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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ronde Apr 05. 2022

제갈량의 북벌 (7) - 장합과 만총

제갈량의 4차 북벌과 전간기

장안성 전경


4차 북벌의 실패



  촉나라에서도 문제는 마찬가지였다. 가장 큰 문제는 장기간 전쟁으로 인한 군량 소모였다. 수비하는 입장보다 공격하는 입장에서 그리고 강대국보다 약소국 측에서 군량 및 병력 편제 계산이 더 정교하게 맞아떨어져야 한다. 더 많은 리스크를 안고 있던 건 촉나라였다. 사마의는 전쟁을 하지 않으면 100% 위나라의 승리로 끝날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위나라 병사들의 불만이 터지기 시작할 즈음 촉나라 내부에서 드디어 균열이 발생한 것이다. 사마의 역시 틀리지 않았다.


  제갈량이 북벌을 떠나 있을 동안 후방 지원 담당은 촉군의 2인자 이엄이었다. 이엄은 계속 북방으로 물자를 보내주고 있었는데 장마가 겹치며 제대로 된 보급을 해주지 못하게 된다. 결국 이엄은 제갈량이 요청한 군량을 채우지 못한다. 이엄은 군량 수송을 제때 맞추지 못한 것에 대한 질책을 받을까 두려워 한 가지 계략을 세운다. 촉나라 조정에는 제갈량이 위나라와 내통하여 퇴각을 하고 있다고 상소를 올리고, 제갈량에게는 지금 군량이 부족해 더 이상 전쟁을 지속하기 어렵다고 한 것이다. 이른바 이중 상소를 올린 것이다.

  제갈량 입장에서는 너무 황당했다. 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후방에서 군량을 줄 수 없다고 말했으니 제갈량은 후퇴하는 게 맞았다. 기산에서의 승기가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의 퇴각이라 더욱 아쉬웠다. 이엄의 상소 때문에 제갈량은 누명을 쓰게 된다.

  그렇다고 바로 돌아서 촉으로 갈 수는 없었다. 위나라에서 눈치채지 못하도록 아주 천천히 후퇴를 한다. 그러나 사마의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촉나라에서 예상치 못한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자 분명 촉 내부의 문제가 발생했다는 걸 직감한다.



장합의 죽음


장합의 사망



  사마의는 곧바로 추격 부대를 보낸다. 하지만 사마의는 이번에도 많은 손실을 내고 싶지 않았다. 사마의는 장합에게 소수의 군대를 보내 기산으로 향하게 한다. 원희지 한표전에 따르면 장합은 본래 퇴각하는 촉나라 군대를 추격하고 싶지 않았다. 사마의는 장합이 퇴각을 주저하자 전에는 싸우자 주장을 했으면서 돌아서는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결국 상관의 명령대로 장합은 기산으로 출격한다.

  장합의 퇴각 부대는 기산 정상에 오를 때까지 아무런 저항 없이 올라간다. 장합은 촉 군이 정말 후퇴했다는 사실을 보고 안심한다.


 하지만 이날은 위나라 용장 장합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리고 장합이 도착한 기산 정상에는 다음과 같은 비석이 있었다고 한다.


오늘 장합 이 나무 아래에서 잠들다


  장합이 비석을 보는 순간 기산 정상에 숨어 있던 촉군 병사들이 장합을 향해 화살을 쐈다. 소수의 위나라 병사들은 기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기산 학과가 있다면 진작에 박사학위를 땄을 제갈량은 적재적소에 병력을 배치해놓았다. 비석에 새겨진 대로 장합은 그날 촉나라 병사들의 화살을 맞고 쓰러졌다. 대촉전 에이스 장합은 그렇게 쓰러졌다.


  4차 북벌로 촉나라는 위나라 상대로 대승을 거둔다. 전투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다만, 전략적으로 얻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제갈량은 촉으로 돌아왔다. 이엄의 보고에 따르면 촉에는 분명 군량이 부족해야 했다. 하지만 막상 촉에 돌아와 보니 군량이 충분했다. 이엄이 제갈량을 보자마자 도대체 승상께서는 왜 돌아왔냐고 말한다. 제갈량 입장에선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게 된다. 이엄의 거짓 보고로 유리한 전황을 포기하고 성도로 돌아온 것이다. 결국 제갈량은 이번 일에 대한 진상을 샅샅이 조사한다. 확인 후 이 모든 사단이 이엄의 계략이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제갈량은 곧바로 유선에게 상소를 올려 이엄의 처벌을 주장했다. 기록된 제갈량의 상소문을 살펴보면 제갈량이 이엄에 대해 얼마나 그에 대해 분노했는지 보여준다.


   4번째 북벌에서도 큰 성과를 올리지 못한 제갈량은 다시 성도로 들어와 촉나라 재정비에 몰두한다.



이엄 (  출처 :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


3년간의 전간기


 

  제갈량의 네 번째 북벌은 이엄의 실책으로 허무하게 끝났다. 치밀하고 신중한 성격의 제갈량은 다시 한번 전쟁을 준비한다. 다행스러운 점은 전투에서는 이겨 병력 손실은 크지 않았다. 중요한 건 보급선 유지 확보가 전장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 판단한 제갈량은 3년간 군량은 모으는 데 집중한다. 더불어 목우와 유마를 대거 생산해 산악 지형에서도 운영하기 좋은 군량 수송 도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전쟁은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지만 과학과 문명의 발전을 가져오기도 한다.


  전간기 동안 위나라는 조용한 날이 없었다. 4차 북벌이 끝난 이듬해인 232년, 선비족 수령 가비능이 군대를 이끌고 남하한다. 본래 북방의 수비를 맡은 지휘관은 전예였다. 전예는 과거 공손찬 수하 출신으로 조운, 유비와도 친밀한 관계였다. 북방에서의 지휘 경력을 인정받아 이민족 방어 스페셜리스트로 성장했다. 전예는 북방 이민족들이 서로 사이가 안 좋다는 점을 이용하여 이간책을 펼쳐 싸우게 했다. ‘이이제이’라는 사자성어의 표본과 같이 행동했다.

  전예가 실제로 상대한 주요 세력이 선비 수령 가비능과 오환왕 골진이었다. 가비능의 경우 촉과의 관계가 있어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그때마다 다른 이민족을 활용하여 방어했다. 골진의 경우 몰래 자객을 보내 살해했다.


  그랬던 전예가 갑자기 중원의 여남 태수로 부임한다. 그리고 새로 유주자사에 왕웅이 부임한다. 가비능은 전예가 물러갔다는 소식을 듣고 위나라를 공략한다. 제갈량은 북벌 준비하는데 여념이 없었기에 가비능 단독으로 출진했다. 가비능은 오환족 수령은 보도근과 함께 연합한다.

  왕웅은 진랑을 보내 이들을 막게 한다. 더불어 보도근과 가비능의 사이를 틀어지게 하는 이간책을 실시한다. 진랑은 보도근의 군대를 막아내는 데 성공하고, 동시에 가비능에게 거짓 정보를 제공한다. 화가 난 가비능은 보도근을 살해하게 된다. 힘을 잃은 오환-선비족은 위나라한테 크게 패한다. 이이제이의 정석이었다. 결국 가비능의 반란을 실패로 끝나게 된다.


 하지만 가비능의 반란보다 더 큰 위협이 위나라에게 있었다.


선비족 생활 상 ( 출처 : 위키백과 )



공손연의 등장



  4-5차 북벌 전간기에 발생한 가장 큰 사건은 공손연의 1차 반란이었다. 삼국시대라고 해서 중국 전체가 딱 3개의 나라로 나눠진 것은 아니다. 삼국 이외에도 군소 세력들이 많이 분포되어 있었다. 요동에 위치한 공손씨 세력 역시 군소 세력 중 하나였다.

  고구려와도 연관이 깊은 이 지역은 평소 위나라에 협조적이었다. 공손도와 공손강의 경우 조조가 원소와 대결할 때 조조의 편을 들었기에 위나라 입장에서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공손도의 손자이자 공손강의 아들은 공손연이 지도자로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조예는 그가 즉위한다는 소식을 듣고 회유책의 일환으로 그에게 거기 장군을 하사한다.


  그리고 232년 공손연이 움직인다. 오나라 황제 손권은 공손연과의 연합을 통해 위를 압박하고자 한다. 요동에서 공손연이 뒤를 계속 견제하는 사이 중원으로 진출하는 것이 오나라의 목표였다.


  하지만 오나라에게는 넘어야 할 큰 산이 하나가 있었다. 대촉방면 수비 에이스가 장합이었다면, 대오방면은 만총이 있었다. 예주자사 만총은 조휴 사망 이후 혼란스럽던 동부 전선을 잘 수습했다. 손권은 부하 손포를 거짓으로 투항시켜 합비성을 공격하려 했다. 왕릉이 이에 넘어가 손포를 받아들이려 하자 만총은 곧바로 이를 간파한다.

  오나라 황제 손권은 만총에게 막힌 전선을 돌파하기 위해 생각한 계책이 바로 공손연과의 연계였다. 겉보기에 공손연과의 동맹은 나쁘지 않아 보였다. 제갈량이 당장 전쟁 준비를 위해 몰두하고 있으니 새로운 카드가 필요했다. 공손연의 세력이 적지도 않으니 그를 활용한다면 충분히 대규모 병력을 운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공손연은 컨트롤이 불가능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요동과 성산 위치


  겉과 속이 다른 인물 공손연. 그는 과거 숙부를 내쫓고 왕위에 오를 정도로 냉혈 하면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겉보기에 괜찮아 보이는 그와의 연계를 반대하는 오나라 모사들은 없었다. 하지만 오나라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노년의 모사 우번 만큼은 그와의 동맹을 불안해했다. 평소 반대하기를 좋아하는 우번이라 이번에도 또 사람들이 그러려니 했다. 우번은 평소 다른 모사에 대한 험담도 서슴지 않고 한 인물이다. 결국 그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은 와중에 공손연과의 동맹을 반대를 빌미로 손권의 미움을 사 교지로 유배를 떠난다. 그리고 공손연에게 주하, 장미 등 대규모 사신을 보내 왕의 칭호를 하사하는 조건으로 동맹을 제안한다.

  공손연은 왕의 칭호 따위에 홀라당 넘어갈 인물이 절대 아니었다. 공손연이 판단하기에 아직 요동의 군대가 위를 공략하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오나라의 대규모 사신단이 도착했지만 공손연은 금품만 쏙 가져가고 사신단을 공격한다. 당황한 주하를 비롯한 오의 사신단은 도망치기 시작했다. 간신히 배를 탄 오나라 사신단은 다시 오나라 수도 건업으로 돌아간다. 지도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오나라에서 요동까지는 상당한 거리다.


  그리고 위의 전예는 이 상황을 예견하고 있었다.


만총 ( 출처 :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중원으로 내려온 전예는 손권이 공손연과 연맹을 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에 위의 황제 조예는 전예를 청주(현 산둥반도)로 보내 둘 간의 연계를 방해하고 오나라 수군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황제의 명을 받은 전예는 청주에 도착했다. 하지만 태평하게 놀고 있었다. 이른 본 청주자사 정희는 하루빨리 황제의 명을 받들어 오나라를 공격하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예는 그의 말을 전혀 듣지 않고 놀았다.

  그 사이 오나라로 귀국 중이었던 사신단의 함대는 갑작스럽게 풍랑을 맞이한다. 오나라 사신단 함대 대부분은 폭풍우를 이기지 못하고 좌초된다. 주하의 본대만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급하게 청주 방향으로 틀어 정박한다. 위나라 지역이라는 건 알았지만 이대로 가면 죽는 건 뻔했다. 그리고 그들이 정박한 위치가 바로 성산 근방이었다.

  전예는 너무나도 손쉽게 오나라 사신단을 포획했다. 결국 주하를 비롯한 오나라 사신 본대는 위나라에 포로로 압송된다. 날씨마저 예측한 전예의 완벽한 승리였다.


  공손연과의 연계에 실패한 손권은 오나라 황제가 일개 군소 세력 지도자에게 농락당했다는 사실을 듣고 분개한다. 실패를 인정하지 못한 손권은 군대를 이끌고 다시 합비를 공략한다. 공손연과 연계했어도 성공할 확률이 낮은 합비 공략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결국 만총에게 패배하며 233년의 공격은 실패로 끝난다.

  


  그리고 다음 해인 234년 드디어 제갈량이 3년간의 침묵을 깨고 전장에 돌아온다.





P.S.

최대한 정사 삼국지를 기반해 작성했으나 서기 200년대의 자료가 희박해 작가의 해석과 '삼국지연의'의 스토리를 포함되었습니다.

당대 인물들에 대한 이미지 자료가 희박하여 '코에이(KOEI)'사에서 개발한 '게임 삼국지' 시리즈의 이미지를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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