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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go Feb 07. 2021

피자 배달원의 눈빛

잘못 배달된 피자 소동

일요일 오후. 밥하기도 귀챦고.... 피자 주문하기 좋은 날이다.


순번에 따라 저녁식사를 준비해야 딸아이가 친구 만나러 나갔다가 귀가가 늦어지자 피자를 주문했다. 자기가 7시 20분까지 올 수 있으니 그 시간에 맞춰 피자를 배달시키겠다고 했다. 나는 무슨 피자가 배달되는지 알 수 없는 상황.


그런데 피자가 딸 보다 훨씬 먼저 배달이 되었다. 띵똥 소리에 현관문을 여니 바닥에 콜라가 담긴 비닐봉지가 놓여 있었고 배달원은 문 너머로 손만 불쑥 나와 피자 박스를 건네주고는 종달새처럼 휘리릭 사라졌다.


'많이 바쁜 모양이네' 하면서  피자 박스를 식탁에 옮겨놓고 개봉을 한 순간, 아내와 나는 아연실색을 하고 말았다. 나는 페페로니 피자를 좋아하고 아내는 포테이토 피자를 좋아하는 사실을 딸이 알고 있으련만 박스 안에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는 놈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흑미 빵에 소시지가 잔뜩 올려진 핫도그 피자가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마도 이 회사의 피자 중 가장 먹고 싶지 않은 것을 고르라면 바로 이것을 골랐을 것 같은데, 이런 제길...


딸아이 앞에서는 찍도 못하면서 아이가 없는 자리에서 우리 부부는 딸아이 험담을 늘어놓는 편인데... 바로 좋은 사냥감이 나타난 것이다. "아니, 왜 이런 피자를 시켰지? 누가 이런 거를 좋아한다고....", "우리 식성을 아직도 모르는.... 어쩌고 저쩌고", "지난번에는 말이야....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피자를 한 입씩 베어 물고 "역시 맛이 이상해, 이걸 무슨 생각으로 시켰지?" 라며 험담을 늘어놓고 있는데, 다시 벨소리가 났다. 문을 열어보니 아까 팔꿈치만 보았던 피자 배달원이 이번에는 정면으로 모습을 나타내며 서있었다.


"피자가 잘못 배달됐는데, 혹시 드셨나요?"


"아~ 이런 어쩌죠? 한 조각씩 베어 물었는데요"


배달원은 "죄송해요. 피자를 잘 못 배달했어요. 이걸 드세요." 하며 피자와 스파게티를 내밀었다.


"그럼 같이 배달된 스파게티와 콘치즈라도 가져가시고요. 한 조각 먹은 피자는 어떡하죠?"라고 물었더니


"할 수 없죠. 스파게티도 피자도 모두 제가 가져가 봐야 폐기 처분해야 돼요."


"그럼 본인이 가게에 물어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라고 물었더니,


"할 수 없죠, 제가 배달을 잘못했으니"


"잠시만요, 그럼 여기.... 하며 황급히 지갑을 찾아 이만 원 꺼내 현관문을 향해 달려가니 배달원은 이번에도 역시 연기 처럼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비록 배달원이 실수를 한 것이지만, 핫도그 피자를 배달받지 못한 집에서 왜 배달이 늦냐는 항의 전화를 받을 것이고, 가게 사장에게는 실수에 대해 꾸지람을 들게 될 터이고 또 자기 돈으로 배상을 하게 될 것을 생각하니 피자를 편히 먹을 수 없었다.


더 빨리 단호하게 배달원을 기다리라고 말하지 못한 나의 순발력이 아쉬웠다.


배달원 청년의 선한 눈빛이 아직 잊히질 않는다. 그리고 딸아이를 믿지못하고 마냥 딸아이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은 나와 아내의 경솔함에 얼굴이 붉어진다. 붉은 피자 토핑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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