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위해 오롯이 살아가는 방법
오래전에 게임 잡지에 게임 공략 기사를 자주 썼다. 그런 잡지나 공략본이 유행하던 당시, 일반인들이 접할 수 있는 인터넷이라 하면 제한적인 웹서핑과 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 등의 온라인 서비스 정도가 전부였다. 그래서 게임을 하다가 막히면 관련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요즘처럼 다음에 가야 할 장소나 할 일을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한마디로 하기 쉬운 게임이 많지 않았고 제대로 한글화가 되지 않은(왈도체 참고)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그런 글을 쓰면서 은근히 돈을 벌었다는 사실이 놀랍지만 그땐 게임 공략 기사가 잡지에 실리거나 아예 별책 부록으로 공략본을 주는 경우가 흔해 일이 쉬이 끊이지 않았다.
이렇게 게임 공략이나 리뷰를 쓸 일이 많았고 원래 게임을 좋아한 탓에 국내에 정식 발매가 되지 않은 최신 게임을 원 없이 할 수 있었고 지금도 게임을 종종 즐기고 있지만 정말 혁신적이거나 특이한 게임(다위니아 등)을 제외하면 이제 솔직히 다 그놈이 그놈 같다. 결국 게임 기획자와 디자이너가 만든 세계 속에서 그들의 의도대로 진행해야 엔딩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게임의 궁극적 본질은 청기 백기 게임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현실에도 공략본은 존재한다. 자기계발서가 그렇다. 부끄럽지만 내 책꽂이에도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의 성공담이 적힌 책들이 몇 권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책 10권 중 그나마 내용이 괜찮은 1~2권을 제외하면 전부 나무 펄프와 사람들이 책을 사기 위해 쓴 돈, 그 책을 읽기 위해 사용된 시간이 아깝다.
자기계발서에도 종류가 많은데, 나는 자꾸 뭔가를 열심히 해서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발전하고 성공할 수 있다는 내용의 책을 경멸한다. 그 가운데 청춘 어쩌고 하는 책들, 그 중에서도 젊은이들에게 이 불공평한 사회에 적응하라고 강요하는 것들이 제일 혐오스럽다.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대다수 기득권에 논리에 기대서 무조건 노력해서 그들의 기준에 맞춰야 성공한다는 내용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집안 배경이나 돈, 빽이 없다면 일단 가리지 말고 노오오오력부터 하라는 소리를 뻔뻔스럽게 해 댄다. 자꾸 뭔가에 미치라고, 죽을 때까지 뭘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정작 그런 책들의 저자들을 보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거나 하도 이 세상에 당하고 고생을 해서 그런지 갑자기 묘한 깨달음을 얻고 검증되지 않는 이야기를 뱉어내는 인물들이 많다. 아니면 '출간=단순한 돈벌이+유명세 몰이'의 수단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보인다. 그런 책들을 한 발자국 떨어져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가 찬다. 저런 책들을 팔아 돈을 벌고 유명해지다니. 요지경 세상이다.
게임 공략이야 그대로 따라 하면 게임의 엔딩이라도 볼 수 있게 해 주지만 자기계발서는 그렇지 않다. (참고로 지식 노동자가 알아야 할 지혜를 알려주는 등 좋은 내용을 담은 책들도 있다. 이런 책들을 흔해 빠진 자기계발서와 혼동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내가 받은 초중고 교육 중 상당한 부분에 세상이 참 평등한 곳이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논리가 깔려 있던 기억이 있는데, 살아보니 세상은 그와 달리 매우 불공평하다. 학교를 졸업하고 10년 넘게 사회 생활을 하면서 그런 현실을 정말 뼈저리게 느꼈다.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이에게, 즐기는 이는 운 좋은 이에게, 운 좋은 이는 부모 잘 만난 사람에게 진다. 한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노력보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능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일본의 한 코미디언은 자신의 저서를 통해 "재능이 없는 사람은 노력하지 말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노력만 한다고 답이 나오는 세상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사실 나는 성공보다 자신이 진짜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무엇을 해야 행복해질 수 있는지 파악하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이전 글 참고). 물론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회사 임원이 되고 돈을 많이 벌거나 유명해져야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냥 하루하루 자기만족을 느끼며 행복하게 살면 충분하다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후자와 같이 소박하지만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원하는 이들이 훨씬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튼 내가 하고픈 이야기는...
1.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2. 노력의 방향성을 정한 후
3.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원하는 만큼 노력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아니, 힘이 든다면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때론 그냥 버티는 것조차 쉽지 않을 때가 있으니까.
부모나 남들이 하란다고, 회사에서 시킨다고 그대로 다 하게 되면 엄청난 노력을 당연시하는 요즘 세태를 생각할 때 체력과 정신적인 에너지를 금방 소진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열심히 달린 후 힐링을 하면 되지 않냐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나는 그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힐링이 필요할 정도라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거나 정신과 상담 예약을 해야 하지 않을까. 애당초 치료를 할 일을 만들지 않는 세상이 더 살기 좋은 곳 아닐까.
지쳤다면 푹 쉬고 재충전을 하면 되는데 요즘 하도 세상 살기가 어렵고 개인에 대한 요구가 많으니 힘없고 목소리 작은 이들이 상처를 입는 일도 자주 생긴다. 시스템(국가, 회사, 군대, 단체 등)의 문제를 개인에게 전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힘없는 사람은 그냥 당할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이나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을 못하는 이들도 증가하는 추세라 한다. 점점 그런 세상이 되어가고 있어 안타깝지만, 과연 이것이 사람들의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일까?
나는 오늘을 살아가는 평범한 이들의 능력이나 노력의 수준이 과거 사람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흔히들 말하는 낙수효과가 실제로는 없다는 사실을 IMF에 이어 OECD까지 지적했다는 뉴스도 보인다. 그렇다면 이미 가진 게 많은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고 이 세상을 자신들만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좋은 예가 화제의 웹툰 송곳이다. 이 작품은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
열심히 노력할 권리도, 적당히 할 권리도, 아예 하지 않을 권리도 전부 당신에게 있다. 책이나 주변 사람들을 통해 정보와 지혜를 얻는 일도 중요하지만,
결국 자신의 심지를 굳게 세우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결단이 필요하다.
작은 바람이 있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시험에 떨어지고 취직이 안 되거나 진급이 누락되었다고 해서 너무 낙심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요즘 세상이, 회사가, 학교가 여러분을 힘들게 하고 있을 뿐이다. 힘들 때 조금 쉬어 간다고 큰일 나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 휴식은 알아서 챙겨야 한다. 그래야 노력이든 뭐든 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