고생 한번쯤 해보라는 심술이거나.
다시 135번 국도와 나란히 걷다 노란 이정표를 따라 옆길로 접어들었다. 초록색과 노란색으로 각각 표시된 두 갈래 길이 나왔다. 어느 길로 가든 오답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선두였기에 선택을 해야만 했다. 잠시 고민하다 20센트짜리 동전을 던졌다. 앞면이면 왼쪽 길, 뒷면이면 오른쪽 길이다. 왼쪽에는 산책로가, 오른쪽에는 국도가 있다. 동전을 던지니 뒷면이 나왔다.
다시 국도로 올라섰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국도를 가로질러 다시 숲길로 들어서게 되었고, 숲길은 야트막하지만 경사가 심한 산으로 이어졌다. 작은 탄식이 들렸다. 약 30분간 경사를 타고 나니 진흙밭이 펼쳐졌다. 지난밤의 비로 인해 소똥과 진흙이 버무려져 어디를 밟든 발이 푹푹 들어갔다. 해는 떴지만 아직도 자욱한 안개 때문에 어디가 끝인지, 팜플로나에 도달하기 전에 과연 이 진흙밭의 끝이 있는지조차 불분명했다. 또 다른 30분을 진흙밭에서 미끄러지고 구르며 앞으로 나아가자 드디어 제대로 된 단단한 길이 나왔다. 잠시 동행들과 쉬었다. 모두들 힘든 길로 인도한 동전에 대해 단단히 짜증이 나있었다. 나 역시 하필이면 뒷면이 나온 동전을 땅바닥에 내팽개치고 싶었다. 하지만 대신 동전을 이정표 위에 가만히 올려놓았다. 하기 힘들었던 선택을 대신 해 준 값이었다.
사실 동전이 정해준 길 반대편에 어떤 길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까미노를 다시 걸을 일이 있지 않는 이상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보기 좋은 산책로가 목적지까지 쭉 이어졌을 수도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갈과 진흙이 가득했을 수도 있고, 첫날처럼 강바닥을 찍고 올라오는 험한 길이었을 수도 있다. 선택하지 않았던 길에 대한 상상은 현재 상황에 따라 변한다. 만일 동전이 정해준 길이 편한 산책로 혹은 국도였다면 일행들은 '위험할 뻔 했던 미지의 상황'에서 구해준 동전을 칭찬했을 것이다.
살면서 인생이 바뀔만한 선택이 종종 있었다. 미국에 살 때 테니스 코치는 비자를 연장하고 미국에 계속 남아 테니스를 칠 것을 권했다. 영화감독이 되겠다며 예고를 지망했던 적도 있다. 고등학생 이후에는 이과를 가느냐 문과를 가느냐, 재수를 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섰다. 그 이외에도 크고 작은 가지 않은 길들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제2의 정현이, 봉준호가, 스티브 잡스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마약에 찌들어 사는 유학생, 빚만 잔뜩 짊어진 실패한 영화감독 등등으로 살고 있었을 수도 있다. 오늘 동전이 정해준 반대편 길로 가지 않았다면 어떤 길을 걸었을지 모른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해서는 후회하는 것이 아니다.
동전이 정해준 길을 따라 걷다보니 어느덧 정오가 가까워가며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땅에서부터 걷히는 안개는 마치 구름으로 올라가는듯 했다. 저 멀리 오늘의 목적지인 팜플로나가 보였다. 유럽에 온 이래 파리 이후 제일 큰 도시이다. 팜플로나에서는 이틀 묵으며 재정비를 할 것이다. 어제 오늘의 동행들은 하루만 쉬고 떠난다고 한다. 까미노 위에서의 첫 이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