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로운 자연의 선물에 대해 감사드리는 추석 명절의 하루 전날, 어머니가 이 세상 소풍을 끝내고 오셨던 곳으로 돌아가셨다. 돌아가셨다 는 말. 무심코 써왔는데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return -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다.' '어디론가 가셨다' 가 아니라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셨다.'는 말.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을 떠올리며 애써 울음을 살킬 수 있었다.
그냥 한 줌의 재로 변화하신 거다. 화장장에서 받아 든 분골에서 온기가 한참이나 떠나지 않았다.
누군가가 임종을 지켰냐고 물었다. 뭐라 답해야 할지 정말 알 수 없었다. 임종의 사전적 정의는 "부모의 죽음 직전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일 텐데, 지난 몇 달간 어머니는 매 순간 빠른 속도로 소멸되어가고 계셨다.
필립 로스의 Everyman이라는 책의 마지막 단락을 잠시 생각해 본다.
'다시 충만해지기를 갈망하며 밑으로 내려갔지만, 결국 다시 깨어나지 못했다. 심장마비. 그는 이제 없었다. 있음에서 풀려나,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처음부터 두려워하던 바로 그대로.'
그렇다 어머니는 이제 없었고, 있음에서 풀려나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으로 들어가고 만 것이다. 22년 1월 가족과의 즐거운 만찬을 준비하던 결혼기념일에 날아온 면도칼 같은 섬뜩한 단어들.
"어머니. 담낭암 4기. 항암 치료를 선택하심. 하지만 가망이 있어 보이지는 않음"
직장을 다니는 자식들이 돌아가며 보살펴도 요양병원의 전문성을 넘어설 수가 없지만, 그곳은 한번 들어가면 죽음으로 향하는 불가역적인 협궤열차. 다시는 문밖을 걸어나올 수 없는 편도 탑승권 (one-way ticket)과도 같아보였다.
다만 이제 와서 후회되는 것은 죽음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병원이 아닌 곳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과 의미 있는 교류를 찐하게 할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삶에 대한 미련 때문에 쉽지 않은 판단이겠지만 요양병원 침대에서 외롭고 쓸쓸하게 슬픔과 맞서 싸우는 시간은 최대한 뒤로 늦추고 삶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그랬다. 가족을 잃은 슬픔이 한 달은 심한 통증으로 남아있을 거라고. 이제 열흘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