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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운 May 24. 2020

다시 온 우울, 다시 간 병원

작년 이맘때는 참 힘들었다.


내 인생이 이대로 끝나버릴 것만 같았고 어둠의 밀도가 너무 높아 빛이 비집고 들어올 틈은 없어 보였다. 정교하게 짜인 경로에 따라서 나는 이 비극으로 이끌린 듯했고, 촘촘한 우울의 그물망에서 빠져나갈 길은 도무지 보이지가 않았다. 내 삶이 왜 이렇게 됐나 억울하고 분해서 길을 가다가도 눈물이 났다


회사를 그만두면 씻은 듯이 나을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정한 후 잠깐은 기쁜 마음도 들었다. 그만두고 나서 내 삶이 진공상태가 되니 오히려 우울은 쉽게 찾아오곤 했다.


빨리 괜찮아져야할텐데, 이미 허비한 시간도 많은데, 남들은 열심히 살고 있는데, 나가서 걷기라도 해야 하는데. 조급함은 나를 더 괴롭혔다.


우울증 약을 먹으면서 그저 시간이 가길 기다렸다. 아니 기다렸다는 적극적인 자세는 없었고 그냥 존재해있었고 시간은 흘렀다.


기운이 조금 났다. 그때부터는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고, 살아만 있으면, 살아만 진다면 아침은 온다고. 또 인생의 어느 시점에 밤이 오겠지만 또, 아침은 온다고.


생각(마음)을 조금이라도 조절할 수 있게 되면서는 어떤 생각이든 줄이는 게 도움이 됐다.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어떤 생각이 들든 그대로 두는 거다. 지금 이런 생각이 드는구나, 하고 제 3자의 시선으로 나의 생각을 바라본다. 정신과 치료의 병행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정신과를 가볼까 싶은 마음이 들면 일단 가보라고 하고 싶다. 상태가 더 나빠지면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조차 버겁게 느껴진다. 아는 지인은 힘들 때 술 마시고 푸는 것보다 병원에 가는 게 오히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좋은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그런 마음으로 가면 좋을 것 같다. 병원에 가면 웬 히키코모리 같은 사람들이 서로 곁눈질하고 있을 것 같지만, 20~30대도 많고 분위기도 경쾌한 데다 진료실에서는 웃음소리도 들린다(!)


쉽지는 않았다. 자존심이 상했다. 가야 하지만 안 가고 버텨보고 싶었다. 다 소용없다는 회의감도 들었다. 그렇게 머리는 복잡한데 몸은 늘어진 상태로 시간을 보냈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병원을 찾았다.


선생님은 안 그래도 안부가 궁금했다며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기분이 좋았다. 일 년 만에 병원을 찾고 나서는 왜 진작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침대에만 눕고만 싶었는데 약을 먹으니 책상에 앉게 되고 글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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