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백영옥은 국가대표 양궁선수들이 하루 천 발, 많게는 1,200발의 화살을 쏘며 연습한다고 말한다. 지름 12센티의 골드존을 향해 가뿐히 당기는 활시위 뒤에는 셀 수 없는 반복과 수정의 시간이 있다. 말하듯 부르는 노래, 바람처럼 가벼운 점프, 쉽게 읽히는 문장도 마찬가지다. 결국 중요한 건 나에게 맞는 활을 찾아 쏘는 일이다. 양궁을 보면서 떠올리는 것은 삶의 네 가지 태도이다. 끊임없는 연습, 나에게 맞는 도구, 목표 너머의 목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집중력.
이건 활쏘기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김연아의 점프, 임윤찬의 연주, 조수미의 고음도 다르지 않다. 그들의 아름다움 뒤에는 보이지 않는 각고의 시간이 흐른다. 스케이트를 신고 얼음 위를 달릴 때, 건반 위를 달릴 때, 무대 위에서 노래할 때, 그 모든 순간은 무수한 반복과 실수, 수정을 거친 결과다. 그들의 여정은 노력과 인내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성공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담백하고 서정적인 문장도 오랜 씨름과 퇴고의 산물일 것이다. 어둠 속에서 글씨를 썼다는 한석봉, 목검으로 만 번 연습했다는 김유신처럼, 이들이 이룬 것은 인간 가능성의 다음 단계를 연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단지 개인의 성취를 넘어서, 인류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런 노력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하지만 위업을 이룬 사람들만이 탁월한 건 아니다. 일등이 아니어도, 세상의 주목을 받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장인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을 다듬는다. 나는 ‘평범 속의 비범함’을 믿는다. 이름 없이도, 기록 없이도, 한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내는 방식에는 고유한 아름다움과 강인함이 깃든다. 그들은 결코 대중의 인정을 목표로 하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을 완성해 가는 일에 충실하다. 누구나 말 배우기, 걷기부터 시작해 수없이 넘어지며 일어났고, 그 자체로 각자의 성취를 이뤄낸 존재다. 그 이후의 삶은 내 안의 씨앗을 피워내는 여정이라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진정한 탁월함이란 남보다 나은 것이 아니라 자기 안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것이라 했다. 그는 모든 생명에 ‘자기 목적을 향한 동력’이 깃들어 있다고 보았다. 이 말은 우리 각자가 자기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성장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그런 관점은 경쟁 사회에서 종종 간과되는 부분이지만, 개인의 성장이야말로 진정한 성공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저절로 피어나지 않는다. 꿈, 환경, 노력, 그 세 가지가 어우러질 때 비로소 씨앗은 꽃이 된다. 최근 나는 악동 뮤지션 남매를 보며 감탄한다. 몽골 선교지라는 제한된 환경 속에서 음악에 대한 사랑과 재능을 발견했고, 부모의 자유로운 교육과 자신의 노력이 어우러져 눈부신 음악을 만들어냈다. 그들의 음악은 단지 기술이나 재능을 넘어 삶과 존재의 이야기이기에 더 깊고 울림이 크다. 씨앗은 발견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피어나도록 키워져야 한다. 그들의 창의성은 주어진 환경을 넘어서는 힘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가만히 보면 우리는 모두 이미 어딘가에서 무언가를 키워내고 있다. 누구는 아이를, 누구는 글을, 누구는 하루하루의 생계를. 거창하지 않아도 그 안에 정성과 애씀이 깃들어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른 새벽 상점 문을 열고, 누군가는 어두운 밤 조용히 일기를 쓴다. 그들이 쌓은 시간은 사라지지 않고 존재를 단단하게 만든다. 나는 그런 사람들의 얼굴에서 빛을 본다. 세상의 스포트라이트는 잠깐이지만 자기만의 빛은 오래간다. 그 빛은 외롭지만 따뜻하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의 길을 비출지도 모른다. 모두가 먹이에만 몰두할 때 높은 비행을 연습한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처럼 각자는 자기만의 꽃을 피워낼 수 있다. 나에게 맞는 활을 들고, 내 안의 가능성을 향해 조용히 시위를 당기는 일, 그것이 나를 완성 해가는 길이 아닐까. 결국 자기 자신을 찾는 여정은 평범한 일상에서 자신만의 활을 들고 과녁을 향해 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나대로 꽃 피우는 존재가 된다.
*칮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글은 7/25(금) <다시, 행복한가라는 질문>입니다. 다음 글에서 찾아 뵙겠습니다.