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4일 차
8시까지는 그 누구든 알베르게를 떠야 했기에 지난 이틀간 함께했던 S와 C를 떠나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등산배낭을 맸다. 배낭을 졌는데도 갈 곳이 없어 어색했다. 어젯밤 자욱한 안개 속 가로등을 조명삼아 카스티요 광장에 울려퍼지던 아코디언 소리가 머리를 스쳤다.
광장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광장에는 대문호 헤밍웨이가 즐겨 찾았던 카페 이루냐가 제법 큰 규모로 광장 한쪽 면을 차지하고 있다. 86년 동안 크게 바뀐 것이 없다 하니 그때도 꽤 큰 규모의 카페였을 것이다. 개점 시간은 8시였지만 8시가 되어서도 문을 열지 않는다. 한국이었다면 아메리카노 한 잔을 기다리는 손님들로 장사진을 이루었을 시간이다. 바욘과 마찬가지로 팜플로나 역시 새벽의 도시는 아니었다. 8시가 되었는데도 아직 광장은 고요하다.
낮을 뜻하는 Day와 밤을 뜻하는 Night는 원래 해가 떠있는 시간과 해가 진 이후의 시간을 가리킨다. 그리고 여러 유럽 언어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라틴어가 그 뿌리다. 해가 떠 있는 시간은 사람들이 활동하는 시간이고 해가 진 이후의 시간은 활동하지 않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특정 구간을 뜻하는 전치사 in은 day에 속한 시간들에, 특정 지점을 뜻하는 전치사 at은 night과 함께 쓰인다. 해가 떠있는 동안에는 사람들이 일을 하지만 밤에는 잠만 잘 뿐이라 그렇다. 반면 셰익스피어 소설에서 로미오가 줄리엣과 야간의 밀회를 한다든지 하는 로맨틱한 상황에서는 in the night와 같은 표현도 종종 쓰인다. 일종의 시적 허용인 셈이다. 역사가 밤에 이루어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불변의 진리다. 썸머타임 문화도 이와 맥을 같이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구대륙의 아침은 한국보다 늦다.
카페 앞에서 하릴없이 서성대는 나를 봤는지 10분쯤 지나니 종업원이 문을 열어주었다. 유럽에 와서 처음 보는 넓고 꽤나 화려한 카페였다. 이곳에서 헤밍웨이는 대작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집필했다. 광장 위로 뜨는 해를 보고 싶었지만 날이 흐려 보지 못했다.
카페 콘 레체 한 잔과 크루아상 하나를 시켰다. 론세스바예스를 떠나던 날 부르게츠에서 마셨던 카페 콘 레체와는 질적으로 달랐다. 헤밍웨이가 이곳을 찾은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맛있는 카페 콘 레체와 탁 트인 카페 안 원하는 자리에 앉아 뜨는 해를 관찰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세기의 대문호 헤밍웨이는 이곳에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나간 날들의 기억을 글로 옮기며 카페 콘 레체 한 잔, 에스프레소 한 잔, 크루아상 하나를 깔끔히 마쳤다. 고시 삼관왕이 쓰던 독서대를 쓴다고 성적이 급상승하지 않듯 글을 짜내는 것은 여전히 어려웠다. 헤밍웨이가 즐겨 찾던 카페에 앉아 글을 썼다는 감성과 사진 몇 장에 5.20 유로를 지불했다. 그 값어치에 비하면 싼 편이었다. 헤밍웨이가 훼손될까 두려워했다는 카페는 다행히도 여전히 그 아름다움과 한적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친구와의 약속이 취소됐다. 아쉽지만 이제 오랜만에 주어진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면 된다. 늦었지만 걸을 수 있을 만큼 까미노를 다시 걸어볼까도 싶었다. 하지만 이왕 쉬는 날에 굳이 내일 할 일을 오늘로 당겨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사실은 팜플로나를 하루 더 즐기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근처 사립 알베르게에 무거운 배낭을 풀고 다시 거리로 나섰다. 맛집으로 추천받은 근처 츄러스 가게에서 글을 한 편 더 쓸까 했다. 점심과 살짝 겹쳐 애매한 시간이지만 츄러스와 카페 콘 레체 한 잔이면 든든할 것 같았다.
영어가 안 통하는 츄러스 가게에서 단어를 띄엄띄엄 말해가며 츄러스와 카페 콘 레체를 시켰다. 갓 튀긴 츄러스는 달달쫀득했고 카페 콘 레체는 어김없이 맛있었다. 사실 카페 콘 레체는 한국에서 말하는 카페라떼다. 맛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처음 먹은 카페 콘 레체가 맥심 믹스에서 설탕만 뺀 맛이 나서 기대치가 매우 낮아졌을 뿐이다. 시중 오렌지 주스를 마시다 100% 착즙 오렌지 주스를 먹는다면 얼마나 맛있을까. 그 정도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글을 채 마치기 전에 씨에스타 시간에 걸려 카페를 떠야했다. 보통 2시쯤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곳은 일찍 문을 닫아 잠근다. 다시 광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아뿔싸. 광장에 거의 다 와서야 돈을 안 내고 온 것이 떠올랐다. 머나먼 스페인까지 와서 은팔찌를 찰 수 없다는 생각에 부랴부랴 뛰어 닫혀있는 가게 문을 두드리고, 아직 뒷정리를 하고 있던 주인에게 계산을 하고 나왔다. 한국의 카페 문화는 무조건 선불이지만, 스페인은 패스트푸드점이 아닌 이상 후불제이다. 때문에 종종 헷갈리곤 했다.
너무 걷기만 해서 뛰는 법을 잊었는지 뛰는 것이 어색했다. 다시 광장으로 돌아가니 익숙한 음악이 들렸다. 새내기 첫 학기에 들었던 교양 교수님이 참 좋아하셨던, 고려대 응원가 중 <지야의 함성>의 원곡인 러시아 민요 카츄사를 어제의 아코디언 할아버지가 연주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연주는 이미 끝나있었다. 1유로짜리 동전 하나를 바구니에 넣고 앵콜을 요청하니 흔쾌히 받아주었다. 바닥부터 지붕까지 낯선 이 도시에서 익숙한 음악을 들었다. 떠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잠깐 향수에 젖었다. 아코디언 아저씨의 레퍼토리가 한 바퀴 돌았을 때쯤 글을 마치고 잠깐 쉬러 다시 알베르게로 향했다.
팜플로나는 투우로 유명한 도시이다. 아닌게 아니라 조금의 휴식 후에 식료품을 사러 가다보니 큰 투우 경기장이 옆에 자리하고 있다. 이왕 온 김에 투우를 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겨울은 투우 시즌이 아니다. 걸어가며 그 크기를 가늠해보는 것으로 대리만족했다.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등장인물 중에는 투우사가 있다. 여자주인공은 이미 두 번 이혼을 하고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한 사람이다. 분명 마음에 상처가 많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을 다시 사로잡은 것은 한 명의 투우사였다. 과연 어떠한 정열이 그녀를 붙잡았는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언젠가는 스페인에 투우를 보러 꼭 다시 방문하고 말 것이다.
오늘 저녁으로 먹을 이베리코와 스페인식 쌀 조금과 내일의 일용할 양식, 사랑해 마지않게 된 €1.50짜리 맥주 한 병을 사들고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한국음식이 그리운 것이 아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하고 이베리코는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둬야 한다. 소금과 카레가루로 양념한 이베리코를 굽고 쌀로는 간단하게 빠에야를 만들었다. 어제도 비슷한 메뉴, 비슷한 양으로 먹었건만 왠지 오늘은 식탁이 넓어보이고 음식 양이 많아 보였다. 광활한 4인용 식탁에 홀로 앉아 입에 이베리코를 꾸역꾸역 쑤셔 넣었다.
나름 도시까지 왔는데 8시에 그대로 잠에 들기는 아쉬워서 밖으로 다시 나왔다. 지금껏 묵었던 다른 도시와는 달리 바깥은 아주 시끄러웠다. 노랫소리가 들리고 웅성대는 소리가 요란했다. 안에서 지갑을 챙겨들고 다시 밖으로 나섰다.
해가 진 동안에는 잠을 자는 시간이라지만 스페인은 다른가보다. 아니면 씨에스타에다 밤의 시간을 조금 꿔준 덕에 한밤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흡사 대학 축제를 보는 착각이 들었다. 신기한 것은 길가를 따라 늘어선 주점들에는 사람들이 반 정도밖에 차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한국 번화가의 밤거리는 흡연자들과 과음한 자들의 것이다. 팜플로나의 밤거리는 흡연자들과 맥주를 마시는 자들의 것이었다. 너도 나도 맥주를 손에 들고 바에서 파는 안주를 길가나 야외 테이블에 깔아둔 채로 제각기 즐기고 있었다. 문화 충격이라면 문화 충격이다. 나도 덩달아 근처 바에서 맥주 한 병을 들고 야외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유럽에 온 후 처음으로 맞은 축제의 밤이지만 내일은 다시 본분으로, 순례자로 돌아가야 한다. 공립 알베르게에서는 이틀 묵을 수 없기에 오늘은 사립 알베르게에 짐을 풀었다. 이 알베르게에는 까미노 순례객들이 아닌 일반 여행자가 셋 있을 뿐이다. 아마 공립 알베르게에는 미지의 순례자들이 내일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도 내일은 그들과 함께 다시 걸어야 한다. 몸은 어느 정도 풀렸고 발목도 슬슬 괜찮아졌다. 오늘 팜플로나의 태양과 내일의 태양은 분명 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