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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nce Aug 08. 2015

나를 데려가 주세요

맑은 눈을 가진 아이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있었던 일이다. 일정을 마치고 호텔에서 쉬다가 근처 맥주집에서 술을 마시는 일행과 합류했다. 처음엔 몰랐는데 함께 있던 사람들이 가게 안에 고양이가 있다고 했다. 둘러보니 기둥과 천장이 있는 가건물이라 길거리 동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구조였다.

그때 이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너무도 맑은 눈.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나를 데려가 주세요', '데려가 돌봐 주세요' 하고 텔레파시를 보내는 듯하다.


이 아이는 동남아시아에 사는 고양이들이 대체로 그렇듯 얼굴은 갸름하고 몸이 매우 작으며 가냘프다. 우리나라 길냥이들은 사람 소리만 들려도 도망가기 바쁜데 내 옆에 앉아 나를 빤히 바라보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고맙기도 하고 뭔가 애틋한 생각이 든다.



머리를 쓰다듬어도 그대로 앉아있다. 정수리에 상처를 입은 흔적이 있는데 만져도 반응이 없다.



고양이를 계속 보고 있으니 함께 온 사람들이 그만하고 같이 술이나 먹자고 한다. 먹고 있던 생선을 조금 주고 얘기를 계속했다. 사료를 따로 챙겨 오지 않은 것이 후회됐다.



잘 먹고 있는지 궁금해져서 테이블 아래를 봤다. 녀석의 눈물이 흐른다. 길거리 생활이 얼마나 고달플까.



미얀마에는 들개와 길냥이들이 많은데 미얀마 사람들은 동물이 근처에 있다고 쫓아내거나 특별히 신경을 쓰지는 않는  듯했다. 그러나 사람의 기대 수명이 65세가 안 되고 의료시설이 낙후된 나라에서 동물이 큰 상처를 입거나 병에 걸리면 어떻게 될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이 아이가 내 무릎 위로 올라온다.

고양이가 사람에 대한 신뢰를 표현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이고 자주 가는 고양이 카페에서 가끔 그러는 녀석들은 봤지만 길냥이가, 그것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고양이의 이런 행동은 처음 경험했다. 아, 이 아이는 한 끼 식사가 아니라 자신을 돌봐 줄 누군가를 원하는구나.



얼굴이 아닌 곳에 초점에 맞았지만 그 덕에 더 귀여운 사진이 나왔다.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 뭘 하고 있냐며 다시 사람들의 성화가 시작됐다. 녀석을 무릎에서 내려놓으려 하니 발톱 하나가 옷에 걸렸다. 바닥에 앉은 녀석의 표정이 좋지 않다. 원망스러운 눈빛.



술자리가 끝나고 호텔로 돌아가려니 녀석이 눈에 밟힌다. 우리나라에 데려갈 순 없겠지. 일단 검역 문제가 있고 집에서 키울 여건도 안 된다.

"미안. 같이 가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어. 그래도 난 네가 쭉 건강했으면 좋겠어."



실망한 녀석은 돌아앉는다. 그리곤 귀를 쫑긋 세우고 소리를 듣거나 힐끔 이 쪽을 보곤 한다.




우리나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사진을 정리하다가 다시 이 아이를 만났다.

우리가 또 만날 수 있을까. 꼭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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