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이번 주까지만 일하게 되었어요. 제 요가원을 시작하게 되서 그 준비를 더 해야할 것 같아서요. 아쉽네요."
10년 넘게 다닌 요가원, 그리고 나와 4년을 함께한 선생님, 매주 화/목 아침 클래스 담당이었다. 그녀가 미리 알려주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수/금 담당 선생님 역시 그만둔 것은 올해였고, 작별인사조차 하지 못해 아쉬웠던 터였기에.
수/금 선생님이 떠나고, 새로운 선생님이 오셨지만 나는 적응하지 못하는 수강생처럼 그 시간을 더디게 흘려보냈다. 결국 화/목 클래스만 기다렸고, 그 시간만큼은 빠지지않았다. 그런데 이 선생님도 가시는구나...
부랴부랴 선물을 준비하고 카드에 마음을 담았다. 그리고 목요일 아침 그녀에게 내 마음을 전달했다. 그동안 고마웠다고. 선물을 드리는데 눈물이 울컥해서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다. 마지막 요가를 열심히 하고, 출근시간 때문에 서둘러 나오는데 그녀는 양팔을 벌려 가벼운 포옹으로 인사했다. 그 순간 또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 해서 도망치듯 나왔다.
출근길에 동기에게 말했다.
"요가 선생님이 그만 둔다고 하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 그동안 몇마디 나눈 적도 없고 요가만 했는데."
"언니 원래 눈물 많은 스타일이야. 옛날에도 많이 울었어. 지금도 똑같아"
화/목 클래스는 수강생이 많았다. 같은 아침 시간임에도 인기는 대단했다. 그녀가 다른 선생님보다 좋았던 이유를 생각해보면, 늘 웃는 얼굴에 깔끔한 설명과 한명씩 자세를 잡아주는 그녀만의 코칭이 특징이었다. 요가는 일대일 수업이 아니다보니 선생님 동작을 보고 따라하게 되는데, 같은 자세일 수 없다. 그러면 그녀는 클래스를 돌아다니면서 한 사람씩 코칭해주고 자세를 잡아주었다.
다른 선생님들은 자신의 동작을 보여주며 설명했지만, 그녀처럼 한명씩 자세 교정을 해주는 이는 드물었다. 또한 아침 7시는 업된 목소리를 유지하기도 힘든 타임이었고, 그녀처럼 화장을 하거나 꾸미고 오는 선생님은 없었다. 그런데 그녀는 아침 7시 수업이 아닌 오후 7시 수업이라고 해도 믿을만큼, 기운찬 목소리로 프로페셔널하게 수강생을 맞이했다. 다른 선생님들에 비해 나이는 분명 어려보임에도, 요가선생님으로서 그녀는 그 누구보다 프로였다.
'이 선생님이 아니면 안된다.' 라는 생각, 10년 요가를 하던 중 처음으로 든 생각이다.
다들 대체불가능한 직장인이란 없고, 회사는 시스템으로 돌아간다고 자조섞인 목소리로 말하곤 한다. 그러나 '누가' 하느냐에 따라 퍼포먼스는 다르다. 단순히 무언가 '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듯, 얼마나 '잘' 하는지에 따라 대체불가능은 존재해왔다. 마치 내가 선생님에 따라 요가 수업 참여 여부를 결정하고, 도래하는 회원권 만기를 보며 다른 요가원을 찾아나서는 것만 보아도.
세상이 아무리 디지털화된다 하더라도, 이러한 대체불가능은 아날로그 영역이다. 내가 들이는 시간과 노력은 단축할 수 없으며, 머리와 몸으로 애쓰는 여정을 통과해야만 한다. 그리고 내가 어떤 가치를 만들어낸다한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체감해야 한다. 이 과정에는 치트키가 없다.
요가 선생님이 남기고 간 흔적.
꾸준한 시간의 축적, 프로페셔널한 태도, 그리고 자신만의 확고한 코칭 방식.
은은하게 꾸준히 한 자리에서 서두르지 않고, 기본기는 튼튼하게.
남들과 다르게, 자신만의 가치를 갖는 일하는 사람으로서, 그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면서 그녀가 보여준 것들.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그녀가 내게 알려준 것은 단지 요가만이 아니었음을.
자기만의 뚜렷한 가치를 갖지 못하면 상품이든 사람이든 코모디티가 되니까요. 일하는 사람이 코모디티가 된다는 건 퍼포먼스 면에서 다른 사람과 구별되지 않으니 이왕이면 연봉 낮은 사람으로 대체되는 대상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일을 꼭 맡아야 하는' 혹은 '우리 회사에 꼭 필요한' 사람이 아니란 뜻이기도 하고요. 무서운 얘기입니다. - 최인아,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 해냄,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