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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go Mar 17. 2021

'Chicken or Beef?'

계속 반복되는...Everyday 기내식

막연하게 비행기 타는 것을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다. 비행기 탑승이 주는 묘한 설렘. 낯선 곳으로 날아간다는 불확실성이 주는 가슴 두근거림. 


까까머리 중학생 때 읽었던 소설 '오멘'의 첫 페이지에서 읽었던 글귀가 생각나면서 야릇한 느낌을 만끽하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에 인류를 멸망에 이르게하는 엄청난 지진이 닥쳐도 지금 비행기에 타고 있는 이 순간만큼은 생명 연장이 가능하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그리고 두가지 옵션 중 반드시 선택해야 했던 '기내식'. 가장 많이 듣던 말은 'Chicken or Beef?'인 듯하다. 중학생 정도면 이해할 수 있는 이 짧은 영어 질문을 던지는 외국인 스튜어디스를 당황하지 않게 하려고 나는 또 얼마나 당황했었는지 지금도 아찔하다. 


아침마다 와이프가 챙겨주는, 사실은 전날 밤에 지정해준 냉동도시락을 챙겨 오면 영락없이 그날 점심은 그것을 먹어야 한다. 전자레인지에 1분 30초 들어갔다 나온 따듯한 도시락의 비닐을 조심스레 벗기고 바라보면 마치 비행기 기내식을 보는 듯하다. 4층 건물의 왼편으로 보이는 지나가는 자동차 소음은 비행기 엔진 소리와 같고, 노트북으로 보는 유튜브 스포츠 방송(주로 EPL 하이라이트)은 비행기 앞좌석에 붙어있는 엔터테인먼트 패널과 같다. 


'그래, 어차피 인생은 어딘가로 여행하는 것이고, 나는 지금 여행 중인 거야~' 


다른 하나가 있다면 식사 후 잠시 산책을 할 수 있다는 것과 다시 회사로 돌아오면 엔터테인먼트 화면을 끄고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려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목적지에 당도하려면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비행기 여행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가고 있는 곳은 어디인지 문득 아찔해진다. 


수도승 같이 조용히 먹는 기내식... 좀 지친다. 이젠 육지에 랜딩하고 싶다. 식당에서 왁자지껄 떠들면서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그렇게 밥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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